1.기억
경남 합천군 청덕면에서 초계면을 지나 쌍책면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황강이 옆구리에서 내도록 조근조근 말을 걸어 온다
청덕면 하회리 새동네에는 오촌아저씨가 살았고, 그의 자식들 즉, 나와 육촌간이 형제들과는 자주 만나며 살갑게 지냈다
특히 오촌 오빠 둘 중 둘째 오빠는 나와 나이도 두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사춘기 때 여드름투성이인 그 오빠가 왜 그리 좋던지.
그래서 방학이 되면 젤 먼저 오빠를 보러 그 집으로 달려갔다
서부정류장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구지 방향으로 틀어서 이방, 적교를 지나 청덕에 이르는 길은 낙동강을 따라 가는 길이고, 거기서 쌍책으로 가는 길은 황강이 따라 오는 길이다.
한 번은 초계에서 쌍책으로 넘어가는 먼 길을 걸어서 간 적이 있다.
버스 시간도 잘 모르겠고, 차비도 넉넉찮아서 그만 걸어가자 하며 나선 길이였는데, 비포장 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알지
여름 한 낮 땡볕길을 걸어 갈 때의 비장함을.
발부리에 툭,툭 작은 돌멩이들이 걸려서 또그르르 굴러가는 모습에 몰입하여 길을 걷는다. 몰입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군데군데 빈 집 초가지붕에서는 거둘 눈길 없는 호박이 무심하고도 푸르게 달렸고, 창호지가 다 떨어져 나간 문살에는 먼지와 낡은집 유령이 들락거린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무슨 말을 하면서 그 길을 걸었는지 지금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나절 내도록 길을 걸었었고, 땡볕은 사막의 눈총으로 길을 쏘아 보았다. 먼지가 폴싹폴싹 이는 발끝을 하염없이 눈으로 삼키며 걷다가 먼 산을 바라보면, 견딜수 없는 현기증이 머리꼭대기에서 핑그르르 나선형으로 내려꽂혔다. 몰입하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던 길이다. 얼마나 따끔했는지 방 안에 앉았서도 찔린 듯 화들짝 생각나는 기억 하나.
2. 추억
80년, 상업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늘 가닥을 잡을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가 회벽에 곰팡이처럼 달라붙어 있다
두어번 시험 후에는 각자 취업이라는 알짜배기 인생목표를 달성키 위한 노력들로 채워지는데, 걔중에는 또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열라리 공부하는 때늦은 학동들도 있어, 그야말로 교실은 세갈래 패가 화투짝처럼 돌아가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과 대학 진학을 위해 대가리 싸맨 학생, 그리고 잘 하믄 재학중 취업이고, 아니면 또 대충 경리자리 하나 걸리겠지 하는 심사로 쉬는 시간마다 잡담이나 놀이로 열중인 패들이 뒷자리에 떼지어 몰려 있었다.
나는 덩치는 고래등짝만했는데, 눈알의 힘이 좀 약해서 칠판 글씨가 안보여 앞줄에서 네번째 앉았더랬다
내 앞에 앉은 아이는 김순X양으로 의성 도리원에서 대구로 고등학교 유학을 온 아이였다. 지극히 성실하고, 수업에 열중하며 심성또한 바르고 곧아 나같은 농땡이가 늘 본받아야할 바람직한 학생상을 하고 있었는데, 나야말로 무슨 심사였던가, 짖꿎게도 그 아이에게는 늘 사소한 장난을 걸었던 것이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들면 자꾸 말을 시켜서 공부삼매에 빠져 들지 못하게 웃겼다든지, 수업시간 4시간이 끝나야 먹는 도시락을 두시간째 마치고 까 먹자고 부추기고 윽박질러 단체로 선생님께 혼이나는 대열에 그 아이를 합류시키고 말았으니.
그런데 여름방학이 지나고도 개학을 했는데도 그 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였다. 알아보니 몸이 많이 아파서 학교에 못 온다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가 누워있는 그 애의 고모집으로 갔을 때 나는 기얌하고 말았다.
<전신류마티즘> 나는 그것이 그렇게 사람의 뼛골을 옭아매어 꼼짝 못하게 하는 병인 줄 몰랐다.
그냥 몸살처럼 뼈마디 조금 쑤시고 말다가 학교에 나오겟지하고 편히 생각한 것이 고만 그길로 영영 이별이였다.
앓아누운지 한달 조금 지나 그녀는 영 못 올 길로 제 인생의 방향을 정해 떠나고 말았던 것.
그녀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고, 스믈스믈 기어오는 죄책감은 나를 또다른 혼돈으로 몰고갔다. 가끔 꿈에서도 그녀가 보였고, 그런 날은 한밤중에 깨어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가끔 나는 그녀를 생각하는데, 이십년도 더 지난 이즈음 내 손가락이 류마치스 관절염이란 진단을 받고, 흐득흐득 그녀의 누운 자리와 눈망울 말갛게 뜨고 마지막으로 웃어 보였던 그 날의 추억이 진저리치게한다. 아름답지 못한.]
3 기억
그 때가 여름이였던가, 겨울이였던가
그냥 밤이였고 기분이 이상해서 의식이 깨였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기분이였는지 알 수가 없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 아랫도리에서 손이 조심스럽게 빠져 나갔고
잠 속에 빠졌을 때 다시 야릇한 기분에 몸을 뒤척였다
초등학교 오학년쯤 아니 그 뒤던가.
몰입(沒入)
걸핏하면 너는 그렇게 말하지 이 여편네 이제 맛을 좀 아나보군
남편과 밤일을 하면서 두런두런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짜장 싫어서 몰입을 하면 영락없이 들려오는 한 마디
다져진 마당, 장닭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어린 나를 향해 달겨들었다
방학이면 작은 보따리를 싸서 가던 그 집, 이모들의 홀치기 바늘에 실꾸리가 밤새도록 달가닥 소릴 리듬으로 뱉어놓았지
닭 깃을 빠져나온 새벽이 꼬끼오하고 초성(初聲)을 고를 때
나는 꼼짝도 못하고 마른침만 삼킨다 잠결에 당하는 폭력 이후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살아오는 지금까지
몰입한다
어깨를 쥐어뜯으며
환청처럼 들리는 목소리, 이 여편네 이제 맛을 좀 아나보군
이유를 알겠지?
수탉이 새벽을 깨웠고, 고드름 떨어지는 소릴 들었던가 토란잎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릴 들었던가. 아득하게 당했던 기억
4.추억
또 무슨 추억이 있을까.......
전상순
경남 합천군 청덕면에서 초계면을 지나 쌍책면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황강이 옆구리에서 내도록 조근조근 말을 걸어 온다
청덕면 하회리 새동네에는 오촌아저씨가 살았고, 그의 자식들 즉, 나와 육촌간이 형제들과는 자주 만나며 살갑게 지냈다
특히 오촌 오빠 둘 중 둘째 오빠는 나와 나이도 두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사춘기 때 여드름투성이인 그 오빠가 왜 그리 좋던지.
그래서 방학이 되면 젤 먼저 오빠를 보러 그 집으로 달려갔다
서부정류장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구지 방향으로 틀어서 이방, 적교를 지나 청덕에 이르는 길은 낙동강을 따라 가는 길이고, 거기서 쌍책으로 가는 길은 황강이 따라 오는 길이다.
한 번은 초계에서 쌍책으로 넘어가는 먼 길을 걸어서 간 적이 있다.
버스 시간도 잘 모르겠고, 차비도 넉넉찮아서 그만 걸어가자 하며 나선 길이였는데, 비포장 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알지
여름 한 낮 땡볕길을 걸어 갈 때의 비장함을.
발부리에 툭,툭 작은 돌멩이들이 걸려서 또그르르 굴러가는 모습에 몰입하여 길을 걷는다. 몰입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군데군데 빈 집 초가지붕에서는 거둘 눈길 없는 호박이 무심하고도 푸르게 달렸고, 창호지가 다 떨어져 나간 문살에는 먼지와 낡은집 유령이 들락거린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무슨 말을 하면서 그 길을 걸었는지 지금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나절 내도록 길을 걸었었고, 땡볕은 사막의 눈총으로 길을 쏘아 보았다. 먼지가 폴싹폴싹 이는 발끝을 하염없이 눈으로 삼키며 걷다가 먼 산을 바라보면, 견딜수 없는 현기증이 머리꼭대기에서 핑그르르 나선형으로 내려꽂혔다. 몰입하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던 길이다. 얼마나 따끔했는지 방 안에 앉았서도 찔린 듯 화들짝 생각나는 기억 하나.
2. 추억
80년, 상업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늘 가닥을 잡을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가 회벽에 곰팡이처럼 달라붙어 있다
두어번 시험 후에는 각자 취업이라는 알짜배기 인생목표를 달성키 위한 노력들로 채워지는데, 걔중에는 또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열라리 공부하는 때늦은 학동들도 있어, 그야말로 교실은 세갈래 패가 화투짝처럼 돌아가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과 대학 진학을 위해 대가리 싸맨 학생, 그리고 잘 하믄 재학중 취업이고, 아니면 또 대충 경리자리 하나 걸리겠지 하는 심사로 쉬는 시간마다 잡담이나 놀이로 열중인 패들이 뒷자리에 떼지어 몰려 있었다.
나는 덩치는 고래등짝만했는데, 눈알의 힘이 좀 약해서 칠판 글씨가 안보여 앞줄에서 네번째 앉았더랬다
내 앞에 앉은 아이는 김순X양으로 의성 도리원에서 대구로 고등학교 유학을 온 아이였다. 지극히 성실하고, 수업에 열중하며 심성또한 바르고 곧아 나같은 농땡이가 늘 본받아야할 바람직한 학생상을 하고 있었는데, 나야말로 무슨 심사였던가, 짖꿎게도 그 아이에게는 늘 사소한 장난을 걸었던 것이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들면 자꾸 말을 시켜서 공부삼매에 빠져 들지 못하게 웃겼다든지, 수업시간 4시간이 끝나야 먹는 도시락을 두시간째 마치고 까 먹자고 부추기고 윽박질러 단체로 선생님께 혼이나는 대열에 그 아이를 합류시키고 말았으니.
그런데 여름방학이 지나고도 개학을 했는데도 그 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였다. 알아보니 몸이 많이 아파서 학교에 못 온다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가 누워있는 그 애의 고모집으로 갔을 때 나는 기얌하고 말았다.
<전신류마티즘> 나는 그것이 그렇게 사람의 뼛골을 옭아매어 꼼짝 못하게 하는 병인 줄 몰랐다.
그냥 몸살처럼 뼈마디 조금 쑤시고 말다가 학교에 나오겟지하고 편히 생각한 것이 고만 그길로 영영 이별이였다.
앓아누운지 한달 조금 지나 그녀는 영 못 올 길로 제 인생의 방향을 정해 떠나고 말았던 것.
그녀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고, 스믈스믈 기어오는 죄책감은 나를 또다른 혼돈으로 몰고갔다. 가끔 꿈에서도 그녀가 보였고, 그런 날은 한밤중에 깨어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가끔 나는 그녀를 생각하는데, 이십년도 더 지난 이즈음 내 손가락이 류마치스 관절염이란 진단을 받고, 흐득흐득 그녀의 누운 자리와 눈망울 말갛게 뜨고 마지막으로 웃어 보였던 그 날의 추억이 진저리치게한다. 아름답지 못한.]
3 기억
그 때가 여름이였던가, 겨울이였던가
그냥 밤이였고 기분이 이상해서 의식이 깨였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기분이였는지 알 수가 없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 아랫도리에서 손이 조심스럽게 빠져 나갔고
잠 속에 빠졌을 때 다시 야릇한 기분에 몸을 뒤척였다
초등학교 오학년쯤 아니 그 뒤던가.
몰입(沒入)
걸핏하면 너는 그렇게 말하지 이 여편네 이제 맛을 좀 아나보군
남편과 밤일을 하면서 두런두런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짜장 싫어서 몰입을 하면 영락없이 들려오는 한 마디
다져진 마당, 장닭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어린 나를 향해 달겨들었다
방학이면 작은 보따리를 싸서 가던 그 집, 이모들의 홀치기 바늘에 실꾸리가 밤새도록 달가닥 소릴 리듬으로 뱉어놓았지
닭 깃을 빠져나온 새벽이 꼬끼오하고 초성(初聲)을 고를 때
나는 꼼짝도 못하고 마른침만 삼킨다 잠결에 당하는 폭력 이후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살아오는 지금까지
몰입한다
어깨를 쥐어뜯으며
환청처럼 들리는 목소리, 이 여편네 이제 맛을 좀 아나보군
이유를 알겠지?
수탉이 새벽을 깨웠고, 고드름 떨어지는 소릴 들었던가 토란잎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릴 들었던가. 아득하게 당했던 기억
4.추억
또 무슨 추억이 있을까.......
전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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