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고스방
점심 먹고도 일을 나가지 않고 밍그적 거리더니 딸은 공부하고 나는 의자에 앉아 뜨게질 하는
아이들 방으로 들어와 옆의 걸상에 앉는다.
이런 저런 잔소리 반 푸념 반, 자기 일 이야기 반..해쌓더니 자기 선 본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여전히 뜨게질에서 눈을 못 떼고 손을 놀리면서 이야기를 듣는데, 고스방이 딸에게 나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게다
상민아, 느그 엄마하고 선 보기 일주일 전에 부산 아가씨하고 선을 봤는기라. 날씬하고 어찌나 이쁜지..단지 눈꼬리가 좀 샐쪽 올라간것이 흠이지만, 느그 엄마 몸매하고는 비교가 안되거등. 선을 보러 가는 날 아침에 같이 가기로 한 고모할마이가 날더러 그러는거야. 아가씨가 흠 잡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중학교 밖에 안 나왔는걸 고등학교 나왔다고 속였다는거야. 속으로 기분이 파악 나빴지. 넘도 아니고 친척이 중매 서는 것인데도 이렇게 사람을 속이나 싶어서. 그래도 어쨔. 약속은 해 놨으니 가 봐야지. 그래 부산 가서 보고는 돌아왔는데 그 뒷날 부터 계속 그 집에서 전화가 오는겨. 자기네는 두말없이 오케잉께 신랑자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뭐 마음이 반반 영 싫지는 않았는데, 고모가 그러는기라. 각시 될 사람이 눈꼬리가 올라가서 승깔있어뵌다고. 그 말을 들으니까 고만 마음이 조금 식어가는데 느그 엄마가 선 볼 자리로 나온거라. 이핀네가 그 날 주름치마만 안 입고 왔어도 내가 본둥만둥 할낀데 주름치마를 입고 앉았는기 어지가히 마음에 들어. 그래서 델다 주고 오는데 현주 엄마(내 친구이자 중매쟁이 역활을 한) 이러는거라
"친구가 눈이 쪼금 나빠요"
"안경 안 썼던디요?"
"렌즈를 해서 그렇지예"
"그럼 눈이 선천적으로 나쁜거라 아니면 후천적인거라요"
"원래는 괘안았는데 책을 많이 봐서 눈이 나빠졌다고 하네요"
(중매가 거짓말 반, 진실 반이라더니...내가 무슨 책을 많이 봤다구 ㅡ.ㅡ;;)
"후천적이면 뭐 안경 쓰면 될거 아니요"
그렇게 해서 결혼을 했는데 얼마나 지난 후에 집에 잠깐 왔는데 느그 엄마가 안경을 쓰고 있는거라. 아이쿠우...돋보기도 그런 돋보기가 없어. 안경알이 얼마나 두꺼운지. 내가 기겁을 했네. 당장 안경집에 델고가서 안경부터 새로 맞춰줬지. 느그 엄마가 그려.
그 부산 아가씨하고 결혼하면 살림에 물 한 방울 새 나갈게 없다고 했어. 그만큼 살림을 잘한다고 하더군. 그 여자랑 살면 반드시 부자가 된다고 했는데...
드디어 뜨게질만 하며 침묵하던 내가 팩 한 마디 한다.
"그렇게 여물게 손톱여물을 썰어가며 사는 여자하고 결혼을 못해 아쉬워 어쩌누. 지금이라도 어딧는지 찾아가서 살아욧"
(내가 뭐 이렇게 이야기하며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고는 절대 말 못하지..)
"그 눈꼬리 치켜 올라간 여자하고 얼매나 잘 살았을라나. 내처럼 등신그치 착한 여자가 어딧다고"
"어이고..착해? 야야 상민아..아빠말 좀 들어봐.
내가 수술하고 얼마 있지 않아 결혼을 해서 총각때는 날씬했지. 그 때 바지 허리 사이즈가 31인치였으니 말 다했지. 근데 나락 타작하면서 싸왔는데 여편네가 뚝심이 어찌나 쎄고 힘이 좋은지. 내가 속으로 얼마나 놀랬다구. 그래도 이를 앙물고 고함을 질렀네. 오늘 여기서 내가 저쪽 구석에 처백히면 평생 여편네한테 쥐여 살아야 될 것같은 위기감이 순간 몰려오더라구. 그래서 어금니를 꽉 다물고 여편네를 끌어 댕겼는데 뚝소가 그런 뚝소가 없어. 내가 끌고 들어갈래도 꼼짝을 안 하는거야. 지금 생각해도 아찔햐."
딸래미가 수학문제를 풀다가 제 아빠가 그런 말을 하면서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직접 시연해보이자 자즈라질 듯 웃는다. 여태 아빠가 엄마한테 져 본 적이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고스방이 하는 말이 우습다. 나도 몰랐다. 그 때 생각하면 상황이 고스란히 기억이 나는데 진짜 마누라 뚝심에 놀라서 속으로 어금니를 깨물고 사력을 다해 싸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 만큼 고스방이 펄펄 뛰었기 때문이다.
부부간이란 무조건 오래 같이 살고 볼 일이다. 이런 생뚱 맞은 고백을 다 듣게 되니 말이다. 그랬구나. 저도 그런 나에게 그런 위기감을 느낀 적이 있구나.
딸아이와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며 부녀지간에 낄낄거리며 신나게 이야기한다.
칫! 하고 삐져서 나는 뜨게질만 열심히 한다.
고스방..그래봐야 당신 복에는 내가 (최대공약수로) 까짓껏이네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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