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하늘 담기

황금횃대 2006. 2. 26. 15:39

지난 22일은 말날이였어요

말날에는 장 담그면 좋다네요

그 전날 비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물을 미리 받아놨어요

지금은 상수도라 비가 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데 어머님은 옛날 우물물 먹던 시절을 생각해서 꼭 물을 미리 받아 놓으라고 합니다.

메주 넉장 담그는데 물은 서 말만 잡아요.

물 한 말에 소금 서 되를 수북수북 됩니다.

됫박에 하얀 소금을 쓸어 올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게요?

ㅎㅎㅎ 별 생각은 안하고요. 그냥 아홉됫박 세알리는 생각만 열심히 했세요

사람이 숫자를 세알리는 일이 참 쉬운데요 이상하게 소금을 되면서 숫자를 센다든지 하면 꼭 다섯됫박 쯤에 가서 내가 몇 됫박을 퍼부엇는지 잠깐 햇갈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울 시엄니께서 꼭 그 때쯤 물어보세요.

"야이 니 됫박 부엇나?"

"아이라요 어머님 다섯 됫박 부엇구만요"

"그랴? 그라면 니 개만 더 부으만 되겠네"

"어머님이 말 시키시니까 자꾸 헷갈리네요..여섯...개"

 

넓은 소쿠리에 여과지 대신에 하얀 베 보자기를 깔고는 소금을 부어 받아 놓은 물을 바가지로 끼얹어 소금을 녹입니다. 약간 꾸무리한 소금물이 녹아 내립니다.

 

다라이에 소금 녹인 물을 가라앉힐 동안 오짓독을 씻어요.

작년에 담아 달여서 먹고 있던 간장을 빈 독에 옮겨요.

작은 독에 두 개 가득 담아지네요.

 

 

떡치 한 치만큼 뜬 메주를 잘라서 먼저 넣고 소금물을 부어요.

선자네 집에 가서 숯을 얻어와서 몇 동가리 넣고, 마른 고추와 참깨도 조금 넣습니다.

숯은 잡냄새를 없애주니까 넣는데 고추와 참깨는 왜 넣는지 저도 몰래요

 

저렇게 장 담는건 간단합니다. 그러나 메주 만들 때의 과정까지 생각하면 참말로 오랜 시간입니다. 숯이든, 마른 고추 하나든, 참깨든...금방 후다닥 만들어 내는 재료는 하나도 없습니다.

재료만 그런게 아니고, 메주와 소금물이 어우러져 간장이 되고, 간장이 되어서 발효가 되고, 빛깔이 맛있게 보이고...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긴 시간을 요구합니다.

 

이제 볕 좋은 봄날에 자주 장뚜껑을 열어서 맑고 밝은 볕들을 넣어주고, 푸른 하늘을 보여 주고, 바람이 간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별들이 엿듣을 동안, 나는 그저 조용히 있으면 됩니다.

 

 

 

장 담그는 일도 일년 농사라. 이렇게 나쁜 것들이 들어가 장맛이 변하지 않게 금줄을 치고, 숯과 고추를 끼워넣지요.

나는 지푸라기 한 올 떨어지지 않게 이뿌게 감아 놓습니다.

기실 이런 행위가 삶에 무슨 큰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만, 금줄 하나 치는데도 정성을 들이다보면, 사는 일에도 하나 같이 고운 정성을 들이지 않을까..하여.

 

 

 

저렇게 맛있는 간장으로 맨날 해 먹고 사니 얼굴에 윤기가 짜르르르르르르...흐릅니다 그려.

로션빨이라고요? 흐흐흐흐흐흐.. 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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