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라일락, 그녀가 오늘 出門 하였습네다

황금횃대 2006. 5. 11. 11:52

 

 

제가 출근이란걸 해서 사무실에 오믄요

선거사무실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참 조용합니다.

직책이 회계관리 책임자이니까 컴퓨터부터 오자마자 켜요

이 사무실에 들락거리는 관계자들 중에는 이 기계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이 아모도 없어요

그래서 공보물이나 벽보 만드는 기획사에서 홍보물 사진 같은 것을 샘플 보내오면

내가 와서 메일을 열어봐야 볼 수 있는거라

이 흔해빠진 기계가 아직도 이 동네에는 다루기 힘든 기계로 인식이 되어있기에

후보사진이며 홍보물 왔는것을 알씨 프로그램 열어서 쫘아 보여주고

마우스를 척, 척, 움직여서 사진의 부분부분을 지적하며 내 의견을 말하면

ㅎㅎㅎ참말로 좆도 아닌걸 가지고 엄청 유세떨며 설명을 하는 꼴이래요

그렇게 나름대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면 옆에서 화면을 보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나도 그 사진이 좋다고 생각이 드네"그럼씨롱 내 의견을 전적으로 밀어주는거라

아이고, 집구석에 있을 땐 고스방이 내가 뭘해도 쪼뱅이라 그러구 니가 하는 일이 그렇지..하며

인정을 안 해주는데 여기 사무실에 나오니 그게 아니라

월급 안 받아도 이렇게 대접해주니 아주 살판이 났당께요

사람이 입 아구리로 뭘 하나 먹어서 맛이 아니구

여태까지 재투성이 무수리로 산다고 생각하며 수그리하고 있었는데

나와봉께로 그게 아니더란 말이재요.

이런 이야기하면 고스방 한 마디 하겠지요
"여편네가 부추긴다고 천방지축 날뛰는건 아니것재?"하고 눙깔을 부라리겠지요 ㅎㅎ

그러기나 말기나.

 

사무실 출입문을 열어놔요

마주보이는 풍경이 황간 향교가 올라 앉은 절벽이라

나날이 푸른 잎새들이 뒤에 숨을 산흙을 덮습니다.

불조심 깃발이 나부끼는 봄날의 아침나절이 지구가 도는 방향으로 가만가만 흐르고

나는 등받이 의자에 한껏 등을 밀어부치며 <묵쳐먹는집>현수막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현상을 한참 바라봐요

 

츠자적, 시집 오기 전에 잠깐 작은 사무실에서 일을 봐준적이 있는데

거기도 사무실이 길가쪽에 붙어 있었어요

사무실에 앉아 바깥의 길을 오가는 사람을 하염없이 쳐다본 적이 많았지요

내가 보는 줄 모르고 길 건너면 흙무데기에다가 오줌을 누는 택시운전사들, 그리고

하교 시간이 되면 제가 만든 공작물을 손에 손에 들고 끊이없이 조잘 거리며 지나가는 아이들.

채소를 싣고 방송을 하며 지나가는 봉고차.....일상의 모습들이 스크린의 영상처럼 지나가지요

지금 여기도 앉아서 밖을 내다보면 꼭 그 모양입니다.

그 때가 지금에서 이십년 전쯤의 풍경인데 여전히 사람의 살이는 비슷하네요

 

요새 미스킴라일락 수수꽃다리는 피었나 모르재요

예전 우리집에도 개집 옆에 그 꽃나무가 있었더랬는데 담장 새로 한다고 캐냈어요

오래 되어 꽤 나무가 컷더랬는데 아깝지요

봄이라지만 어째 제대로 된 봄날씨 한번 펼쳐보이지 않고

봄이 다 가는거 같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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