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앞치마 이야기

황금횃대 2006. 7. 14. 15:03

초등학교 때 실과라는 과목이 있어요

실제 생활에 쓰이는 것을 책으로 공부하는 과목으로 알고 있지요

그 실과라는게 여중으로 가면 가정,가사라는 과목으로 불러집니다

이를 테면 여자로 태어나 주부가 되고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일들을 가르키는 과목이지요

지금도 대학에 가정과라는게 있는지 모르겠어요

 

중학교 처음 들어가니 앞치마란걸 만들어요

하얀 옥양목이나 포플린천을 떠서 수업시간에 마름질을 하여 재봉틀로 박아서는

그 치마폭에다 블란서자수를 놓아서 앞치마를 만들었어요

먹지를 대고는 내가 도안한 그림을 손 떨리게 하얀 천 우에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프랑스자수실을 올올이 빼서는 수를 놓아요

데이지스티치, 아웃트라인 스티지. 체인스티치....이렇게 이름도 가물가물한 자수 이름을

입안에 동글동글 굴리면서 수를 놓아요

그거 도안에서 조금 비켜나도 뭐라 할 사람 없는데 그걸 똑바로 못 했다고 다시 뜯고..

이런 극성을 떨어가며 수를 놓아 선생님께 검사를 맡고는 1/4분기 가사실습을 합니다.

 

 

 

학교 가사실에는 허리높이 만큼의 준비대와 조리대가 있고, 조리대 옆에는 개수대가 있어서

음식 재료를 씻어서는 곧바로 옆으로 옮겨 재료를 썰고 볶고 하여 음식을 만듭니다.

중학교때 내가 살던 집은 범어성당 뒤쪽의 낡은 집

한 울타리 안에 예닐곱집이 한 칸 아니면 두어칸의 방과 작은 부엌들이 딸린 셋방을 살았더랬지요

개수대가 어디있고 허리 높이의 조리대는 무슨 소리며 준비대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랍니까

마당 가운데 주인 할마이 병수엄마가 물 많이 쓸까봐 수시로 째려보는 공동수도가 있고, 필요한 물은 바께스에 받아다 코딱지 만한 부엌 구석의 물두멍 독에다 부어놓고 썼더랬지요

양은 솥, 연탄불에 불집게를 받쳐놓고 밥뜸을 들이고 단칸방에서 오불오불 여섯식구가 살았댔지요

 

그런 부엌에서 때로 엄마가 없으면 나도 밥을 앉히고 아버지의 밥상을 차렸었세요

처음 학교의 가사실에서 한 음식은 짜장이였고, 두 번째는 카레였어요

가사실습은 대개 두 시간에 걸쳐서 하는데 주로 세째, 네째 시간에 실습을 했지요

두 시간동안 만들어내는게 겨우 짜장 한 냄비였어요 ㅎㅎㅎ

그걸 가지고간 도시락 밥우에 끼얹어서 짜장밥을 만들어 먹었지요

두번째 실습에서 카레를 만들었어요. 세상에 태어나 카레라곤 처음 먹어봤지요

이 희안한 음식을 집에 있는 동생에게도 갖다 먹일라고 나는 조금만 먹고 그걸 도시락 반찬병에

담아가지고 집에 갔어요

남동생 서이가 그걸 조금씩 맛보고는 희안하다, 비누냄새가 난다...등등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카레가 머 특별한 음식 축에도 안 드는 것이지만, 우리집은 아니였지요

그 카레를 만들며 손에 묻은 카레를 앞치마에 쓱쓱 닦았는데 그게 영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고야요

지금처럼 오투액션같은 표백제가 없었으니 카레얼룩은 두고두고 옥양목 앞치마에 남았어요

그러나 삼년 내도록 가사실습 때는 다홍색꽃과 초록색 줄기가 수놓인 저 앞치마를 꼭 입고 했지요

다홍색과 초록은 극심한 보색대비였지만 ㅎㅎ 그래도 내가 만든거라 이뻣습니다.

지금은 천에 인쇄가 잘 되어 이쁜 앞치마가 얼마든지 나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내가 만든

저 앞치마 만큼 이쁘덜 않아요

 

얼마 전, 영국에서 누런 봉투에 소포가 하나 왔어요

Glasgow UK

UK가 어딘고 했더니 영국이래요. 나는 잉글랜드밖에 몰라요 ㅎㅎ

언젠가 내가 무슨 글 중에 앞치마 이야길 했던 모양인데 그걸 기억하고는 방수용 앞치마를 보내왔어요

글래스고우에서 대한민국 황간까지는 또 얼마만한 거리래요?

누구 말씀처럼 비행기에 앉아 있다가 돌기 직전에 내려주는 곳이 호주 말고 또 있는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서 그녀의 마음은 오롯 두 줄짜리 주소 하나 의지해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 왔네요

그래서 칠월 달력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온통 내가 처음으로 만든 이 앞치마를 기억해서 그렸세요

 

그러고는 오랜만에 따박따박 사연도 정성스레 씁니다.

 

 

 

이 한장의 달력도 Giasgow UK란 주소에 의지해 그녀에게 건너가겠지요?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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