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고스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자 목소리다
대개 이 시간쯤에 각자의 셀폰에 벨이 울리면 반가움보다는 덜컥하는 마음이 더 앞설터인데
우리는 뭐 택시영업을 하는 집이니 그 놈의 전화벨이 시도때도 없이 울린다.
여자 목소리가 들려 온다하여 하등 내가 눈꼬리를 사려 뜰 필요는 없다. 십중팔구 차를 찾는 손님일테니.
옷을 챙겨입은 고스방이 나간다
대전 갔다 올테니 그냥 대문 열어놓고 자란다
그러니까 며칠 전에 대전을 갔다 온 그 여자손님인데 오늘도 볼 일 볼 동안 고스방은 기다렸다가 다시 그녀를 태워 오면 되는 그런 걸음이였던게다
내가 신경이 좀 예민하면 잠도 안 자고 스방을 기다릴텐데 나는 전혀, 씨가리 알만큼도 그럴 위인이 못된다. 그냥 바로 잔다.
대문 밖에 나가면 남편이란 사람이 무얼 하든 전혀 신경을 안 쓰는데 돌연변이 소심 O형 혈액형을 가진 고스방은 외려 내가 너무 자기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신경 안 쓰겠다하면 좀 자기가 자신을 흐트리고 헷짓을 해도 무딘 내가 알겠냐말이다. 그런대도 고스방은 절대 그러지 않으니
(모르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ㅎㅎㅎ)
무딘 반면 내가 잠 귀는 또 무지 밝아요
깊은 잠에 빠져서 꿈 속을 허우적 거리면서도 마루에서 발자욱 소리라도 나면 잠이 깨진다.
밤 중에 문 여는 소리가 나서 눈을 뜨니 고스방이 그제서야 대전 왕복 손님을 태워와 내려주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몇 시냐고 물으니 세시 반이란다.
분명 대전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잠간 토끼잠을 잤을터, 운전하고 오는 동안 밀려오던 잠이 달아났겠지. 옷 벗고 눕자 다시 잠을 청하는 나를 찝적거리기 시작한다.
아이고 정말 이럴 땐 신경질 난다. 돈 아니라 돈 할애비를 벌고 왔다캐도 한참 단잠 자는 시간에 들어와 찝적거리면 누가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네하며 올라오씨요잉 할까.
손이 닿이고 다리로 다리를 잡아 땡길 때마다 신경질과 짜증이 조금씩 묻어난 대꾸를 한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거절은 하되 자존심 안 상할 정도로 살살 짜증을 내고 있으니(저번에 대놓고 짜증냈다가 고스방이 삐져서 그거 푸느나고 생쑈를 했다 ㅡ.ㅡ;;)
"한번만, 딱 한 번만 조....응? 상순아..."
"이이잉 싫단말야"
"알았어 알았어. 내가 다 할 테니 니는 그냥 자"
"잠도 어지간히 오겠다 쑤석거리쌌는데 잠을 우째 자요"
"잠이 안 와서 그래...내일 일 할려면 한번 하고 푹 잠을 자야하는데 말야"
"내 잠은 다 깨와놓고 자기는 하고 푹 자면 어지가이도 좋겠다"
"자, 자, 그러지말고 한 번. 어이고 말 잘듣네 궁뎅이 들어봐"
어이구 잠은 다 달아나고 이쯤에서 고만 뻗치고 들어줘야한다.
다른 때같으면 잔뜩 부어터져서 하든 말든 나는 손을 땅바닥에 붙이고 내비두는데 새북녘에는 나도 뭔 마음이였는지, (그래 딴짓하고 들어 온 것도 아니구 잠 안 자고 돈 벌고 들어온 스방인데 싶어) 내 팔을 돌려 고스방 목을 꼭 끌어 안았겠다.
한참 하다가 고스방
"왠일이여 목을 다 끌어 안고..."
".........."
"고마와..어이고 상순이 이뻐.."
"꽥!"
어이구 내가 얼마나 악처였으면 목 끌어 안아줬다고 마누래 귀에다고 고맙다고 속삭일까
눈을 꾹 감고 있던 내가 놀래서 눙깔을 화등잔만하게 뜨고는 스방을 봤다네
그러기나 말기나 고스방은 고마운김에 신나게 하니라고. ㅎㅎㅎ
아침에 눈 뜨니 여섯시 사십분이다
아고 늦었구만...
늦어도 잠시 책상다리하고 앉아 새북에 일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허참.. 살다살다 고스방이 내게 고맙단 말을 다하고 말야...흐믓흐믓'
못난이하고 사니라고 머리카락도 많이 쇠고 관옥같던 얼굴이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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