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래미 약먹고 건강이 예전처럼 돌아 온 것은 천만 다행이지만
며칠 전 약값으로 결제한 카드대금 청구서가 날아왔을 땐 기암을 하다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하고 고스방이 줄줄 알고 약은 쥐처럼 카드결제를 했는데
역시나 밤눈 어두운 약은 쥐가 되고 말았다
고스방은 영 벌이가 신통찮은가 카드대금을 내가 입금 시켜주는 걸로 기정사실화 해 버린다
오늘 구십만원이란 돈을 내 통장에서 탈탈 털어 카드대금 지출 되는 통장에 이체시키고
막막한 가슴이 된다.
결혼해서 십팔년째 살고 있지만 이렇게 현금에 가물이 들어보긴 첨이네
그러고 보면 내가 예전 아이들 어릴 때는 정말 콧구멍에 단내가 나도록 절약을 하고
포도밭에 일하다가 신문 쪼가리에서 샐린저의 <누추>라는 단편소설 한 귀팅이를
쪼그리고 앉아 읽어보고는 <누추>라는 단어가 어찌 이리도 지금의 내 처지와
닮았는고. 지금 나를 표현한다면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가 저것이겠구나하며
호맹이 자루 옆에다 놓고 혼자 슬퍼한 적도 있었다마는 그 때의 심정하고는 또 다른
암담함이다.
아이들이 커가니 소소하니 들어가는 돈들이 많아져서, 그걸 일일이 다 손 벌려 타내려니
돈 주는 사람도 어데서 펑펑 돈이 쏟아져나오는 방맹이가 없고서야 한 두번 줄 때야
그러려니하겠지만 자주 그러면 몹시도 심정이 싸나와질것이다.
어찌됐던 버는 사람은 하나고 쳐다보는 입들은 여럿,딱딱 벌리고 있으니 나는 방구석에서
한 발짝도 넘의 돈 벌기위해 나갈 수도 없는 처지고 자꾸 어깨가 축 늘어진다.
어제는 또, 아들놈이 팔월에 끊어버린 눈높이 대금을 고서방이 주길래(눈높이 그만 둔 것을
모르니까) 넙죽 받아 놓고는 오늘 아침에 내게 넌줏 묻기를 "왜 요즘은 눈높이 선생님을
통 볼 수가 없는고"한다.
쭈볏쭈볏 거리다가 8월부터는 눈높이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대뜸 눈을 부라리며
"그럼 왜 돈 받을 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하면 눈꼬리가 쒹 올라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일이지만 다른 이유를 들어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걸 질게 끌고가서 나중에라도 나를 추궁하면 그것또한 부부간에 응근히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다행이 그러고 만다.
사람의 성정이 치사한게 아니고 그누무 돈 때문에 부부간에도 이렇게 치사한 일을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저녁에 세금고지서 나온 것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날짜를 세어본다
어제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경기가 어려울 때는 어떻게 살어야하느냐고 물어보는데
무슨 경제연구소 위인이란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이
그저 서민들은 허리띠 졸라매고 소비를 줄이고 어쩌구 저쩌구..."한다
생존을 위해 먹고 입는 일 밖에 없는 것도 소비라고 쳐야하나 어이구
며칠 전 마트에서 돼지고기 목살 사 온것 반찬을 해 먹는데 오늘 낮에 찌개를 끓이면서 두어번
걸쳐서 먹은 고기를 다 썼다. 저녁에 아들놈 와서는 고기를 구워 달라는데 다 먹었다고 하니
놈이 화가나서 나는 한번도 안 먹었는데 누가 다 먹었느냐고 큰소리로 징징거린다.
고기 쌈 열 개 정도면 조막만한 배가 다 찰 것인데 그걸 내가 넉넉하게 못 해줘서 이런 소릴 듣나
싶은 생각도 들고.
예전 같으면 자슥놈 입에 들어가는거라 냉큼 사 왔을터인데 오늘은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만두 빚은것으로 만두국 끓여서 입 막음을 하다
지금,
아들은 반듯이 누워 가는 팔을 제 가슴 위에 올려놓고 고른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수 없고, 입고 싶다고 다 입을 수 없고,가지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없는
삶의 필요한 제어기능을 잘 다룰 수 있게 교육을 시켜야하는데..
나 역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