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신경림
일전 내렸던 눈이 아직도 다 녹지 않아
논둑에 마른 풀들도 태우지 못하고
언 땅 곱씹듯 발걸음 조신허니 곤두세워
마을 회관까지 내려왔다
남루한 털신에 뒤축 닳은 고무슬리퍼들을
여덟팔자네 들입자에 제각각 벗어 놓고
뉘집 며누리 흉을 보는가 방문 앞에는 저런저런 쳐죽일년!일갈의
억양이 새어 나오고
동네총회 때 걸어 놓은 양은 솥에 도라무깡 화덕은
잉걸불의 겁나는 화기를 내 언제 내 뿜었냐는 듯
시침을 떼고, 그 위에 올라앉은 양은 솥은
몽탁한 불티를 군데군데 얹어서 싸늘히 식어 있다
"돼지대가리는 아직도 남았지를?"
"대가리만 남았깐? 등빼도 남았을거여 언제 고아서 감자탕이나 끼리묵자"
"씨감자 할라고 남기 농거 한 됫박 퍼 와야것네"
"시레기 푹삶아 한 기팅이 박아 넣으면 더 맛있는데"
"어히고, 시절은 변해도 입맛은 그대로여"
"무답시 변하능가 그게, 보사리감투 삶은건 누가 다 뜯어 묵었어?"
"그게 아직도 남았는강...벌써 묵었지 곱창 삶아서 묵을 때 다 묵었지"
"돼지새끼도 백근 넘어가니 비계가 너무 많아'
동네 총회 때 잡은 돼지 한마리가 풀풀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도랑 가에 포장을 깔고 허옇게 드러누운걸 본게 그저께 이야기다
동네 아자씨들이 싯퍼렇게 날선 부엌칼을 가지고 살을 발라내고 갈비를 뜯어내서 그 날 밤에 일차 ,소주에 일년 이야기를 삶은 고기에 굵은 소금 찍어 작살을 내었는데 아랫동네까지 다 모여서 일년 경비 결산을 한다.
워드로 찍어 돌리는 결산보고서에 아픈 이름이 있다
'김세호 장례 찬조금 270,000원'
작년 젊은 이장이 동네 총회하고 며칠 뒤에 차사고로 죽었다. 총회 날, 그이가 한 말 한마디,
"동네 회비가 얼마 없어서 총회도 껄쩍지근허니 못하겠네. 천상에 누가 죽어야 장례비로 찬조금이 나오지"
귓가에 그 말이 안즉도 쟁쟁한데, 자신이 죽어 보고서에 장례비 찬조금을 떡하니 올려 놓다니.
젊어서 자식을 잃은 김천아주마이, 다 커서 장가가기 직전에 아들은 잃은 못냄이 아주마이, 마흔이 넘은 장손을 잃은 대추나무집 할머니....그러고 보니 아프지 않는 가슴이 없네
동네돈으로 지어진 회관에는 기름보일러가 따뜻한 온기를 돌리고, 십원짜리 민화투 개평으로도 유지되는 촌구석 가난한 회관의 겨울 살림살이
멀리서 들르는 자슥들이 가끔씩 들이미는 마른 국수나 칼국수, 밀가루 한 푸대나 소주 두어 댓병.....배급나온 보리쌀을 싸 안고 오는 혼자 사는 할머니의 쪼그라진 손마디에서 무엇을 보는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반갑고, 또 반갑다>
상행, 하행 번갈아 경부선 열차는 한꾸러미의 그리움들을 실어 나르는데
먼 하늘 까마구는 시도 때도 없이 울부짖누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신경림
일전 내렸던 눈이 아직도 다 녹지 않아
논둑에 마른 풀들도 태우지 못하고
언 땅 곱씹듯 발걸음 조신허니 곤두세워
마을 회관까지 내려왔다
남루한 털신에 뒤축 닳은 고무슬리퍼들을
여덟팔자네 들입자에 제각각 벗어 놓고
뉘집 며누리 흉을 보는가 방문 앞에는 저런저런 쳐죽일년!일갈의
억양이 새어 나오고
동네총회 때 걸어 놓은 양은 솥에 도라무깡 화덕은
잉걸불의 겁나는 화기를 내 언제 내 뿜었냐는 듯
시침을 떼고, 그 위에 올라앉은 양은 솥은
몽탁한 불티를 군데군데 얹어서 싸늘히 식어 있다
"돼지대가리는 아직도 남았지를?"
"대가리만 남았깐? 등빼도 남았을거여 언제 고아서 감자탕이나 끼리묵자"
"씨감자 할라고 남기 농거 한 됫박 퍼 와야것네"
"시레기 푹삶아 한 기팅이 박아 넣으면 더 맛있는데"
"어히고, 시절은 변해도 입맛은 그대로여"
"무답시 변하능가 그게, 보사리감투 삶은건 누가 다 뜯어 묵었어?"
"그게 아직도 남았는강...벌써 묵었지 곱창 삶아서 묵을 때 다 묵었지"
"돼지새끼도 백근 넘어가니 비계가 너무 많아'
동네 총회 때 잡은 돼지 한마리가 풀풀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도랑 가에 포장을 깔고 허옇게 드러누운걸 본게 그저께 이야기다
동네 아자씨들이 싯퍼렇게 날선 부엌칼을 가지고 살을 발라내고 갈비를 뜯어내서 그 날 밤에 일차 ,소주에 일년 이야기를 삶은 고기에 굵은 소금 찍어 작살을 내었는데 아랫동네까지 다 모여서 일년 경비 결산을 한다.
워드로 찍어 돌리는 결산보고서에 아픈 이름이 있다
'김세호 장례 찬조금 270,000원'
작년 젊은 이장이 동네 총회하고 며칠 뒤에 차사고로 죽었다. 총회 날, 그이가 한 말 한마디,
"동네 회비가 얼마 없어서 총회도 껄쩍지근허니 못하겠네. 천상에 누가 죽어야 장례비로 찬조금이 나오지"
귓가에 그 말이 안즉도 쟁쟁한데, 자신이 죽어 보고서에 장례비 찬조금을 떡하니 올려 놓다니.
젊어서 자식을 잃은 김천아주마이, 다 커서 장가가기 직전에 아들은 잃은 못냄이 아주마이, 마흔이 넘은 장손을 잃은 대추나무집 할머니....그러고 보니 아프지 않는 가슴이 없네
동네돈으로 지어진 회관에는 기름보일러가 따뜻한 온기를 돌리고, 십원짜리 민화투 개평으로도 유지되는 촌구석 가난한 회관의 겨울 살림살이
멀리서 들르는 자슥들이 가끔씩 들이미는 마른 국수나 칼국수, 밀가루 한 푸대나 소주 두어 댓병.....배급나온 보리쌀을 싸 안고 오는 혼자 사는 할머니의 쪼그라진 손마디에서 무엇을 보는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반갑고, 또 반갑다>
상행, 하행 번갈아 경부선 열차는 한꾸러미의 그리움들을 실어 나르는데
먼 하늘 까마구는 시도 때도 없이 울부짖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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