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지근한 날씨
없는 사람 생각하믄 날씨가 이리 온화한 것이 좋기도 하다만
영 미지근한 동치미 국물처럼 깔끔한 맛이 없다
살얼음내지는, 날카로운 얼음조각이 떠 있어 동치미 국물에
손 넣어 무우 한동가리 찾아내면 손등이 빨갛게 되도록 겨울 날씨는
추워야한다. 맨다리에 스커트차림으로 저녁에 밖에를 나가도
초가을 날씨처럼 시원하다면 무슨 겨울 맛이 나겠는가
먼 빛에 보이는 빈 들판에 까마구 떼가 나르고, 그 아래 물 잡힌
논에는 언뜻언뜻 얼음판이 보여 한 눈에도 지금 겨울의 심장부를
지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야하는데, 까마귀 울음 소리도
어딘지 맥 빠져있고, 오동나무 가지를 지나치는 바람의 색깔도
영 아니올시다다
그러니, 공연히 마음은 풀어진 풀주머니처럼 뭉글뭉글 상념을 게워놓고
게워낸 상념을 추스리지 못해 쓴입맛만 쩝쩝 다시고 있다
2. 소유권
자두밭이 고속도로 공사지역으로 편입되는 바람에 대대로 물려 내려오던
자두밭 한 귀퉁이가 날아 갔다
아버님 세대만 하여도 물려 받은 재산을 자신의 대에서 축내면 안되는
걸로 어떤 원칙이 서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밭 아래 외사촌 형님께서 농사 지으시던 땅을 판다고 하시니
고서방이 냉큼 산다고 얘기를 한 모양이다
이리저리 흥정을 할 형편도 아니고 해서 혼자 사시는 형님이 달라는대로
고만 고스방이 금을 쳐서 준단다
그렇게 흥정은 끝나고, 형님은 원하던 값을 받아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내가 고서방한테 또 한 마디 했다
"저번 것은 내가 양보 했으니 이번 밭은 내 명의로 해 줄거지요?"
이렇게 말하니, 고스방 또 눈이 쒹~ 돌아간다
내가 머라고 한마디하자
"니꺼면 어떻고 내 명의로 하면 또 어떻냐 그걸 가지고 자꾸 그랴?"
그러고 또 한 마디 보태는 말,
"희안한 여편네네, 꼭 챙겨서 달아날 사람처럼......"
오늘 형님 내려오시면 같이 영동가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할 것인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 인감도 떼서 <공동명의>로 이전 등기를 마쳐버릴까......깊이 생각 중.
아무리 부부일심동체에 동등한 권리로 결혼 생활을 한다고 하나, 이 나라에 집 한칸 마련하면 부인의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 이전을 <흔쾌히>해 줄 사내놈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미적지근한 날씨만큼 흐릿한 내 생이다 쯔비.......
3. 진짜 짧은 생각
어제는 동네 아저씨네 잔치가 있어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갔다왔네
부면장 지내신 분이라 손님도 많고, 그리고 늦게 장남을 장개보내니 얼마나 좋은가 시어머니 될 사람은 대추방망이처럼 단단한데, 아저씨는 입술이 다 부르트고 얼굴이 시커먼게 영 안됐다
그 아저씨의 어머님은 얼굴이 이상한데, 일테면 형태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멜라닌 색소가 없어서 군데군데 하얗게 색이 바래는 그런 병이 있다
얼굴과 손이 그러니 손자 잔치에도 같이 가실 수가 없으니, 효자 아저씨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겠는가
평소에도 마을회관에서 동네 행사를 하면 아저씨 어머님이 내려와 점심을 드시는데, 다른 할머니들은 괜찮은데 아저씨 엄마는 얼굴이 울긋불긋하니 속이 상하신가 술을 한잔 드시면 동네 할머니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울으신다. 그 아린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렇게 울면서 동네 할머니나 우리들 손을 붙잡고,
"울어머님하고 같이 좀 놀아주세요. 잘 봐주십시요"하고 그 맑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부탁을 하시는거다
우리나, 동네할머니나 늘 보는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은데, 본인은 늘 자격지심으로 그런 짠함이 있으신가보다
그런 아저씨가 어제 잔치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기분이 좋으신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시고 한껏 즐거워하신다.
비록 어머니를 잔치에 모시고 갈 수는 없었지만, 그런 속마음은 접어두고 자식의 결혼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컥 마음이 솟구친다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어떤 마음으로 살어야하는가
<차마 못하는 마음으로 살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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