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술 익는 뒤안

황금횃대 2006. 10. 13. 19:55

 

요새 우리집 장꽝 뒤편은 술 익는 특구라요

내가 포도 일하면서 짬짬이 담근 포도주를 1차 발효시킨 후 뒤안에다 모두 옮겨놨거등요?

잘 익으라고 아침에는 햇살이 듬뿍들어갔다가 잠깐 시간이 지나면 종일 그늘이져요

살구꽃 피고, 밤새도록 바람이 살구꽃 겨드랑이를 간지래놓으면 그누무 살구꽃이 웃다 떨어진 뒷마당을 쓸고 나면, 곧 이어 바람과 통정한 감꽃이 떨어지고, 입이 댓발 나와서 감꽃 씰고나면 봄이 다 가재요

 

봄 가고 난 뒤 푸른 감잎이 짙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여름의 강을 건너갑니다.

그러다 꽃은 감꽃이 뒤에 떨어져도 잎은 감잎사구가 먼저 떨어져요

그 다음에는 살구나무 잎이 떨어져요

짜잘한 그 잎이 떨어지고 나면 느릅나무 잎이 떨어지는데 어이구 낙엽 쓸어 낼라믄 내가 미쳐요

 

그래도 빗자루로 낙엽 쓸어내다가 포도주 담은 단지를 보면 흐믓하지요

저번에 두 통은 포도알 걷어내고 이차 숙성에 들어갔세요

오늘 심심해서 맛이 들었나 어쨌나..싶어서 국자들고 나가봤더니

하이고나..이렇게 색이 아름답게 나와서 눈이 즐겁십니다.

맛은 어띤가...하고 한 국자 떠서 살째기 입수구리 대어보니

갸~~ 죽입니다.

 

10월 28일 저번에 농활 왔던 사람들을 초청해서 이번에는 포도주먹으며 놀거예요

 

 

붉은 포도주 한 모금 꿀꺽 삼키니

죽은 디오니소스가 온몸으로 퍼져 세포가 꽃처럼 일어납니다.

한 국자 더 퍼먹습니다.

 

 

두 번째 마셔도 여전히 변함없는 그 맛.

오늘 나락 타작하는 날인데 오후에 해 준댔어요. 기다리다가 농주 대신 두 모금의 포도주를 먹으니

얼굴이 알딸딸합니다.

 

 

얼굴이 뽈그래하지요?

 

회관 배꾸마당에 나락을 쌓아 놓았세요

부자 됐습니다.

 

 

무서리 내리고, 된서리 내리고, 눈 오고 쨍그렁 소리나게 계절이 깊어가도

나는 이제 저거 파 묵고 살면 됩니다.

배고프면 밥 지어먹고, 술 고프면 포도주 퍼묵고...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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