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민이 편에 보내 준 수학의정석을 봤지
제일 앞페이지에 깨알같이 써 놓은 편지
책보다 나는 그게 더 반갑네
옛날 상민이 초딩 2학년 때
일기를 쓰면 나도 한 페이지에다 길게 상민이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네
딸이지만 친구같지
원래 내가 또 딸을 좋아하구
지금도 우리나라 정서야 딸보다 아들이 우선이지만
나는 우짠일인지 상민이가 좋아
병조가 늘 누나만 좋아한다고 투덜대고 그래
상민이와 나는 양력으로 같은 날 생일이지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상민이 낳은 날, 눈이
푹푹 빠지도록 쌓였어
회복실에서 미역국을 먹으며, 면회 온 사람들의
입에서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단다.
산달이 가까와져 왔을 때 마음 속으로
내가 아기와 만나는 날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가지기도 했지.
생일이 같다는 것은 또 다른 연대감을
갖게 하는 것 같아
해마다 하나의 케익으로 둘의 촛불을 켜면서
속으로 생각한다네
'딸과 엄마는 세상의 무슨 인연으로 연결이 되어
이렇게 겨운 사이가 되었는가..하는'
정월이야
한결같이 밝고 환한 사람을 보고
"저이는 맨날 정월 초하루 같아"하지.
처음으로 아기를 키우는 일은 세상의 엄마들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야
이가 없어도 무엇이든 합죽합죽 받아먹는 아이를 보면
세상에 무얼 넣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지
저녁마다 아버지가 사다 준 거버를 정말 잘 먹어
주었다. 지금도 상민이 피부가 좋은 것은 그 때 거버
먹은 덕으로 돌리는 상민이 아버지
무엇이든 만들어 주는게 좋았던 나는, 치마를 뜨게질
해서 입히고 모빌도 이쁜 걸로 안 사주고 내가
그림 그려서 만들어 천정에서 줄을 매달아 상민이
누워 있는 눈 위에 움직이도록 달아 주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궁색하게 살았나 몰라. 모빌이
기울지 않도록 힘의 중심점을 찾아야했는데..
그러고보니 자연 구멍이 많아졌겠지. 지금도 그 모양이
눈에 선하네. 구석탱이 모서리에 앉혀 놓고 뒤로
물러서 사진을 찍을려면 셔터를 누르기 전에 아기는
옆으로 시르륵 무너지고. 그 땐 무엇이 그리 급하고 초조
했는지 몰라. 아기가 크고, 키가 자라고, 자의식이 생기는 일은
잠 안자고 잡아 당긴다고 커 가는게 아닌데..후후
그땐 나도 젊었고 꼼짝없이 하루종일 아이에게 매달려
끙끙대는 일이 힘겹고 지루하기도 했겠지
세월이 주는 선물을 그 나이때엔 몰랐던게야
딸이 지금만큼 크면 엄마의 나이는 사십의 바다를
건너는거지. 그려면 담담해져. 콩알만하던 것들이
농구공만하게 성장하는거야. 이런 이야기 들으면
"이게 뭔 말인고?"할게야.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런 세월은 오는거고 마흔의 바다도 건너겠지
상민이 두 살때 살던 집을 리모델링 했었단다
아랫채 창고로 쓰던 방에 신문지로 도배하고
낮은 천정 아래 네 식구가 누웠으면
돌감나무 그림자를 걸치고 달빛이 방 안까지 들어 와.
더러는 투닥투닥 세멘 마당에도 소리없이 떨어졌지.
달빛은 소리를 듣는게 아니지. 잠결에 일어나서
잠자는 식구들을 보면 지에비 자슥들 아니랠까바
셋이서 똑 같은 포즈로 잠을 자네.
만쉐이~하며 두 팔을 머리 위에로 올리고.
그런 풍경을 혼자 깨어서 이마 우에 흔들리는
달빛, 그림자를 보노라면 생각은 감청색 밤보다
더 짙게 깊어지는거야.
날이 밝으면, 일상 속에서 까마득히 잊어먹을
상념일지라도 그 밤, 달빛 속에서 부화되고
발효되는 것들은 생에 보이지 않는 저변이 되는거라
고상민한테 이런 얘기하면
"엄마, 저변이 모야?"하겠지 ㅋㅋㅋ
집 공사 할 때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에서
노란민들레가 피었단다. 파내고 뜯어내도 참말로
끈질기게 올라오던 그 꽃, 노란 꽃.
2002년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 갔었단다
<바보천재 운보그림전.을 보러갔었지
그림을 다 보고 밑에 작품가게에 들렀는데
거기 조그만 액자에 앞 쪽의 버드나무 그림을 봤지
얼마나 마음에 쏙 들던지
서울서 그런거 산다는 건 꿈도 못 꾸던 때라
그 그림을 마음 속에 담아서 왔다.
눈으로 보고 지나치는 것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훨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걸
나는 이 버들을 그리며 항상 생각한다.
늘 마음으로 보아야지 생각은 그리하지만
살아보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도 그걸 가끔 기억하고 상기하는 사람과
생각도 안하는 사람하고는 삶의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을거야. 노력하는거지..잘 안되는 것에
대해 끊임없는 노력말이야.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거등.
상민이가 내게 달력을 그려달라고 하는고야
나는 한달만 하면 돼? 하고 물으니
일년분을 다 해달래
그거 쉽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지
엣날 상민이 만들기 숙제 있으면 내가 더 신나서
만들기를 했단다. 그 버릇이 남아서 요새도 상민이는
제 숙제를 내게 부탁하는데 이제 절대 해 주지 않아
가마이보니 버릇되겠더라구. 무작정 개기면 해줄거라는
생각을 깨부술려면 내가 매정해져야겠지.
충남 금산에 <자활후견인센터>가 있는데 성공회 신부님이
책임을 맡고 있단다.
몇년 전 내 주위의 아는 사람 부인이 뇌종양이란 병에
걸렸는데, 수술 후 치료할 때 수혈을 많이 해야 한데
그래서 헌혈카드가 필요해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에 그
내용을 올렸는데 그 때 대전교구청에 있던 신부님이 글을
읽으시고 갖고 있던 카드를 다 보내주셨단다.
나는 그게 고마와서 신부님께 다달이 달력을 만들어 보냈구.
그렇게 몇 해의 세월이 흘렀네
올해 여름 신부님이 택배를 보내셨는데 그 속에 신부님이
그 동안 모은 화구를 보내셨다.
물감, 붓, 책, 파랫트,심지어 물통까지 챙겨서 보냈더
라고, 여태 농사네 집안 일이네 그걸 쓸 일이 없었는데
상민이가 회곤이에게 선물할 달력을 만들어 달라기에
나는 흔쾌히 그 통을 열어 달력을 만들었다.
나이 들어가면 그 무슨 슬픈 삼류인지 ,<흔쾌히>해 줄수
있는 일들이 자꾸 줄어 들어. 소위 통박을 재야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는거야
오늘은 다섯달치를 만들었네. 다소 유치한 그림이래도
날짜만 있는 것 보다 훨 나으이
건강하고.
2006년 12월 1일 전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