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시답잖은 이야기

황금횃대 2005. 3. 13. 22:12

상처

 

 

 

 

숨찬 여름날도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는 팔월의 가운데 날

 

딸아이와 이야기하다가 손을 본다

 

보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다

 

엄마손 좀 봐라 내밀며 곁에 갖다 놓고 보니

 

열 손가락 마디마디 손등 어디에고 흉터가 굴비처럼 엮이였다

 

시절이 그랬다고 말하면 열네살 딸년이 영문을 알까, 그래 이것은 내 유년의 불살개였다

 

학교 갔다와서 저녁을 지으려 연탄불을 들여다보면

 

다 타버린 하얀연탄,

 

식어버린 흰색이 왜그리 깜깜하던지

 

부엌칼로 송판을 쪼개려다 손을 내리쳤단다

 

피조차 새하얗게 질린 틈 사이로 푸르게 드러난 뼈

 

십구공탄 불꽃이 피빛으로 타 오르고 난뒤에야 

 

여린 살들이 찢긴 판자 울타리 너머엔

 

그제서야 웃음이 연주되던 저녁

 

밥상 위의 화목꽃, 눈물꽃 피던

 

엄마,불살개가 뭐야? 그건 뭐냐면......

 

볼 때마다 활활 타는 상처야

 

나를 살려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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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촌아짐마 열일곱이 무찌마온천관광을 다녀오다

 

한 해 농사 새빠지게 지었으면 되돌아올 급부가 찬란하면 좋으련만

 

아시다시피 보시다시피 올 농사는 씨앗값 건졌으면 잘 지은 농사다.

 

그런저런 상철랑은 싸악 묻어두고 온천간다는 버스에 무조건 올라탔다

 

기실 온천행을 주도한 부녀계총무님도 장소를 정하지 못하야

 

그냥 오는 사람 봐서 그 자리에서 아무 온천이나 정해 가지고 가십쇼 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오늘의 온천은 <무찌마그냥올라타가는대로가봐>관광이 되고 말았다.

 

어제 이 사실을 모르고 가마솥에 물 디서(데펴서) 일차 초벌때밀이를 한터라 괜히 아깝기도 하였으나,

 

구두에 어디 때만 뺐다고 구두를 닦았다고 말 할 수있는가

 

일테면 물광 정도는 쳐야지 구두 닦고 광냈다 소릴 할 수 있으니

 

나도 오늘 계금으로 가는 관광, 물광이나 쳐주자 하는 심정으로 새벽길을 나셨던게다.

 

과연 <무찌마그냥올........>관광답게 그냥 지름값많이 드는 코스로 바로 정해 버린다

 

 

울진 백암온천! 뜨끈뜨끈한 물에, 미끄덩한 물에 담금질 수차례 후,

 

뜨끈뜨끈 사우나통에 들어가 땀빼기 수차례, 그리고 탄력을 돋우는 냉물세례 수차례....

 

이렇게 코스를 거친 후 나와서 손등을 보니

 

그동안 눌어붙은 설거지 땟국물이 쪼옥 빠져서 터진 손등이라도 뽀오얗타!

 

그러나 손등과 열 손가락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얼마 전 다시마 튀각하다 데인 자국에 새살이 돋은 흔적이 빠알갛다

 

어디 그것만 있는가. 나이 드니 모기한테 물려서도 좀 독하게 긁으면 영락없이 흉터다

 

이러구러 손등에는 또 세월만큼의 흔적이 남아 붉은 꽃 혹은 검푸르죽죽한 꽃을 피워 물었는데

 

이 또한 상처뿐인 영광이다.

 

무엇이든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은 슬프다. 

 

내 안의 그 무엇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도 슬프지만,

 

형체가 빤히 보이는 내 손등도 역시 그러하다.

 

이렇게 세월의 겉면적에 내면이

 

새암물에 가라앉은 돌멩이 처럼 아른아른 비추일 때

 

가심패기에는 그저 훠언한 구멍 하나 씨익 뚫어 놓고 간다.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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