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새끼 모양을 하나 더 만들어서 가방 뒷판을 완성하다.
저걸 만드느라 하루종일 바늘을 잡고 앉은 자리에서 오후시간을 다 보냈다.
그날 아들놈이 학교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 컴퓨터를 켜면서 내게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하루 종일 뭐했어요?"
"응, 달구 새끼 한 마리 만들었어!"
"정말?"
그러더니 녀석은 냅다 냉장고 문을 열고 두리번 거리더니 외친다
"엄마 닭, 어디있어?"
"먹는 닭 말고 이거"하며 만든 달구새끼를 보여준다.
"에잉~~ 아이씨 뭬야~"
그 닭이 그 닭이 아닌개비여 ㅋㅋ
모서리와 귀퉁이 바느질 하는거, 첨에야 어려웠지.
그러나 자꾸 하면서 모서리 돌아가는 법을 알게 된단다.
이건 말로 설명해서 알 수가 없어. 하면서 터득할 수밖에
살면서도 말이야 맞붙어 있는 면의 다른 쪽에 뭐가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을 때가 있지.
모서리를 조심조심 돌아가는거야
그러면 덜 부딪쳐
서로가 틀면서 돌아서는 힘들이 만만찮거든. 맞부딪히면 큰 사고야.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여
다들 살면서 한번씩 느끼잖여.
나만 아는가?
그런개비여 ㅎㅎㅎㅎ
이렇게 가방 하나가 완성되었어.
삘건 달구새끼는 좀 못났네. 그래서 자꾸 파란날개 달구새끼 있는 쪽만 펼쳐 놓고 다독다독하게 돼
그걸 상민이가 파악하고는 뭐라 한 마디 하네
"못난 놈한테 떡하나 더 주는 법인데 엄마도 어쩔 수가 없군하~"
"눈치챘어?"
나도 어쩔 수 없는개비여
그 때가 아마 내가 중학교 일학년 아니면 이학년이였을거야. 아, 이학년 때다. 우리아부지가 노름 때문에 전세금 빼서 빚가림하고 급하게 그 집에서 나와 울도 담도 없는 쓰러져가는 두 칸 기와집으로 이사 갔을 때였으니까. 내가 중 2니까 바로 밑에 남동생은 초딩 6학년, 그 밑에는 3학년, 그 밑에는 아직 학교 들어 가기 전, 그러니까 일곱살이였을 때다. 1녀 3남이 한 방에서 오글오글 살 때다.
지금 대구고등법원과 검찰청 맞은 편은 큰 건물로 정신 없지만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는 거기가 아직도 밭이였다. 땅 임자는 제 각각 돈 많은 사람들이고(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거기 빈터에다 텃밭을 일궈 먹던 사람들은 우리처럼 씨러져가는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이였다. 한 평이라도 더 개간해서 푸성귀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지어 먹었는데, 그 때 우리 엄마는 열무를 갈아서 신천시장에 팔러가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도 울 엄마는 애들 밥 굶길까바 열심으로 살았다. 나도 우리집 형편을 빤히 아는지라 엄마를 도와 텃밭에 풀을 매고 엄마일을 도와 주었는데, 하루는 엄마가 텃밭에 가서 호박을 따 오라해서 갔는데 풀숲에 보조가방이 하나 버려져 있었다. 보조가방은 청지로 작은 기타모양을 한 가방이였는데, 중2가 되도록 보조가방이 뭔지 모르고 살던 나는 눈이 뚱그래졌다. 세상에 이렇게 이쁜 가방이 있나. 기타모양의 가방 위에는 기타줄이 수로 놓여져 있었고, 그 속에는 작은 분홍에나멜 구두와 또 다른 물건이 들어 있었는데 그 하나는 잊었다. 하여간 기타모양과 에나멜 구두는 선명히 기억이 난다.
얼씨구나 주은 천가방을 나는 학교에 잘도 들고 다녔다. 분홍구두야 내 발에 맞지도 않는 초등학교 사이즈여서 돌아보지 않았지만 보조가방이야 말로 요긴하게 쓰였다. 시간표에 가사실습이 있으면 다홍빛 꽃다발을 수 놓은 앞치마를 부러 그 작은 기타모양 가방에 넣어서 들고 갔고, 가방에 들어갈 책도 나누어서 보조가방에 넣어서 가방 두 개를 보란 듯이 들고 다녔다. 그런데.
하루는 저녁 즈음에 아주머니가 작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엄마와 이야기를 한다. 나가보니 동네 사는 아주머니였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이였다. 한참 그 동네는 우리집 같은 씨러져가는 집이 한 무더기있고, 또 한켠에는 이층 양옥집과 슬라브 양옥집이 지어질 때였으니까. 여차저차 아줌마 얘기를 들어보니 줄거리가 이랬다.
"우리 딸아이가 가방과 구두를 사서는 나한테 혼날까바 그걸 그 밭에 감춰두었는데 나중에 찾으러 가보니 가방이 없어졌대요. 근데 집에 딸이 우리 딸아이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우리 딸이 나한테 자꾸 잃어버린 그 가방을 저집 언니가 들고 다닌다며 찾아 달라고 졸라서 왔어요. 미안하지만.."
그 아줌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타가방 모양 속에 들어 있던 내 물건들은 와르르 방바닥에 쏟아지고, 흘겨보는 엄마의 눈매끝에 분홍구두가 가방 속으로 들어가서 주인 손에 건네졌다. 가방 주인 아줌마는 좀 미안하다는 얼굴이였고, 나는 더 챙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주워오면서도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머 그런 숨은 스토리가 있는 줄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더 사과를 하였고 가방주인 엄마는 괘안타며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가슴에 꼭 안고 가는 가방 주인의 뒷모습은 말해 뭣하리
엄마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 그것도 기억에 없다. 울 엄마는 보조가방이 없으니 딸이 얼마나 서운해하겠느냐는 생각을 할 만큼 생활이 편하지 않았다. 그냥 그걸로 끝이였다. 나도 그걸로 끝이였다. 그런데 요새 손가락이 빵구가 나도록 줄기창창 가방을 만드는걸 보면, 그 때의 그 궁기가 그냥 끝나버린 뭣이 아닌개비여. 이런 걸 정신적 용어로다 뭐라하지 아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