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모 부어 놓은 것을 정식으로 이식했다. 콩 골이 기다랗게 장만해져 있는 곳에 그것들을 뽑아다 다라이에 담아 가서 두 푀기씩 심었다. 어제 저녁 폭우와 우박으로 나폴나폴 올라 온 속잎이 미친년 속곳처럼 너덜해졌다. 오후 세시의 볕은 작렬이다. 산에서 노루가 내려와 뜯어 먹지 않는 한 이 콩들은 다시 잎들을 마술처럼 내놓으며 키가 클테다. 가쟁이가 벌고, 애벌 순을 쳐주면 콩들은 더 많은 가지를 뻗을게다. 혹시나 하고 심은 붉은 팥도 새싹이 났다. 이것들도 폭우를 피해가기 어려웠다. 뿌리가 나달나달하도록 폭우는 여린 팥 뿌리를 훑고 갔다. 그래도 떠내려가지 않고 몇 안되는 뿌리들이 땅을 움켜쥐고 있다. 살 것이다. 살아낼 것이다. 반드시 살아서 팥꽃을 피울테다. 하늘을 향해 쫑긋 내민 팥싹은 세시의 볕 아래 그렇게 소리 지르고 있다. 호미로 드륵드륵 흙을 긁어 모아 북을 돋워준다.
들깨모도 뽑아서 새로 심었다. 올해는 들깨를 아주 많이 심을 거다. 한 뙈기에다 풀을 매가면서 들깨를 심는다. 몸뚱이가 성냥개비보다 더 가늘다. 두 개씩 나란히 심어 나간다. 아무리 심어도 들깨 심은 줄은 똑바로 만들기 힘들다. 들쭉날쭉. 호미질하는 오른쪽 새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힌다. 닿일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이거 쪼매 끼적거렸다고 손가락에 물집이라, 이렇게 어물어터져서 무얼 해먹고 살까.
짬짬히 만든 가방을 포장해서 부쳤다.
황간우체국은 새건물을 짓는다고 동일식육식당으로 임시 이전을 하였는데 소포를 부치러가면 옛 냄새가 났다.
우체국장은 전화로 그 상황을 열심히 상대방에게 전해 주느라 정신이 없다.
가방은 농활와서 열심히 일 해준 언니에게 부쳤다. 이 언니는 일 해주고 신발을 잃어버렸다.
어떤 씨부럴놈이 씻어 놓은 언니 샌달을 가져 갔다.
그래도 내가 이런 얕은 신명이 있어 갚을 수가 있어 다행이다. 가방과 신발은 전혀 다른 용도지만 나는 그 두가지가
같은 형제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당진에서 살았다.
박물관같은 한정식 식당에서 먹고 자고 산책하며 온전히 쉬었다. 그녀가 내어 오는 식사는 깨끗하고 맛나서 나는
자꾸 따라하고 싶어진다.
저녁에는 노래방에서 주인과 거기 온 다른 회원들과 어울려 그들이 내뿜는 끼를 보았는데 문화적 충격이 너무나 커서 할 말을 잃었다.
선물교환에서 나는 홍성 유기농 마을 아지매가 담근 오가피술 단지가 당첨되었다. 역시 술은 술꾼을 알아보는 법이다.
윤구병새임이 각자에게 사인을 해준 책도 받았다. 저 책도 얼른 읽어야하는데.
천국에서 보내는 날들이 아마 저렇지 않을까.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고, 낭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살아 온 여정을 반추하며
앞으로의 날들에게 무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