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다녀오고 그 다음날인 5월 1일은 큰시숙의 기일이라.
옛날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스타렉스 빌려서는 버스전용차선으로 올려 삼형제의 아들 딸들이 형편 닿는대로 같이 갔다. 큰시숙은 병조가 딱 돌이 되는 날 장례식을 치뤘다. 그렇게 해마다 새로 찧은 쌀을 한 푸대 싣고, 봄과일과 떡을 해서는 한 차에 온 식구들이 타고 부평으로 제사를 지내러갔다.
네비게이션이 없었던 때라 청천동 무지개아파트를 찾아갈라치면 깜깜한 밤에 몇 번이고 차를 세워 물어보고, 신호 대기중인 옆 차에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을 하고는 길을 물어물어갔다.
촌구석에서 형제가 모두 택시 운전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살지만, 부평같은 번화가 길이란 갈 때마다 낯설었다. 겨우 갈 때마다 좌회전 우회전을 익혀 두어도 바삐 일년을 살다가 돌시를 맞아 저녁 때 온 식구를 싣고 다시 길을 나서면 그 길은 초행길인 듯 갑자기 낯설어졌다.
물어 물어가는길은 어떨 땐 네 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있었다. 이맘 때 월곶 어디를 돌아 시내 도로를 빠져나가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와락 열어 놓은 창문으로 넘어 왔다. 지칠대로 지친 아이들과 나는 꽃향기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고스방도 뿜어대는 열기에 신경질이 날대로 나다가 아카시아 꽃내음이 덤벼들면 두 손을 들고 조용해졌다. 작은집 아이 셋, 우리 둘, 어른 여섯이나 일곱..이렇게 타고 가다 휴게소에 내려서 뭘 몇 가지 사먹으면 그 경비도 만만찮았다. 젯상에 올릴 떡이며 과일, 술에 자동차에 들어가는 경비와 통행료까지..고스방의 주머니는 바람소리가 요란했다. 그 땐 혼자서 감당하는 그 비용에 내가 입을 좀 삐죽거렸다.
어제는 고스방과 나, 그리고 시동생과 조카 병갑이, 이렇게 딸랑 너이서 제사를 지내러 갔다.
일찌감치 출발을 하겠다고 고스방은 며칠 전부터 계획을 잡았으나 시동생은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느긋하게 움직였다. 두 시 출발하려고 마음 먹은 고스방이 제 동생이 다섯시가 넘어도 오지 않자 머리뚜껑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연신 시동생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내게 괌을 지른다. 그러다 다섯시 반이 되자 시동생이 나타났다. 조카 병갑이와 같이.
자동차 트렁크에 쌀 한 푸대를 싣고, 여기저기 가게를 들여다보며 싱싱하고 예쁜 수박과 참외를 사서 싣고, 시동생은 동서가 챙겨준 고사리 말린 것과 곶감을 실었다. 이렇게 단초롭게 나선 길.
고스방은 시동생이 아프고부터 부평갈 때 자기가 운전을 했다. 물어물어 가던 시절을 지나 이젠 도착지 건물 이름만 입력을 하면 정체불명의 여자가 연신 방송을 하면서 길 안내를 해 준다. 300 미터 앞에서 좌회전, 신갈Jc까지 쭈욱 직진..어쩌구저쩌구..그러다 속도가 좀 올라가는데 단속구간이면 100, 100, 100을 외치며 속도를 줄일 것을 종용한다.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감수하며 나는 바깥 풍경을 본다. 산은 이미 연두의 물결이 한 차례 지나가고 올리브그린과 연록색의 시절이 찾아왔다.
실컷 네비의 안내에 잘 따라 가던 고스방이 갑자기 외곽도로로 빠졌다. 서창과 월곶사이 7킬로미터 구간이 좀 정체 된다는 전광판을 보고는 넵다 차를 그 쪽으로 몰아댔던 것이다. 그러더니 인천공항 쪽으로 빠져야하는데 판교쪽으로 시부재기 빠졌다. 그래놓구선 날보고 괌을 지르고 신경질을 낸다. 네비는 연신 경로탐색을 새로 한다고 급하게 외쳐댄다. 네비보고 고개 들면 또 신호등에 걸렸다. 간신히 신호 건너가면 네비는 또 경로탐색을 한다...어이쿠나...등때기 땀이 난다.
겨우 우회전, 우회전을 거듭하고 다시 빠져 나온 곳으로 되올라가 부평으로 가서 경인고속라인을 탄다.
그렇게 찾아가니 여덟시 반이 되었다. 차에 실고간 것들을 내려 엘리베이터에 싣는다. 촌에서 올라온 사람 아니랠까바 허연 쌀자루에 쌀을 담고, 봉개봉개 과일에 고사리에....떡보재기에.
휴게소를 한 번도 안 쉬고 와서 고스방은 매우 피곤하였다. 제사상은 형님이 미리 차려 놓았다. 허기를 면하려고 떡을 젯상 우에 놓고는 우리도 한 접시 담아와 금방 먹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같다.
제사를 지내고 치우고 다시 황간으로 되돌아 온다. 출발 할 때가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졸며 깨며 집에 오니 새 날, 네 시이다. 아들은 대문을 조금 열어 놓고 잠이 들고 나는 씨러지듯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