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들 보따리싸서 휴가 댕길 때 나는 집구석 콕`하고 살았어
비 오는 날 외에는 호미자루 옆에 끼고 살았구
마구마구 돋아나는 풀들도 살뜰한 내 눈흘김을 담뿍 받았지.
드디어 오늘 나는 날을 받았어. 병원을 가기로.
손가락 관절이 극도로 악화가 되었는가 손가락을 구부릴려면 로봇처럼 움직여지지. 유연하게 둥근 곡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뼈들이 각도를 기억하며 구부려지지 이게 무슨 말인지 관절이 아프지 않는사람은 몰러. 죽어도 몰러. ^^
금강 물줄기를 옆구리에 끼고 도는 산들은 담뿍 물안개를 머금고 머리에는 구름모자를 모가지가 아프게 두껍게 쓰고 있더군. 간혹 모자는 뜯어져서 빗방울이란 실오래기를 흘리기도 하구..뭐. 그런건 괘안아 내가 집을 떠나 어딜 가고 있다는게 중요하지 병원이면 뭐 어때?
내가 시집와서 대구 친정집에 갈 때 황간에서 대구까지 통일호 기차 요금이 1100원쯤 했는데, 대구보다 황간에서 대전이 가까운데도 지금은 대전까지의 버스 요금이 삼천 삼백원이야. 이십년 사이에 물가가 세 배가 뛰었군. 그 땐 또 돼지고기가 엄청 싸서 돼지고기 한 근에 천 오백원쯤 했을걸..지금은? 목살이 팔천원이 넘지 아마? 가만히 보면 세월은 물가를 끌어댕기는데 가장 힘을 쓴거 같아. ㅎ
지금 사진을 보니 알겠어. 내 손바닥 안쪽으로도 주름이 깊어진것을. 평상시 나는 손등이 거칠 황짜가 되는 것만 조금 신경을 쓰고 슬퍼했지모야. 근데 이젠 안쪽도 조금 눈길을 돌려야겠어. 사람의 몸과 마음만 안팎으로 구성되어 있는게 아니고 마디마디가 모두 안팎이 있구나..했지.
병원, 거긴 뭐 아무래도 좋아. 하얀가운을 입은 여의사가 내 담당이고, 아침 저녁의 알약 갯수가 하나쯤 차이가 나는 약봉다리를 한달치 처방 받는 것도 똑 같고, 이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여름동안은 관절이 고단하고 아프며 겨울 동안은 또 지낼만 하다는거.
냅다 당진으로 달렸지. 보리밭은 옥수수밭으로 바뀌었고 백일홍은 붉은 꽃을 매달고 꽃등불을 켜고 있데
미당의 창문 옆에 앉아 보리밭에 부는 바람을 바라보는 일 만으로도 배가 불러
연잎 찰밥을 맛있게 먹었지.
식사 나오기 전에도 여러가지 요리가 나오는데 슴슴한 주인장의 맛이 그대로 음식에 담겨있지.
꼭꼭 씹어서 정말 잘 먹었네
농사일 하느라 흘린 땀을 생각해서 나는 나에게 오랜만에 맛있는 밥상을 선물했지.
내 눈도 좋아라, 입도 즐거워, 배도 신났지. 배부분에 옵션으로 달려 있는 똥배도 덩달아 띵호와!
밥을 맛있게 감사하게 먹고 타로점을 보고 왔네.
늘 인생은 좋은 것들을 내게 제안하고, 날 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하고, 뭣이든 심심찮게 해줄테니 걱정마라고 타로카드가 말하고 있어. 오케이, 난 잘 알아 들었으니까 우리 잘 해 보자구
고스방이 저녁 먹으러 들어 오기 이십분 전에 집에 도착해서, 이십년 전부터 준비해온 저녁을 얌전하게 차려내고 있다. 모르지 고스방은. 내가 건강한 점심 한 그릇 내게 쏘느라고 당진까지 갔다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제적으로 내게 점심을 왕창 쏴버린 동행한 공주님에게도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