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사월이 시작되면서 체육대회 날짜를 잡기 위해 체육회는 몇번의 회의와 결정이 있었겠지. 면민 수가 자꾸 줄어드는 것도 큰 걱정이지만 농사철 시작 된 마당에 이런 행사에 고작 몇 사람 와서 어슬렁댄다면 그것도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4월 이장 회의 시작되자 바로 체육회 임원들이 양복 갖춰 입고 일찌감치 나와서 이장들에게 <협조 부탁해요잉> 하면서 유인물까지 만들어 세세하게 설명을 한다. 원래 2년마다 격년씩 열리는 것인데 내년 부터는 해마다 한다는 말도 나온다. 그거 한 번 하자면 얼마나 공이 들고 마음이 많이 쓰이는데 허던 대로 2년에 한 번 하구 말지 말라꼬 년년이 한다고 난리 지랄인지 모르겠다며 뒤에서 꿍시렁 거리는 소리도 듣긴다. 내사 이장 1년차 이니 이런거 하면 좀 신경은 쓰여도 재미있지를. 천지를 모르니께 ㅋㅋㅋ
5월 3일로 날이 잡히자 또 일각에서는 엎어지면 어버이날행사도 해야하는데 3일에 동네 잔치하고(체육대회도 동네 사람 다 먹이고 놀고 해야하니 동네 잔치다) 대앳새 후에 또 어버이날 행사해야 하면 너무 부담이 크다고 두가지 행사를 뚜드려 엎친 동네도 제법된다. 그러나 우리 동네는 따로 국밥으로 하기로 하다.
행사 1주일 전에 개발위원들 식당으로 오라해서 오랜만에 삼겹살 구우며 술잔 두어잔 돌리면서 행사날 식단은 어떻게 하고 게임선수는 누굴 선발하면 좋겠다는둥 오가는 말들이 많다. 갈 수록 촌구석에 나이 많은 사람만 적체가 되어서 젊은 선수 하나 선발하려면 눙깔을 까뒤집어도 없는 판국이라, 물동이 이고 달리는 게임은 전부다 안한다, 못한다 하는 반응이 더 많다.
"물동이 이이 본지가 언진디 날 더러 그걸 하라그랴아~~"
"촌구석에 상수도가 보급되고는 아무라도 물동이를 이이 봤나? 다들 틀면솨~~하고 나오는 수돗물 먹고 쓰고 살았재. 그래도 암것도 모르는 우리보다 따뱅이라도 아는 형님들이 안 낫것소"
얼르고 매치고해서 게우 선수 3명을 선발해 놓는다. 다행히 이인삼각경기는 다세대주택에 사는 젊은 아지매들과 그의 남편들이 출전을 해 준다고 해서 해결이 되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타지역에서 흘러 들어 온 동민들이 되놔서 마을일에 벨로 협조를 잘 안 해준다. 그런데 거기 사는 젊은 흥배씨를 새마을 지도자로 선출을 했더니 요번 일에 흥배씨가 적극 나서서 이인 삼각 경기 선수 선발은 수월하게 되었다.
고리걸기니, 윷놀이 선수는 경기 당일 나오는 아저씨 아줌마들 좀 시키지 뭐...결국 씨름 선수가 젤로 큰 문제였는데 동네마다 선수층이 습자지처럼 얇다보니 몇 동네 어불라서 한 팀을 만들어 각자의 마을에 있는 선수 한 둘 선발해서 5명을 한 팀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서송원, 구교리, 완정리, 마산리 이렇게 4마을이 합쳐서 한 팀이 되었다.
체육대회 날이 밝았다. 모든 음식 준비는 어제 저녁까지 다듬고 다지고 해서 재료준비를 끝내놓고 새벽 다섯시 반에 수미아줌마가 회관 가마솥에 돼지고기 수육을 삶는 일로 시작이 되었다. 나는 집에 밥 준비하랴 빨래 돌리랴 회관나와서 방송하랴 아주 요령소리가 난다. 거기다 없는 아이스박스에 대형 전기밥솥, 다라이 갖다 나르느라 아침 댓바람에 회관과 집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는지 몰것다. 회관하고 집하고 가까와망정이지 멀었다면 체육대회장에 가기도 전에 떡실신하게 생겼다.
7시가 조금 넘어 청년회 회장 선길씨와 흥배씨가 화물차를 가지고 왔다. 커다란 화덕을 싣고, 쌀은 씻어서 전기밥솥에 얹어 놓고 10시에 코드만 꽂으면 밥 되게 준비해 놓고, 나물에 국거리에 덜어 먹을 밥그릇에 국바가지에 채반에 부침개거리..... 한끼 먹는 일에 장비는 두 트럭이나 된다 ㅎㅎ 밥상까지 실어 날라야하니 그 살림 규모가 자치생 이삿거리보다 많다. 프로판가스통까지 얹어서 가니.
어제 비가 와서 천막도 미리 치지 못해서 그때가서 쳤다. 운동동에는 만국기가 걸리고, 걸게그림으로 황간면민화합대잔치라는 명분이 떡하니 걸렸다. 무대가 꾸며지고, 속속 초청인사가 자리를 메우고, 그 하단에는 입장식하는 동네 주민들이 플라스틱 의자 위에 하나 둘씩 동네별로 채워졌다. 입장식도 의자에 앉아서한다. 다들 노인들이니까 오래 서 있들 못한다. 무대에서 인사말과 축사가 이어질 때 이장들은 본부에 뛰어가서 이장 패찰과 목걸이 볼펜, 그리고 행운권을 한 주먹씩 받아 온다. 장수가 많아지면 결국 확률이 낮아지는데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한 주먹 받아와서 동민들에게 세 장, 네 장씩 나눠준다. ㅎㅎㅎ
입장식 끝나고 곧바로 각 동네 천막안으로 사람들이 퇴장하면 그 때부터 아지매들은 상 차리기 바쁘다, 수육을 썰고 새우젓을 덜어 내고, 무침회를 접시에 담고 쑥떡도 가지런히 담고...어른들 입맛 다실 것 준비하느라 사타구니에 바람 소리가 난다. 그 동안 얼굴도 보도 못하고 지낸 먼데 동네 사람들과 오랜 만에 만나 어이쿠 안 죽고 살아 있응께 이렇게 만내는구만요..하면서 인사도 나눈다. 나누는 인사에서 누구누구는 뜬금없이 세상 버린 이야기를 듣고, 누구누구는 이름도 모르는 노인 요양소로 옮겨 졌다는 소식도 듣고, 누구누구는 아들네 집으로 거처를 옮긴 사연들을 듣는다. 올초에 새로 부임한 정태생 면장의 얼굴도 보고, 곁에 따라다니며 인사하는 체육회장이 영풍철물집 아들이구나...이장협의회 단장은 명륜동 사람이구먼...하고 고개를 끄덕한다.
본부석에는 연신 선수들 출전 시키라고 동네 이름을 부른다. 그라고 오후 노래자랑시간에 노래 신청 안 한 부락은 퍼뜩 본부석으로와서 노래 할 사람과 곡목을 알려주라고 고래고래 괌을 지른다. 일껏 짜 놓은 선수들은 일요일이라고 성당 갔다 온다네 어허 참, 그라만 윷놀이는 노인회 총무님하고 분도 고모부하고 석철씨 어무이가 좀 나가씨요...윷은 잘 놀고 못 놀고가 없고 그냥 뗀지기만 하면 됭께 퍼뜩 가보세요...윷놀이 멍석을 깔아 놓을 곳까지 인솔해가서 무조건 일등 허시라고 손가락을 추겨세운다. 고리던지기 선수는 운동장 우측에 모여주세요. 각마을 이장님들께서는 고리던지기 선수들을 왕왕왕)))))))))
끈없는 마이크 들고 게임진행자는 정신없이 선수 내보내라고 난리다. 지기럴..정신이 하나도 없네.
겨우 두 게임 선수 보내놓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있으니 운동장 뒷편 씨름장에서 씨름 선수 보내라고 또 방송이 나온다. 우리 팀 이장들이 모여서 선수 내놓으라고 하니 선수가 있니 없니..말들이 많다. 무조건 한 명씩은 데리고 오라고 난리를 치니 그제서야 어데서 하나씩 델꼬 온다. 나는 또 여자선수로 뛰게 되었다. 마흔 일곱이 되어도 현역에서 뛰는 씨름선수는 대한민국에 나 혼자 밖에 없을겨 ㅋㅋㅋ
<씨름 단체전 3등 상품^^>
처음 나와 겨루기를 한 선수는 내 아래 동서의 올케 언니다. 그러니까 동그런 씨름 모래판에 심판은 내 시동생이고 맞겨루는 선수는 나와 사돈간이다. 그러니까 한 집안 사람들이 다 그 판에 올라 온 셈이다. 그만큼 동네가 좁다. 나는 사돈을 모래판에 두 번이나 매때기를 쳐서 세 판까지 갈 것도 없이 대번에 이겼다. 모래를 털고 나오는데 기준씨가 사둔을 이기면 우짜냐고 우스개 소릴 한다. 사돈이나마나 이건 경기니까
두 번째 겨루기에서는 고등학생하고 했는데 덩치도 크고 힘도 어찌센지...그래도 내가 누군가 찌질한 씨름판이지만 근 십여년을 꾸준히 참석하며 갈고 닦은 요령이 있지않나. 고등학생도 이겼다. 경기 끝나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거기 나온 여자 선수들 중에는 가장 자세가 단단하다나 어쩐다나..어이구 이건 웃도 못할 일이여.
쌍둥이 아버지와 새마을 부녀회장이 함께 참석한 고리던지기에서 우리 동네가 1등을 했다. 그리고 씨름 3등, 또 이인 삼각 경기에서 2등...하여간 종합해보니 우리가 종합 2위이다. 1위를 한 신평리는 워낙 인구도 많고 선수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가 습자지정도라면 거긴 원목탁자에 비교할 수 있다. 그만큼 차이가 나는대도 우린 마음을 똘똘 뭉쳐서 2위를 했다. 얼마나 기쁘던지...종합 2위라는 최종 점수 집계가 나왔을 때 모두 자축한다면서 부러 슈퍼에 가서 씨원한 맥주 한 박스 사다가 다들 한 잔씩 돌렸다.
노래자랑이 끝나고 중간중간 행운권 추첨이 끝나고 한 머리는 짐 정리해서 다시 차에 싣고 온다. 포장도 접고 깔판도 털어서 돌돌 말고, 쇠아궁이도 싣고 가스통도 들어 얹고, 남은 부침개도 싸고, 우승컵도 들고...이렇게 마을로 돌아와서 또 제자리로 챙겨 넣는다. 하루해는 가뭇없이 스러져가고 우린 남은 음식으로 우승컵에 맥주를 한 컵씩 따뤄 금잔에다 술 한 잔씩 한다. 다들 행복한 얼굴이다.
운동장에서 돌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소주 일 잔씩 마셨지, 거기다 동네 와서는 우승컵 대지비 싸이즈에 몇 잔 마셨지 응원한다고 죙일 괌을 질렀지...목이 따갑고 머리는 쿡쿡 쑤신다. 집에 와서 씻고 누우니 편안하지를 않다. 종일 영육을 쑤석거려 놓았으니 그게 잠잠해지려면 서너시간을 뒤척여야지 아암...이젠 무엇이든 흔들어 놓으면 그것이 가라 앉는데도 조금의 시간이 필요한 세월이 내게도 온 것이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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