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골목에서 조금 더 올라가 교장새임집으로 내려가는 골목에 가면 혜정이 엄마가 살아요 올해 일흔 일곱이예요
쉰살 전에 과부가 되어서 삼녀 일남을 다 갈채고 키워서 시집 장가를 보냈지요. 근데 노무현 대통령 그리 되기 일 주일 전에 이 할머니 막내딸도 급성 심장 마비로 죽었어요. 근데 그걸 한 달 반이 되도록 형제간들이 엄마에게 알리지 않았지요. 화장해서 납골당에 넣어 두고는 엄마에게 병원가게 서울로 오라고, 자꾸 이유도 묻지 말고 서울로 올라 오라고 그러더래요. 이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큰 딸래집에서 이틀밤을 자고 나니 아들이 와서 그러더래요 "엄마 막내가 아주 먼 곳으로 갔어" "그게 무슨 말이야? 외국 갔어?"하고 물으니 그게 아니고...하면서 아들이 울음을 깨물며 이야기해주더래요. 엄마가 건강이 좋지 않으니 일을 다 치뤄 놓고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던겁니다. 자식들은 모두 서울 살고 할머니 혼자 작은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어요. 이즈음엔 귀도 잘 들리지 않아서 동네에 방송을 하면 꼭 무슨 일로 방송을 했냐며 전화로 물어 옵니다. 이번에 몇 가지 일을 도와 드리고 어제는 농협가서 돈을 찾아 달라고 하시기에 내 가는 걸음에 돈을 찾아 드렸더니 여러가지로 고맙다고 낮에 살짝 자기 집에 왔다 가랍니다. 이유도 묻지 말고 한 시쯤 와달라고 하기에 밭에 갔다가 들깨밭 매고는 흙을 씻고 할머니 집에 갔더니 식당에서 오징어 덮밥을 시켜 놓았세요. 고맙기는 한데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나도 칼국수 한그릇 시키고 했다면서 같이 먹자고 하네요.
오징어덮밥 한 그릇에 할머니가 많다고 덜어 주신 칼국수 한 대접까지 다 먹는데 할머니는 덜어 놓은 그 칼국수 한 그릇이 다 불어 터지도록 그간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눈물이 글썽글썽..애끼던 딸이, 엄마 사정을 잘 알아서 이것저것 살갑게 해 주던 딸이 그렇게 되었는데 자존심 강한 할머니라 어데 그 맺힌 맘을 쑴풍쑴풍 이야기 하지도 못하고 속만 상해 있었던게지요. 나는 꾸역꾸역 밥을 먹고 할머니는 칼국수 한 그릇을 이리뒤적 저리뒤적 거리며 없는 입맛에 칼국수 국물만 숟갈로 떠 드십니다. 이야기는 할머니 시집 올 때로 갔다가, 친정 이야기로, 그 동안 어떻게 홀몸으로 아이들 키우며 살았는가로...갈피없이 건너 뛰었다가 또 날 보고는 "어여 먹어여, 나는 천처히 먹을테니 이장님은 어여 먹어여.."하며 손짓으로 먹으라는 시늉을 하십니다.
이 땅의 엄마들이라면 누구나가 우태롭게 건넜을 그 시절의 강들.
이제 빚도 다 갚고 살만하니 이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또 눈가의 눈물을 훔치시는 할머니.
자식새끼들 생각하믄 그저 내입으로 들어 가던 것도 멈칫하며 그러구러 살은 세월
할머니의 이야기는 연대기가 따로 없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네버엔딩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장마 끝나고 이 촌구석으로 관광버스는 아침부터 꾸역꾸역 톨게이트로 몰려듭니다.
우리집 콩밭이 이 톨게이트 옆에 있어서 나는 사정을 잘 알지요. 밭 매다보면 버스가 들썩들썩하는 소리가 나요 ㅎㅎ
지심은 끝없이 돋아나고 가지를 치고, 나는 콩골에 팥골에 엎어져서 밭을 맵니다.
해는 황도를 밟아 내일로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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