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던 포도 작업이 몇 콘티 남지 않아서 일찌감치 치우고는 차고 안, 임시 내 작업장으로 들어왔다.
맨땅에 낡은 포장을 깔고, 그 위에 야외용 매트 하나 깔고 앉아서 일하면 엉덩이에 괘히 땀 채이고 꿉꿉하다. 그래서 집구석에 있는 발딲기 만들어 놓은 것을 깔고 앉아 일을 하는데 맹 포도알을 깔아 뭉갠 자욱이라, 한 철 포도작없에 발닦기만 몰골이 싸납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서 차분차분 가위질을 하며 포도손질을 하고 하얀 종이 봉지에 포도를 고대로 넣어서 얼라들 포대기 싸듯 그렇게 양쪽으로 오마서(오믈뜨려서) 단단하게 싸서는 포도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포도박스에 포도 담는 것도 처음 하는 사람과 경력자는 틀리고, 또 그 성질대로 담겨진 모양이 나오는지라. 우리집 동서는 사람이 얼마나 찬찬한지 포도송이 상자에 담아 놓은 것을 보더라도 성격이 그대로 나온다.
나는 뭐....천만인이 아시다시피 대충 뚤뚤말이로 집어 넣지. 친정엄니 말씀대로 무슨 딸아가 벌가리 맹키로...ㅎㅎ
한참을 하고 있는데 하마산리 동네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노근리 상가집에서 동네 집 가까운 산에 산소를 쓴다고, 이장한테 상여 지나간다는 기별이 왔느냐고 묻는다. 아니, 저한테는 기별 없었는디유.
아니, 아침부터 상여가 동네길 한 가운데로 지나간다는데 그런 경우가 어디있냐고. 원래 사람이 밀집해서 사는 동네 가까이는 아무리 산이 즈그들 꺼라도 묘자리를 쓸 수가 없거늘...그게 혐오시설(?)이니 동네 반경 500미터 이내에서는 산소를 쓸 수 없구만..
일을 하다가 동네 쫒아 내려 갈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노인회장님한테 전화를 해서 어찌된 일이냐고 여쭈었더니 이러이러해서 동네 한 가운데로는 못 가게 하고 우회해서 돌아가게 했다나.
자꾸 어떻게 됐냐고 전화는 오지..앉아서 일을 못 하게 생겼다. 할 수 없이 비가 오는데도 오토바이를 타고 아랫마산리로 내려가보니, 벌써 고인의 유품을 태우는가 실실이 가을비가 내리는 산에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른다. 올라가서 상주 좀 뵙자고 했더니 아직 일이 안 끝났다고. 그래서 그 마을 이장님도 오셨을팅게 좀 뵙자고 했더니 오셨다. 그래 이러저러해서 동네 가까운 곳에 묘를 쓰니 동네 사람들이 싫어해서 민원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더니..집안 사람이라며 한 사람을 데리고 오는데 우리 동네 빵구집 아저씨라. 일이 순서가 어찌됐냐하면,
그제 노근리에서 오토바이 동호회 사람들이 한 줄로 비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행사를 했는데 앞에 차가 막혀서 그 차를 추월해서 앞으로 나갔는데 그기에 딱 돌아가신 할무이가 있다가 그 오토바이에 들이받친거라
요즘 촌 길에는 사람들이 잘 안 다녀서 차들이 얼마나 씽씽 달리는지 눈에 사람이 띄면 벌써 속도를 제어하기 힘든 지경이라 그 할머니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어` 소리도 못하고 돌아가싰네. 예순 여섯인가 일곱이시라니 자슥들 다 키우고 이제 좀 조용히 지내며 자기 시간 좀 가질 형편이 되었는데 고만 가신게라 불의에 사고로.
졸창지간 당한 일이라 그 집에서는 미리 산소 장만도 못 해놨을거아녀. 그냥 집안 산에다 급하게 묘자리를 봐봐서 오늘 장사를 치르는데 동네 들어오는 들머리에서 벌써 동네 사람들에게 저지를 당하고 만 것이다.
동네 가운데 길로는 못 지나가는따나 우회를 해서 가라고는 했는데(노인회장님이) 또 다른 동네 사람 몇은 생각이 다른거라. 그런 일이 있으면 먼저 동네 이장한테 알리고 양해를 구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싹 무시하고 먼저 들이댄 것도 마뜩찮은데다가, 동네 복판길에서 고개만 들면 빠꼼 보이는 묘터도 기분이 나쁘니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 집안이야 자기네 산이니 쉽게 물러나겠는가. 이쪽 저쪽 말을 들어보니 그거여 결론은 돈!
나는 탐탁치 않는 일이였다. 그런 일을 빌미로 동네에 돈을 내라는 것은 좀 거시기 한 일이다. 그런데 이즈음 다른 동네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상여는 장의차는 동네 가운데로 들어 서는 일은 아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을 밖고 정 그렇게 사람 사는 동네 뒷산, 옆산에다 묘를 써야하면 동네기금으로 얼마간의 돈을 기부하라는 것어였다. 나중에 상가집 집안 사람들과 우리동네 아저씨랑 담모리 돌아가서 뭔가 협상을 하기에 나는 그만 뒤로 빠져나왔다.
이젠 촌구석 인심도 예전같지 않아서, 장례식날 산에 와서 일을 도와주면 꼭꼭 상품권(지역 농협)과 수건, 담배 장갑을 챙기는 것이 전례로 되었고, 동네 산에 장례를 치르고 묻고 하는 일도 돈을 받자는 주의로 나가고 있다. 뭐든 돈과 연관시킨다.
아이고, 잠이 와서 쓸수가 없네 낼 아침에...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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