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촌구석은 무얼 거둬 들이느라 해가 짧다.
볕을 따라 이리저리 콩멍석을 옮기다보면
하루 해가 서산을 꼴딱~ 넘어간다.
여름볕과 가을볕은 길이가 달라
도시살믄 그런거 잘 모르지롱
촌에 살면 뼘가웃씩 짧아지는 하루 해의 길이를 느낄 수 있어
어제 저녁 숟갈 들 때의 어둠과
오늘 저녁 숟가락 들때의 어둠이 다르다는걸.
이렇게 구라를 치면 어떤 사람은 정말로 그런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겠지.
콩 한 됫박 먹으려면 먼지는 두 됫박 마셔야하네
콩이 크면 낫으로 쳐서 베면 되는데 아버님이 붙잡고 털 자루가 없다며
뿌리째 뽑아라..하시네. 그래 뿌리째 뽑으니 여태 땅 속에 뿌리박고 있던 놈들이 그저 올라오간?
탯줄같은 흙을 한 보따리 끌어안고 올라오잖여
낫대가리로 뿌리를 툭툭 쳐서 흙을 털어내지만 그게 다 털리는감?
볕 좋은 곳에 멍석을 깔아 놓고 콩단을 세워 놓으면
콩꼬투리가 S자로 돌아가며 저절로 터져
햇볕이 슬쩍 건드리기만 하면 봉숭아 씨자루처럼 터져서
콩알이 톡톡 튀어.
꼬투리가 말라 콩이 튀기 시작하면 팝콘 냄비 소릴 내
타닥, 타닥 똑또구르르르.
서리태 콩도 제법 털어 바뿌재 깔아서 널어 놓고
흰콩도 그렇게 널어 놓고
붉은 팥도 그렇게 널어 놓고
곡식들을 그렇게 마당에 널어 놓으면 사람도 고양이도 가만히 들앉아 있덜 못해
괘히 소매를 걷어 붙이고는 마당을 빙빙 돌면서 콩멍석을 튀어 나온 콩을 줍고
타작하면서 구석구석에 튀어 들어간 콩들을 한오큼씩 주워설랑
멍석에 휙 던져 수를 더하지.
달리 부자가 아니구
그걸로 두부 해먹고, 메주 쑤고, 청국장 띄워 먹을 생각 하믄
마음이 뿌듯햐.
또 멍석 가장자리에 실그머니 앉아
깜장콩 속에 섞인 흰콩을 골라내고
흰콩 멍석에 올라 앉은 깜장콩을 골라내고
그리 앉았다보면 왼쪽 어깨에 있던 볕은 슬그머니 오른쪽 어깨 위로 옮겨 앉지.
하루 종일 들며날며
담벼락 모퉁이에 앉아서는 표고버섯을 손질해서 채반에 넣고
콩을 저어 주고, 팥을 저어 주고
해바라기 하다보면 날이 저물어
해는 저어서 어두운데 찾아 오는 손님없고...하며 노래를 부를라치면
"여개 마산리 이장님 댁 맞어요?"하고 들어오는 발길이 있어..
요새 우리 동네 뒷뜸 골짜기 공사장에서 토지보상을 하나벼
그거 인우보증 확인받으려고 딴 동네 사람들이 더러 와여
"예, 맞심더. 도장 찍으러 오셨세요?"하고
나는 억수로 반갑게 맞이하지.
이쁜 필체를 까짓끗 꺼내서
전상순
황간면 마산리 387번지라고 쓰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육촌 오빠가 연필 깍는 칼로 새겨 준 나무 도장을 꾸욱 찍어 준다네
"아이고, 바쁘신데 이렇게 해 주셔서 고마와요"하며 인사를 하면
"아입니더. 괘안심더"하고 나는 또 대꾸를 하며
.
.
.
가을이 여물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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