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초상이 났다. 우리집 바로 앞에 집 선자네집. 선자 어무이가 돌아가셨다. 그렇게 약을 먹을라해싸서 약 병을 가지고 며느리가 회관에 잠깐 앉았다 간 사이 할머니나 콕 꼬루라져서는 그만 저세상으로 경계를 넘어 가셨다. 효자 선우아저씨가 새로 산 소나타 차발통에 불이 나도록 뛰어왔지만 할머니는 구급차 들것에 누워 잠깐 손을 흔들고 고만 가셨다. 내 시집와서 그 집에 자주 놀러갔다. 윤달 들었다고 할머니 할아버지 수의 만들 때도 가서 국수를 얻어 먹었다. 집 새로 짓기 전에 그집 툇마루는 나즈막해서 무릎 구부리고 앉아서 마당에 개새끼 고양이새끼 얄짱거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구경하기 좋았다.
돌아 가신 첫 날은 병원 장례식장 가서 전화번호부 보고 부고장 주소를 다 써주고 집에 오니 밤 한 시가 넘었다. 둘째날은 손님 들이 많으니 서빙을 하고 손님 접대를 하였다. 누구나 보면 이장님이 새해벽두부터 애잡수시네요 하고 인사를 했다. 밤중에 집에 와서 개똥이네 놀이터 원고를 써서 보내고 잠자리에 누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그 할무이하고 나하고는 살짝 안 좋은 추억도 날실 무늬로 한 컷 들어가 있다. 지나간 일이다.
일곱시 반에 고스방은 행상계 회원이니 일찌감치 산으로 갈 준비를 하고 나는 아침 일과를 퍼뜩 끝내놓고
고무장갑 챙겨서 산으로 간다. 먼저 나선 동네 형님들이 드럼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솥에는 동태국이 설설 끓고 있다. 두부를 넣고 한 소끔 끓이니 산소 일을 하던 우친계 계장님하고 몇 몇분이 소주 한 잔 한다며 내려 온다. 술국 한 대지비를 퍼서 갖다 드리고 간을 본다. "맛있다~" 동네 형님 들과 국자를 돌려가며 뜨신 국을 한 모금씩 맛본다. 마산리 아지매들 만큼 술국 잘 끓이는 사람을 난 알지 못한다. ㅎㅎ
산에서 급하게 잘라 온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불 붙은 장작 아래 숯불을 꺼내 주전자 물을 올린다. 곧 온다던 장의차는 오지를 않고 기다리던 청년들은 참나무 땔감을 한 무더기 해왔다. 활활 나무가 탄다.
불 주위로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자, 아니면 연기 때문에 궁뎅이를 불쪽으로 쬐고 있는자...모든 산자의 입에서는 살았다는 증거의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수런거리는 목소리, 술국을 더 퍼가려는 솥뚜껑 부딪는 소리, 고속 도로로 차들이 달려가는 소리들이 앞뒤 없이 섞인다.
기다리던 장의차가 큰 길에 멈추었고, 길이 미끄러워 버스는 산 아래까지 못 오고 행상 없이 운구만 하게 되었다.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흰옷과 삼베옷을 입은 상주들의 울음 소리가 한차례 나왔지만 차가운 날씨는 금방 소리를 삼킨다. 이번 초상에 상주인 선우아저씨는 마음 고생이 많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조금만
아들 생각을 하셨더라도 그리하시진 못했으리라. 여든 여섯의 생을 과오없이 살았드래도 죽음이 성급하면 두고두고 넘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걸 감수 하는 자식들의 힘듦이란.
다 마치고 회관에 남은 음식을 가져와 행상계 계원들에게 술국을 데피고 음식 대접을 한 번 더한다. 동네 할머니들도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려 나왔다가 그 할머니가 주는 마지막 음식을 나눠 먹고 흩어졌다.
집에 오니 종일 바람과 추위에 부딪혔던 몸이 녹는다. 눈꺼풀이 만근(斤)이나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또 저녁을 준비해야한다. 가끔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하고 바래보는 날이 있는데 오늘 저녁이 바로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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