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에 환장하는 농사꾼

동네 총회

황금횃대 2009. 12. 27. 21:13

오늘이 예정된 동네 총회날이다.

어제는 민석이엄마랑 하나로 마트에 가서 쇠고기 다섯근과 돼지고기 서른근을 사고  과일과 몇 가지의 부대 재료를 사가지고 회관에 내려놓았다.

이 동네 아지매들은  쇠고기 다섯근으로 육칠십인분의 쇠고기국쯤은 우습게 끓여낸다.

명래아줌마가 지난 봄에 훑은 고사리와 고사리밥을 가져와 미리 삶아 놓고, 쌍둥이 아줌마가 토란을 잘개 쪼개 말린 것을 물에 불려 놓았다. 하마산리 춘화씨가 파를 뽑아 한 푸대 갖다 놓았으며 진경이 아지매가 무와 손톱 아프게 까먹어야하는 자잘한 마늘을 한 바가지 퍼왔다. 이렇게 농사지은 것들을 십시일반 들여 놓고 구입할 것은 또 구입해서 총회 음식 준비를 한다.

 

나는 며칠 전, 자다 깨서 정리한 결산 서류를 봉투에 챙겨 넣고, 일년 동안 동네에서 이루어진 사업 목록과 부대 설명 자료를 준비하고..그렇게 고스방이 잠 자는 사이에도 나는 자잘한 걱정을 페이지 사이사이에 끼워넣으며 준비한 총회 자료를 챙겼다.

 

자료보따리와 장부를 들고 회관으로  가니 벌써 아지매들이 나와서 큰 양은 솥에는 물이 설설 김을 피워올리고 있다. 몇 년전에 동네 청년회원들과 같이 회관 땔나무를 부러 일삼아 해 놓았는데 그게 어찌나 바짝 말랐던지 화력좋게 타들어가며 쌀쌀한 날씨에 온기를 퍼트리고 있다. 총회 시작 전에 감사가 결산서와 장부 감사를 하고는 오케이사인을 해 주었다.

 

11시가 되자 아래 웃마산리 동민들이 좁은 회관방으로 들어 온다. 결산 프린트를 한 장씩 돌리고 나서 먼저 결산보고와 설명이 이어졌다. 자뻑이 아니더라도 만년 총무 이십년 공력이 어디가겠는가  끝나고 나니까

"이장 수고 했다"면서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안건 토론에 들어가 몇 가지 사안을 결정 짓고 회의를 끝냈다.

처음 결산보고 할 때는 뭔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처음 이장 방송 할 때처럼 목소리가 들떠서 혼자 심호흡으로 몇 번이나 호흡을 골랐다. 이제는 방송 쯤이야 목구멍에 떡이 막혀도 무난히 할 만큼 되었는데(자주 방송을 했으니ㅎㅎ) 결산 총회를 이끌어 나가는일은 또 첨하는 일이라..

 

모두들 넉넉히 먹고 하마산리 어른들 못 오신걸 감안하여 떡과 고기, 과일을 부녀회장 편에 싸서 보냈다.

하루 종일, 저녁까지 형편 닿는 사람들은 해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군수, 군의원, 면장에 농협조합장, 차기 조합장 후보에 이런저런 선거 거냥용 인사들의 출입으로 문지방이 반들거렸다. 그려, 내년이 선거해지..

 

동네에도 몇 번의 초상이 있었지만 모두 호상이라..그리 아수운 마음을 꺼내 놓을 여지도 없이 동네 상포계까지 끝마치고 해가 저문다.

 

이렇게 동네 총회를 마치면, 우리 동네에도 이제 해가 저물구나...한다.

촌구석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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