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일찌감치 먹었네요. 밖은 계속 춥고 밤은 내리는 중이지. 전화가 왔어 집 전화로. 그녀의 목소리는 어젯밤의 술 때문이 아닌 젖은 목소리야. 커피톡톡이란 찻집을 하는데 석 달이 지난 오늘에야 겨우 점심 먹을 밥집을 알아냈지 뭐야아~ 두 명이 오면 한 끼에 사천원짜리 정식을 먹을 수 있는데 반찬이 여간 깔끔하지 않아. 먹을만 해. 청주로 내가 건너가면 그녀는 내 옆구리에 팔짱을 끼면서 밥 먹으러 가자, 사람은 마주 앉아 밥을 같이 먹어봐야 서로가 서로에게 좀 안다 할 수 있지 하며 구석구석 나를 밥 멕이러 델고 다녔지.
이런 저런 얘기가 나왔지. 가게에 쓰는 믹서기를 새로 사야겠다는 얘기며, 커피 필터, 누가 보내 준다는 음악씨디..그렇게 그녀는 커피톡톡과 내집 사이의 간격을 이야기로 메워 보겠다는 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 나도 뭔가 한 마디 해야 할것 같아 꺼낸 말.
이즘 나는 왜 이리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아득하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명품이네 돈이네, 사람 사이의 관계네 명예네..이런 건 이제 아무 갈망이 없어요. 그냥 내가 순수한 마음에 열정으로 대들었던 것들이 정말 그립고 가고 싶어요. 옛날 스무 댓살 때였지요. 그 때 나는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종교운동에 가담한 적이 있었어요. 대학생들 다락방에서 역사가 시작되고 새로운 말씀이라고 우리가 믿고 깨달아 나갔던 것에 온통 정신을 집중했더랬어요. 그 때 나랑 나이가 같은 경대 의대생 성욱이란 애가 있었어요. 약해서 군대 갈 때 체중미달로 면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를 했던. 그 자식이 그랬어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우리가 나이가 들면 무엇이 젤 뼈에 사무치게 그리울것 같아요? 요대기에 언 발 파묻고 성경책을 돌아가며 읽던 우리는 그냥 뻐히 그녀석을 쳐다봤어요. 아마..라고 말을 꺼낸 녀석을 놀랍게도 이런 말을 했어요. 그 때는 지금 우리가 순수하게 무엇에 몰입하고 기뻐하며 나누던 열정적인 이 때를 젤 그리워할거예요. 진리도 말씀도 역사도 다 잊을 수 있지만 아모 댓가 없어도 <제 의지로 열정에 투신했을 때>가 사무치게 그리울거예요. 그냥 웃고 말았었지요. 정말 그게 눈물나게 그리울 줄 그 땐 몰랐어요. 당신과 통화하는 지금 이시간, 사무치게 그 날들이 그리워요. 너무 아득해서......아.눈물이 나
한참을 우린 서로의 눈물을 쓸어담으며..
아득한 길
하늘은 눈물로 부수어 놓은
별들의 날입니다
깊은 바닷속 같은
창밖
산도 마을도
그대에게로 가는 멀고 아득한
길도
까만 물결 속에 묻히고
아직 잠들지 못한 멧새
날개짓 소리
까만 물결에 파문을 만듭니다
초롱꽃이라도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모세의 바다처럼
저 어둠이 그대에게로 길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독한 형벌 벗어 놓고
그 길을 달음질쳐
그대 넓고 포근한 가슴에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詩.김삼주
시집<여우와 고슴도치>.솟대.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