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일상

황금횃대 2010. 5. 3. 22:07

포도일이 시작되었재

겨울 내도록 회관에 모여 십원빼이 민화투를 치던 사람들이 머릿수건을 두르고 장화를 신어

올해는 어찐셈인지 봄이 늦었어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워 모두들 봄을 손꼽아 기댈렸지, 난방비 많이 나와서 그러는 건 아니였는데

그게 꼭 아니라고도 말을 못햐. 그만큼 없는 집구석에는 봄이 빨리 와주는 것도 큰 부주여

겨울을 이겨낸 정구지가 텃밭에서 붉은 머리를 내밀고 한 차례 뜬금없는 눈바가지를 덮어써도

푸르게푸르게 그 목숨을 뻗어내네, 이어 칡덩이 올라오고 냉이네 쑥이네는 뭐 말할 것도 없어.

 

면사무소에는 보상도 안 해 줄거면서 뭔놈의 냉해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고 이장들헌티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내리 두 번을 보내네. 방송을 하래. <마산리 동민 여러분 혹시 올 봄 냉해 피해를 보신 분덜이 계시면 이장에게 연락바랍니다>라고. 말이 좋아 농작물 재해보험이지...팔십프로 이상 피해를 봐야 피해 본 부분의 오륙십퍼센트를 보상해 준다는거야. 농협이란 곳에서 해긋는 짓거리가 그려. 즈그들은 절대 손해 안 보겠다는 심사지. 농민 손으로 조합장 뽑아 놓으면 뭫혀 시스템이 그런걸.

그래서 농민들도 농작물 보험 이런거 잘 안 들어. 속이 빠안히 보이거등. 그러면 농협에서는 공제네뭐네 하며 또 들으라고 꼬드겨. 코도 들썩 안 해.

 

포도밭에 갔더니 풀이 난리가 났네. 저번 밭 주인이 바닥비닐을 몇 년을 재활용했는가 만지니까 쭉쭉 짜개져

할 수 없이 오토바이 타고 농협매장에 가서 바닥비닐 2박스 주문하고 군데군데 비닐 눌러 놓을 벽돌 한 파레트 주문하고 나니 거금이 나가네. 이제 돈 들기 시작이여. 그렇게 혼자서 풀 한 골 매고 비닐 깔고 흙 떠붓고..북치고 장구치고 하니 일은 잘 되지도 않고 힘만 육실허게 드는겨. 에이 안 되겠다. 토요일에 애들하고 같이 해야지 하고 밀어 놓았지.

포도가지도 새순 받은 것은 새로 묶어줘야 하는데 그것도 여간 시간 걸리는 일이 아니겠네

이젠 죽었다...하고 일만해야 하는데 일도 일종 중독이라 밥만 먹으면 일하러 나가야하는데 나는 또 궁뎅이가 무거워 금쪽같이 맞진 아침 시간을 뜬금없이 흘려보내고 느즈막히 일어나니 오전 시간에는 일 하는 시간이 얼마 되들않어. 농사 짓는 습관도 첨부터 잘 들여 놓아야하는데 나는 그걸 못했네.

 

어제 오늘은 날씨가 많이 더워서 붉게 고개 내민 포도순이 금방금방 자라네. 그 만큼 내 발걸음도 빨라져야 한다는 이야기지. 죽었다...하고 일만해야 한는데 미리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 날라리농사꾼증후군이라꼬..ㅎㅎ

 

그래도 이렇게 일기 한 쪽 써놓고 각오를 다지면 마음의 부담이 조금 허물어지려나..기대를 해보는데 젤 절박한 구호 문구는 바로 이거지.< 내가 안 하면 해 줄 사람 아무도 없다. 조금만 더....상순아.>

 

날이 더워 물을 하도 많이 마셨더니 저녁에는 밥 숟갈 떠 넣을 정도 없다. 한 해 한 해 다르다는 노인들 말씀이

뼈에 사무치게 박혀온다.나이는 못 속여 어흑.

 

 

  어데 가서 소주나 한 잔 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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