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종일 내렸다
맘 먹고 빨래를 돌리느라고 주방 장갑까지 세탁기에 때려놓고 온수 호스를 세탁기 아구리에 꽂아 넣고는 아주 작정을 하고 이방 저방구석을 돌아댕기며 눈에 띄는 건 다 걷어와서 집어 넣었다.
그렇게 작정하고 세탁기를 돌리면 비가 온다. 세차를 하면 비가 온다는 화자의 넋두리처럼.
필경 이 비가 봄을 잡아 댕기는 시추에이션이다. 뒷짐지고 니미락내미락 뻗대고 있는 봄 모가지에다 홀깨이를 갖다 걸고는 마구다지 잡아 댕기는 시늉이다. 며칠 전 나락 찧으러 가서 땅 파보니 호매이 콧잔등도 안 들어간다. 그만큼 깊이 땅이 얼었다. 올 겨울이 춥기는 추웠나보다.
이즈음 촌구석에는 명절 맞이로 할머니들 꼬장중우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오늘은 단체로 택시를 불러 기름을 짜고, 내일은 가래떡을 뽑고, 그 다음 날은 작년에 말려 놓은 비틀어져 갈라지는 떡국과 쌀을 가져와 뻥튀기를 하고...콩을 불과서(불려서) 두부를 만들고, 명절 쇠러 오는 자슥놈들에게 한 보따리씩 엥길려고 새삼스레 고추를 다듬어 빻고...이런 일련의 일들이 머리속 스케쥴에 의해 차곡차곡 진행이 된다.
목욕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황간 장날에 고스방과 같이 장에가서 대목장을 봤는데, 마침 차를 뻥튀기 옆에 슬쩍 세워놓고 주차공간을 살피다가 갑자기 펑`하고 튀밥 튀우는 소리에 고스방은 누가 차 똥궁디를 들이 박았는가 싶어서 기겁을 하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뻥튀기 소리였다. 배지도 않는 애 떨어지것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어찌나 놀랬는지 청심환을 사 먹어야겠다고 엄살이다. 요새 기력이 많이 떨어지긴 했나보다. 어제도 의자에 앉아 있는 고스방 얼굴을 보니 얼굴 볼살이 많이 빠졌다. 고스방하고 같이 잘 때 볼때기 갖다대면 통통한 볼살이 맞대이는 느낌이 찹찹하니 참 좋았는데 볼살이 빠지면 이제 좋은 느낌은 어데가고 지지껍데기 갖다 대는거 같을거 아녀? 아! 정말 좋은 시절은 이제 다아 지나갔나보다.
추적추적 비가 와도 나는 열심히 농한기 사업을 하고 있다. 바느질로 생리대를 만들어 판다거나, 컴퓨터 강습을 해준다거나..어떤이는 이렇게 배워 워드 자격증도 딸 수 있느냐고 묻는다. "당근이죠"하고 대답은 해놓구서 내가 찔려 하루에 세시간 정도 ITQ 실전 연습을 한다. 해 보믄 별거 아닌다 자주 쓰지 않으니 자꾸 까먹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메신저를 어떻게 하느냐..하며 갈케주는데..아 옛날 생각이 났다.
다음이 처음 내 놓은 메신저가 dtop이였다. 이게 뭔지 모르고 끙끙할 때...그 때가 옛날이다.
다운로드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겨우겨우 어찌어찌해서 그걸 다운받아 설치를 하고 매번 뭐 좋은일 있나 싶어 띄워놓았는데 어느날 누가 말을 걸어왔다. 너무 놀래서 티비에서 사람이 튀어 나온 것처럼 놀랬다. 그러나 그게 놀랠노짜가 아니구 메신저라는걸 알게 되기까지는 또 며칠이 지났다. 그 때 처음 친구 한 놈이 제천 사는 동갑내기 潘모다. 반某와 메신저를 할 때는 그 집 딸까지 대화를 했다. 그 집 딸이 우리 병조랑 동갑이다. 올해 대학 시험을 봤을터인데..
일년에 두어번 전화 통화를 아직도 하고 있는데 그 인연이 깊어서 오래 간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 많은 인연들이 연결이 되었지만 처음 인연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당시는 천년만년 우리 이렇게 정겹게 살자 하였지만 그리 못하고 떨어진 인연도 있다. 사람 사는 일에 온, 오프가 별다를게 없다는 말씀이다.
이제 명절은 코앞에 닥쳤다. 11일 농협에서 주관하는 조합원 영농실적보고겸 영농회가 한차례 치뤄지고 나면
농협에서 환원사업으로 분배된 가루비누와 밥사발 세트를 끌어 안고 집으로 가서 농협에서 나눠준 삼, 사만원짜리 출자 상품권을 가지고 다시 하나로 마트에 가서 제수 재료를 구입하겠지. 알뜰살뜰 긁어 모으겠다는 농협의 취지다. 작은 면단위에도 하나로 마트만 북적이지 작은 영세 구멍가게는 이제 설대목을 보겠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접었다. 큰 규모만 살아 남는 자본주의의 본성.
<1%의 대한민국>이란 책의 껍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열심히 사는데 왜 우린 행복하지 않을까?-그러게, 누구말마따나 조질나게 사는데도 매번 신음을 동지섣달 소마굿간 황소 콧김처름 뿜어내며 사는 걸까. 그렇게 아등바등 아끼고 졸라매며 생산의 기초를 책임지고 있는데도 왜 장기판 쫄 대신 쓰는 박카스 뚜껑 같은 취급 밖에 못 받는걸까..또 나는 저녁밥 실컷 먹고 떡국까지 후라이판에 노릇 구워 한 접시 먹었는데, 김진숙씨는 무슨 애끓는 애통함으로 노동자들을 대변하여 곡기를 끊고 단식투쟁을 하는가. 아! 설날은 코 앞에 닥쳤는데 이런저런 들려 오는 소식은 꿀꿀하다.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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