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들은 생일이 느즈막히 뒷달에 있어 해가 바뀌어도 <아직 생일이 안 지났기에 한 살 더 안 먹었지>하고 눙치는 기간이 있건만, 나는 어찌된 셈인지 해 바뀌어 어정거리다 보면 고만 생일이다. 그래 나이 이런거 누가 물어보면 만나이로..어쩌네 할 것 없이 생일을 꿀떡, 해 잡수신 본 나이로 바로 발설을 해야한다.
누구는 서른 일곱 이후로는 나이 세는걸 잊었다며 제 나이를 말해 주지 않는 이가 있는가하면 또 어떤이는
나이가 상대에 따라 서너살씩 널뛰기를 할 때도 있다. 나는 애초에 나이 속이는 사람과는 마음을 터놓지 않는다. 나이란 두 사람 건너 돌아오면 제 나이가 밝혀지게 마련이니까.
마흔 여덟이라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입으로 발음을 하며 내 나이를 시인했다. 그래 나는 이제 마흔 여덟이 된것이야. 마흔 여덟이라고 발음하는 혓바닥도 어디 한 구석 부딪힘도 없이 술술 잘 소리가 되어 나왔다. 그동안 마흔 여섯, 일곱..이렇게 넘어오며 마흔의 발음을 잘 닦아 놓은 공덕도 있다.
미역국도 없는 아침을 먹는다. 이틀 전에 미역국 한 솥 끓여 다 퍼먹어서 오늘 또 다시 미역국을 끓이면 맛은 둘째치더라도 끓이는 내가 지겹다. 된장 찌개에 김치찌개로 평상시 먹던 밥상과 0.1밀리의 오차도 없는 밥상을 차린다. 딸이 같이 없으니 생일 축하 한다는 멘트도 없다.
여덟시가 넘어 설거지하고 들어오니 애인이 생일 축하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거 보내지 않았으면 그 애인과의 관계도 끝짱내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냈으니 ㅎㅎ 패스.
생일 축하 카드는 두 통이나 받았지.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도 카드가 왔다. 또 삼성보험회사, 통신회사에서 300분 무료통화 선물이 왔지만 종일 통화해야 기껏 삼 분 통화도 못 썼다. 티비 광고에는 어떤 츠자가 지 생일이라고 창문에서 방안에서 누워서 앉아서 걸터앉아서 춤을 추며 삼백분통화를 다 써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더만..이 나이쯤 되면 공짜도 귀찮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고스방 차를 타고 버스승강장까지 나가다가 농협 하나로 마트 안에 파리바게트가 개업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고스방이 케익을 사러가잖다. 즈그 여편네가 케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줄 알면서도 어제 생활비로 번돈을 내게 몽땅 건네주었으니 케익 하나 사 줄 여유가 없단다. 내가 만오천원 빌려줘서 케익을 샀다. 나중에 벌면 갚아주겠노라했다. 영동 갈 일이 있어 버스승강장에 내려 달라니 기차 손님 없으면 고만 영업용 자기 차로 갔다오자고 한다. 역전 앞에 차를 대 놓고 기차 손님을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새학기가 되면 두 놈 대학납입금도 만만찮은데 벌어 놓은 돈은 얼마되지 않고 일년 학비는 어마어마하고..
고스방이 한숨을 쉰다. 괜히 옆에 앉아 있었다. 고만 버스타고 가는건데..쩝.
손님이 아무도 없자 차를 돌려 영동으로 간다. 여편네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란다. 케익 살 돈도 꿔주었는데 좀 미안했다. 공짜차를 타다뉘...짠헌 마음에 영동 다녀와서는 왕복 차비로 이만원을 줬다. 되물리지 않고 널름 받아 넣네? 이런...덴장..계산착오여.ㅡ.ㅡ;; 그래도 그리 아깝지는 않다. 그 주머니가 내 주머니고 내 주무이는 또 내 주무이고 ㅋㅋ
저녁은 친구 둘이와 식당에서 버섯불고기를 먹었다. 미역 한 봉다리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 ㅋㅋ. 촌아지매들은 이런 선물을 받고 좋아서 역전 마당이 떠나가도록 웃는다.
집에 와서 한짝 눙깔에 넣어도 다 들어갈 만큼 자그마한 블루베리케익에 혼자 불을 켜서 사진을 찍어 상민이에게 보냈다. 싱, 니 생일도 축하해.
토요일이라 상민이가 일하는 식당은 또 손님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겠지..
문자 볼 여가도 없는가 아직도 연락이 없다. 12시 넘어 퇴근하고는 답장을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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