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결혼기념일

황금횃대 2010. 1. 22. 20:55

아침에 눈 떠 핸드폰을 보니 알바 떠난 딸래미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확인을 했는데 고스방 보고 밥 먹으면서 상민이가 문자를 보내왔는데 당신은 안 받았느냐고 확인해보라니 자기 핸폰을 열어보고는 자기한테는 안 왔다고 고만 삐졌다. "이누무 여편네(고스방은 딸보고도 여사로 여편네 소릴한다 웃기지만 사실이다. 맨날 날보고 여편네, 여편네 하더니 그게 입에 익어서 딸보고도 무의식적으로 여편네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딸도, 나도 여사로 받아들인다.ㅡ.ㅡ;;)이제 수업료고 뭐고 엄써! 하며 삐졌다.

나중에 상민이와 통화를 하면서 아빠한테도 문자 한 통 보내지..했더니 아빠가 가지고 다니는 2번 핸드폰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2번 핸드폰이란 예전에 아버님 택시 하실 때 쓰시던 건데 아버님이 이제 일을 안하시니까 혹여 옛날 아버님 차를 타고 다니시던 고객이 전화를 할 까바 그 전화를 계속 고스방이 가지고 다닌다. 그러니까 핸드폰을 2대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것이다. 점심 먹으러 들어 왔길래 상민이가 당신 2번 전화기로 문자를 첫 새벽에 보냈다네요 그 전화기 확인해보세요. 했더니 아버님 전화기를 꺼내 문자메뉴를 눌러 본다. 문자 확인을 하면 젤 먼저 문자가 온 순서대로 첫대목만 보여주는게 있는데 상민이는 축하메시지를 이모콘티로 해서 보냈으니 고스방은 그게 문자가 아니고 뭔 호작질로 보고선 어디에 문자가 왔냐고 반문한다. 내가 문자 확인을 찾아서 해 주니 고스방의 얼굴은 급방긋으로 돌아선다.

 

그때부터는 상민이 걱정이 늘어졌다. 아침에는 등록금이네 뭔네 한 푼도 못 주겟다고 큰소리치더니 딸래미 허리 아픈거 괜찮으냐는 둥, 쉬는 날 집에 안 오냐는 둥..그러더니 상민이 한테 전화까지 한다.

 

어제는 궁촌 갱골꼴짜기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얼음길에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졌는데 여기서는 간호해줄 식구도 없고 해서 인천 아들내 집 근처 병원에 입원을 하러 간다며 한달 먹을 양식꺼리를 몽땅 고스방 차 드렁크에 실어서 인천을 갔다. 여자 손님이고 보니, 거기다 다리도 불편하니 화장실 갈때 부축을 해야하는데 고스방은 남자라 좀 거시기 했는지 날 보고 따라가자고 한다. 기실 어제 인천을 가지 않았다면 오늘 하루 휴가를 얻어서 어디든 내 가고 싶은 곳을 가려고 했는데 어제 오전에 출발하여 인천가서는 아주머니 내려드리고 양석까지 아줌마 아들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실어 주고 하니 시간이 많이 되었다. 가만 보니 거기서 계산동 루피나 수녀 있는 곳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라. 고스방한테 미안하지만 거길 들러서 원희(루피나)를 보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하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며 네비에 노틀담수녀회를 찍어주는 것이다.

 

참...네비게이션 잘 나왔지. 거길 물어물어 갈라면 얼마나 힘이 들터인데 요리조리 잘 안내를 해줘서 따라가니 루피나 수녀가 근무하는 수녀회 유치원이 나왔다. 몇 년만에 이렇게 보나...그녀는 작년에 큰 회의를 주재하고 치뤄내고는 팍삭 늙어 있었다. 고스방이 깜짝놀라 어째 이렇게 머리카락이 쇳냐고 기겁을 한다.

차 한 잔 먹고 수녀원에서 나와 저녁으로 두부전골을 같이 먹고 6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좀 더 되었다. 오는 길에 고스방이 하도 피곤해하길레 휴게소에서 쉬었다 오니 그렇다.

그래도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고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 주었으니 나는 더이상의 소원이 없다. 보고 싶은 친구도 보았으니 말이다.

 

낮에 점심 먹으러 들어와서는 결혼기념 케익도 못사고..하면서 돈 이만원을 준다. 그걸로 닭구새끼 한 마리와 고스방이 좋아하는 잡채꺼리를 사와 음식을 만들어 저녁 상에 올린다. 맛있게 아들놈과 같이 먹는다.

저녁 먹고 앉아서 하는 말이, 들어 오면서 꽃가게 앞에 갔더니 아무 기척도 없고 꽃샘(이순덕씨) 차도 안 보이기에 아무도 없는 거 같아 꽃을 못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마음만으로도 고맙지..나는 맹탕 앉아서 아무 것도 선물 준비도 안 했는데..

그러고 보니 넘들한테는 뻔질나게 보내는 편지를 고스방한테는 한 번도 안 보냈네. 이런저런 이야기로 고스방한테 편지나 한 통 써서 옆구리에 찔러줄끄나.

 

이십 일년전, 결혼 하는 날은 진눈개비가 내렸는데, 올해는 아침에 눈발만 조금 날리다 날만 육실허게 춥고 만다.

 

세월은 이렇게 눈깜짝할 새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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