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경리직 말년, 그러니까 친구들이 너나없이 선도 보고 해서 시집들을 가 쌌던 그 해.
나는 노원동 557-1번지 주물 공장에서 찌질한 가짜 세금계산서를 사다가 부가가치세 매입, 매출을 조절하고 가짜세금계산서의 부가세율을 1%쯤 상향해서 그걸 가로 채 용돈에 보태쓰던 시절이 있었어요
사무실 뒤켠 간이 부엌에서 점심밥을 끓여 먹고 하수 시설이 없던 터라, 설거지 한 개숫물을 2층 난간 앞에 만들어 놓은 화단에다 쏟아부었지요.
난간 화단에는 언제 심은지도 모르는 붓꽃이 있어, 그 꽃은 설거지 물을 먹고 괴롭게 제 생을 부지해 나갔지요. 세금이나 삥땅치던 가난한 여경리는 개념조차 없어서 아침 일찍 출근하여 할 일이 없으면(그렇게 목숨부지하던) 꽃물 머금은 붓꽃 망오리를 따와 엽서에 보라색 그림을 그렸더랬지요. 부산 삼화고무 고무신 공장에 근무하던 원희라는 이름가진 동무에게 엽서는 사흘이 멀다하고 전해 졌습니다.
씩잖은 공장 총각과의 연애로 회사는 그만 두었는데, 그 뒤 붓꽃의 생사야 한번도 궁금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밤 왜 그 붓꽃이 생각난답니까. 꼭 그 붓꽃 아니래도 인터넷 검색하니 벼라별 붓꽃이 다 나옵니다만.
그랬던 내가 촌구석에 와서 이장질하며 살줄은 개숫물 마구잽이 내다버릴 때는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로 밤이 깊어 갑니다.
2011.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