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인구 어무이(산문)

황금횃대 2005. 3. 27. 09:22
우리 동네 들어오자면 철길 아래 굴따리를 지내와야 하는데
큰 길 가에서 자장구 타고 씨~웅 내려왔다가, 굴다리 지나 동네
들어 올라면 천하없는 장사라도 자장구에서 내려 그시기를 끌고
올라 와야 한다구. 그만큼 까풀막져서 지아무리 기어자장구라해도
못 올러 오재잉

거그 올라 오면 공터가 있고 첫 집이 바로 잉구어무이집이라
아들 둘은 기차 발통에 감아 부치고 항개 남은 것은 청주가서
미장원하는 여편네랑 같이 살재요
요새 이 잉구어무이가 자꾸 정신을 놓아삐리네
혼자 있으니 뭘 끼리 묵지도 않고, 그져 회관에서 뭐 맹글어 먹으면
좀 얻어먹어 희색이 좀 낫고, 아니면 맨날 배리배리 돌아가서
합죽한 입맛을 쩝쩝 다시며 어딜 그리 종종걸음으로 댕기쌌는지.

집 앞에 정구지 밭 쪼매 일궈서는 시간나면 쪼글시고 앉아서 뭔 풀이라도
대가리 디밀면 호맹이로 다글다글 긁어 없애고, 조루에 물 담아서는
배들배들할 새도 없이 물 퍼봐 주디마는 이제는 그것도 잊었는가
정구지 밭에는 새새에 풀이 오목오목하고, 밭뙈기란게 빗자루로 씰은드키
깨끗하여 밭머리 지내오고 나면 하도 이뻐서 한번 더 고개 돌리서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영아니여

그나마 그 정구지밭 일궈서 올뱅이 국밥집에 쪼맨한 단을 깡충하게 묶어서는 곧잘 내어다 팔더니, 이젠 그것도 할 줄 모르능가베
어제 저녁에는 저 우물 옆에 있는 정구지밭에꺼까정 야지리 칼로 도리와서는 회관에 던져주며 찌짐이나 구워먹으라고 갖고 왔데
다들 그 할무이 불쌍한 거는 생각지도 않고, 그져 그거 공짜라고 밀가루 풀어서 찌짐 꾸버 비 오는 날에 주전부리 잘 했다만.

저렇게 정신을 놓아 버리면 우짤라고 저러나 몰라
아무것도 될 것도 없는 살림살인거 뻐이 아는데 하루는 됫박을 빌리러 와서는 조심시런 목소리로 묻는거라
'혹시 말(斗)있어요"
아무리 촌이지만 요새 촌이라고 어디 말통 간직하고 사는 집이 어데 있다고. 다들 저울로 딱딱 달아서 싹 깎아 주기 시작한 시골인심인데 저 할마이가 말로 달아 볼게 뭐가 있는가 싶었지
그래서, "아이, 뭘 되볼라고 말통이 필요혀요?"하고 슬쩌기 물어보믄
"기냥 내가 뭐 좀 되볼라꾸요"하고 제대로 대답도 못해
"우리집에는 말통 없으니 그냥가요"하고 말해도 조금 뒤에 또 헉헉거리며 와요. 왜 왔냐고 물어보믄 또, 말통 빌리러 왔데.
어떤날은 대여섯번이나 이러구 왔다갔다하지.

혼자사는 노인이 보믄 볼수록 불쌍허지
자식 앞세운 일이 평생을 죄인처럼 살게해, 동네 사람 누구에게도 똑바로 고개 들고 바라보는 일도 없어. 그냥 비낀 눈매로 사람을 슬쩍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눈빛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어떨 땐 그냥 돈을 드리고 싶어도 절대로 받지를 않해서,
"할무이 김치에 정구지 넣을라고 하니 아주 조금만 좀 비다가 갖다조요"하고 돈 천원 건네면, 절대 안 받는다고 이우재간에 농갈라 묵으면 되지 그걸 뭘 돈으로 팔 수가 있냐고. 그렇게 말할 때는 아주 정신이 말짱한것 같애

자그마한 키에 꼬부장하니 허리를 굽히고 움직일 때는 마치 깃털이 움직이는 것 같어. 얼마나 할마이가 몸이 가볍던지 마치 공기를 타고 다니는것 같지 금새 여기 있다가도 뒤 돌아보면 저쪽 새미 가에 있는 밭에 쪼글시고 앉아 있지를..

큰아들 비올라고 날이 꾸정꾸정하면 바람처럼 휘적 나타나 한 잔하고
종일 날궂이하고 댕기고 그랬지. 그 아들 술병나면 때 끼리서 먹이고
뒷감당 하느라고 할마이 고생많이 했는데,그 아들도 없고 이젠 자기가 그래도 누구하나 돌볼 사람이 없네.

일요일도 아닌데, 굴따리 내려가는 날 보고 불러 세운다

"성당가요? 나도 가야하는데..."

"오늘 성당가는 날 아니라요"
대답은 이렇게 해도 저 할무이 오늘 종일 이 길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람들 불러 세워

"성당가시요?"하고 물을게 뻔할....




횃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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