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나흘째
오후에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아버님은 아침에 4리터의 장세척액을 다 마셨다
몇 년전, 처음 이 검사를 할 때는 세척액을 마시는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였다
세척액이 들어가 몸 안에 것을 쓸어내어 밖으로 내다버리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사람의 몸이 일상의 것들을 담아서 필요한 것과 필요없는 것을 골라 고도농축 상태로 배출하는 기술은 제몸을 덜렁덜렁 끌고 다니는 몸 주인도 제대로 다 알 수없는 일이라.
그러고보면 <좀 안다>라고 자랑하는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고 가소로운 것이냐.
이틀은 병원의 상황에 적응이 안 되어 밤잠을 설쳤는데, 사흘째 밤은 옆 병상이 비어서 편히 잤다. 50여센티미터 보조 침대에 자다가 환자용 침대에 누으니 세상에 더 이상 안락한 잠자리는 없는 듯하다.
한쪽 팔을 얹으면 다른 한쪽 팔이 땅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한쪽 팔을 제대로 얹을 수 없는 결핍을 견뎌낼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보조 침상은 한 없이 좁아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자주하면 사람의 몸은 견딜만하게 적응이 된다. 그러니 몸은 얼마나 신기한가
아버님이 계속 금식 중이니 밥을 먹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병원 취사실 전기 곤로에 동전 백원을 넣고 냄비밥을 해 먹는다
서너오큼의 쌀을 작은 냄비에 넣고 대충 씻어 물을 잡아 십여분 불렸다가, 불에 얹으면 딱 900초만에 밥이 된다
뜨거운 냄비째로 행주로 똑 떼다가 숟가락으로 허적거리면 구수한 밥 냄새가 진동한다
한 숟갈 떠서 후후 불며 김 한 장 얹어 먹는다.
살아 있는 한 머거줘야 유지가 되는, 그래서 먹기 위해 산다는 둥, 살기 위해 먹는다는 둥 앞뒤를 맘대로 치환시켜도 말이 되는 그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이제 아버님은 대장에 용종(혹)을 다섯개나 내시경 시술로 떼내시고 아프게 누워계신다.
여든 넷, 그 삶이 엉켜진 머리카락에 은빛으로 달려있다.
-병원 피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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