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시인의 시 '꽃싸움'에 보면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날 굿판에서는 나는 각시 허새비를 가지고 각시 수발을 들고 보살 할마이는 신랑 허새비를 들고 신랑 수발을 하였다.
잔을 세 번이나 쳐 서로가 나눠 마시는 시늉을 하고 상을 물리고는 이불 속에 나란히 눕혀 놓았다. 사람이 하는거랑 똑 같이 약식으로 한다. 그들이 잠을 잘 동안 우리는 법당 안에 들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일테면 보살할매의 개인적 삶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였는데, 주로 할아버지 흉을 보았다.
"내가 오늘요 골짝밭에 풀이 호랭이 새끼치게 생깃어 영감하고 풀약 좀 치러 가자 했더니 이놈우 영감태기가 꼼짝도 안하고 밭둑가에 턱괴고 앉아서 치다만 보는기라. 나는 농약질통에 물을 저 만대이까지 올라가 시 번이나 받아와서 그걸 짊어지고 약을 친다고 헉,헉거리는데 저 영감태기는 꼼짝을 안하는 거라요. 내가 얼매나 부애가 나든지 아이고 사람 하루 사는기 와이래 힘이 드능가 몰라. 그걸 하고 왔디만 아주 죽것시요."
"할아버지가 좀 거들어 주시지 왜 가마히 쳐다만 보셨데요"
"낸들 알아요. 저누무 영감태기 승질머리를. 젊어서는 뭐라고 말 한마디 하면 삐져서 끄내끼를 가지고 산에 죽으러 들어간다고 오밤중에라도 나가서 우리집 아덜이랑 나랑 찾아 나서서 밤새도록 영감태기 찾어 댕기고, 아주 사람을 골빙을 들이요. 내가 여북했으면 일하다가 에이 씨발 왜 씹구녕으로 나를 낳아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지 몰것네 하며 낳아준 우리 엄마 욕을 다 했을까. 나도 참 다구진 성격인데 영감태기가 맨날 죽는다고 산으로 기들어가고 해싸서 집구석 조용할라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잘못했다고 빌구 델고오고 했더니 버릇이 되얐어. 진재 고치야 하는걸 이젠 영 고치기가 틀렸네. 지금도 뭐라하면 산으로는 안 기들어가도 이불 덮어쓰고 누워서 밥도 안 쳐먹고 가만 눈만 말똥말똥 천장 치다보며 굴리고 입을 딱 다물어요. 아주 산송장이 따로 읎구만요"
보살할마이의 지난한 삶의 넋두리는 이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이야기 하더니 이젠 다 잤나...가 봐야겠다며 일어난다.
우리도 엉거주춤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시간은 자정이 다 되었다.
이불 속에서 허새비 신랑각시를 꺼내 옷을 벗기고 돌돌 싸서는 걸에 쳐대로 갔다.
가뭄이 심해서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라 있었고, 이미 몇 번을 그런 일을 했다는 흔적처럼 달밤에 검은 재들이 한 무더기 개울 가에 쌓여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씨요이"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왔는데 잘려고 눈을 감으니 그 촛불이 너울너울 눈 안에서 춤을 춘다. 으이고 내가 아무래도 너무 노려봤던게야.
이런저런 치성을 드렸건만, 중요한 건 아버님이 아직도 개운찮은 것이다. 쩝.
맹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만 주끼쌌네 ㅎㅎㅎ
-이상 씸씸 풀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