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맺힌 마음, 풀어진 마음

황금횃대 2005. 7. 4. 12:12

<맺힌 마음>

 

 

 

시어머니와 며느리.

옛날옛적에 우리 시어머님 시집살이 한 이예기를 글로 써 보기도 했지만, 그 글 쓸때는 어머님 사신 삶이 그냥 연민이고 안됐더만 요새 울 엄니하고 내하고 은근히 신경전이다

십수년 살았으면 눈빛이며, 억양이며 어지간히 적응이 되어 좀 날카로운 목소리 나와도 씨방 뭔 토라짐 맘이 있어서 저러실거라 술술 막걸리 목구멍으로 넘기드키 잘 넴겨왔는데, 요 며칠전 일은 당체 가시가 목구멍에 콱 벡힌거 멩이로 넘어가지 않고 나도 고만 씨잘대기 없이 씨부리던 주둥이를 영 닫고 말았다

 

노인에게 그러면 안되지, 그런 마음이 자꾸 뭉개구름 처럼 뭉실뭉실 기어 올라도 막상 엄니 얼굴 보믄 마음이 싸늘이 얼어 붙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아무것도 아니다 며칠전 내가 일찍 일어나 밥을 앉혔는데도 불구하고 밥솥의 취사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아침밥이 평상시보다 한 십오분쯤 늦게 되었다 혹여 아버님께서 아침 늦다고 지청구 하실 까바, 미리 아침이 좀 늦겠다고 말씀까지 드렸다.

 

근데, 아이들은 엊저녁 밥을 주면 되니까, 아이들 먼저 먹고 학교에 갈려는데 딸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울 못난이 고서방이 그걸 보고 내한테 일러준다는 것이 야, 상순아 상민이 찬밥 먹어서 배아픈가보다 함 바바라이러구는 출근을 하였다 그러자 내가 미처 아이한테 가 보기도 전에 아버님 거실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아침부터 아덜한테 찬밥을 먹이니 배가 아프지!하고 큰소리로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헉! 여태까지 아침밥은 맨날 찬밥을 좋아해서 아이들은 찬밥을 먹였는데, 그리고 찬밥이래야 아침에 밥을 앉히면서 보온 상태에 있던 밥이여서 별루 찹지도 않는데... 아버님, 아이가 찬밥을 먹어서 배가 아픈게 아니고, 급하게 먹어서 그런가봐요 요기까지는 그저 나즉히 말을 하였는데 뭔 심사인지 속으로는 화~악 부아가 치미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부엌에 오시더니, 일어나서 밥부터 빨리 안 해놓고 뭐하노하신다 밥은 일찍 앉혔는데 그만 취사를 안 눌러서 그렇네요, 한 4분만 더 있으면 다 되니 조금만 기다리셔요 밥솥에 (추) 돌아가는 소리도 안났는데 무신 밥이 퍼뜩 된단 말이고, 야가 정신을 어데다 팔고 댕기노! 아, 이러시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신다 조금 전에 아버님 그러시더니 오늘 두 분이서 내 염장을 지를라고 작정을 하셨나보다 그 때부터 소리가 곱지 않다 밥그릇 씻는 소리도, 아덜놈에게 내 지르는 소리도 그져 성난 송아지마냥 씩씩거린다

 

밥 퍼드리고 나는 그냥 한끼 굶는다 왜 화가나면 목구멍으로 밥이 안 넘어가는지 몰라 그러고는 출근하고, 학교 갈 아이들 다가고 난 뒤 나는 아침 청소며 설거지 끝내고 딱 방안에 틀에 백혔다. 내 화가 다 가라 앉을 때까지 암말않고 있으니, 어머님도 아무 말씀 안하시고,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말 꺼내기 더 힘들다 어지간하면 어머님 좋아하시는 커피 한 잔 타다가 코 앞에 갖다 놓으면서 어머님, 커피 드셔요하고 말하고 마주 앉아 나도 한 잔 마시고 나면 그만인데, 당체 그날은 뭐한테 씌인 것처럼 딱 마음을 닫아 걸고 말았던 것이다.

 

내 마음은 대략 이런거다 뭐 맨날 먹는 아침밥, 출근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한 십여분 늦는다고 뭐 그리 채근할 일이라고 아침부터 그리 말씀 하시나..싶은게 서운하기 어데 말할 데가 없는 것이다 이 일을 고서방한테 말하면, 분명 팔은 안으로 굽고 다리는 뒤로 굽는다고 분명 제 엄마 편들게 분명한데, 말해서 본전도 못 찾을 일 같으면 아예 스방은 모르고 지나가는게 낫다 여튼, 날은 화장창 좋아 햇살이며 바람이며 아낌없이 쏟아 부어지는데 기분은 똥 밟은 것처럼 꺼름칙하니,

 

 아...고부간의 껄끄러움은 쌓아진 세월과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그 많은 돌탑을 어데다 쌓았길레....쩝

 

 

 

 

<풀어진 마음>

 

 

 

세월은 도둑놈 뒷주머니에 쌓이는거 아닌기라..

어머님하고 약간 깔끄러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그거 풀라면 내 맘 풀어버리면 그만이재 나물 한지기 무쳐서 금방 한 밥 퍼서리 어머님 불렀지라

"어머님, 나물 금방 무쳤는데 비벼서 드세요"

울 어머님 금방 한 뜨끈뜨끈한 밥에 산나물이면 껌벅 넘어가시재요

따로 밥 퍼드리도 되지만, 그냥 나물 무친 양푼이에 같이 비벼서 한 숟갈씩 같이 먹었재요

나 같은 새대가리는 맨날 그려..

저혼자 굳은 소기름 마냥 뱅뱅 돌다가, 좀 뜨끈한 기운만 보이면 지절로 풀어버린당께롱

저녁에 어지간히 풀고, 아침에는 엄니께서 커피 끓이셔서 어제 내가 사온 빠게트 빵 가지고 오시더니 커피에 찌거 묵으라고 날 부르시넹

그냥 뭐...잘못했네 뭐 어쨌네 사과 할 것 없어야

빵 하나 쭈~욱 찢어서 어머님 드리고 내도 찌거묵고.. 그럼 끝이재...

지금 쇠꼬리 고고 있으니 그거 다 고아지면 파/마늘 양념이나 잘 해 놓구 어머님하고 온 식구 뜨끈하게 말아 묵고나면, 쇠꼬리 보신에 녹을거 다 녹고 살로 갈 건 다 살로 가겠지를.. ㅎㅎㅎㅎ

아무리 봐도 나는 푼수여 그지? 그라고, 풀고 나니 이렇게 얼굴이 훠언 하자녀? ㅋㅋㅋㅋㅋ

 

 


 

 

2003년 이월에는 이럭허구 살았나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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