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진흥상회가서 창호지 두 장 사왔어요
침대에 퍼질고 앉아 침발라 한 장씩 한 장씩 잘라요
한지 두 장이면 저렇게 여러장 편지지가 나와요
날도 더운데 다들 어떻게 살고 있나 안부 편지를 씁니다.
안부래야 별거 아니구요 이렇게 말 하듯 쓰면 되요
수신인이 못견디게 보고 싶은 그런거 아닌바에야 암 거나 쓰면 되요
편지쓰는거 참 어려워하는데 써보면 별거 아니라...별거 아닌걸 자꾸하면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어요.
<잠깐 하늘이 흐려서 진흥상회에 한지를 사러 갔어요. 이 심심한 촌동네에도 창호지를 바르는 옛 문틀이 이제 눈 씻어 찾아봐야할 귀한 것들이 되어갑니다. 문틀 한 가지만 봐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폐쇄적으로 변했는지 알 수 있어요. 방문을 '탁' 소리나게 닫고 들어가 버리면 절벽과 절벽 사이처럼 단절되어 버리는 그 매정한 문이, 현대의 우리가 수 십번 열고 닫는 방문의 실체입니다.
우리집 아랫채에는 아직도 문살이 있는 여닫이 방문이 있어요
옛날 집수리 할 때 여섯식구가 아랫채 살았던 적이 있어요. 넉달 동안 그 곳에서 살았는데 신문지로 벽을 바르고 대충 수습해서 살았댔지요. 아직 돌도 안 지냈던 둘째와 돌 지나고 세살 먹은 딸과...네 식구가 나란히 누웠으면 시절은 아주 옛날로 뒷걸음쳤습니다. 벽에다 등을 기대면 벽지가 붕 뜬 사이로 흙들이 흘러내리고, 쥐오줌 얼룩진 천장에는 쥐들이 신나게 대각선으로 돌아다니는 소리도 들렸어요. 쥐발톱이 천장을 바각바각 긁으며 지나갈 때의 그 섬세한 소리란.
아이와 에비가 나란히 누워 자는 밤에 문득 소소한 일렁임에 눈을 뜨면, 식구들 이마와 얼굴 위에 창호지를 투과한, 달빛이 일렁이는 돌감나무 잎들이 묘한 음영으로 춤을 추는걸 보여줬어요. 그게 너무 가슴 미어지게 아름다와서 혼자 비켜난 자리에 앉아 한참을 쳐다보았어요. 잠은 잠대로 달아나고 울컥울컥, 쪼그리고 앉은 내 울대로 뜨거운 것들이 올라왔지요. '내가 여기 있구나. 여기서 아이들과 남편과 하나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식구>라는 의식의 끈을 당길 당위도 없이, 아무 의심도 없이 이렇게 잠을 자고 있구나...참 오만가지 상념들이 일렁이는 달빛의 움직임만큼 재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오래오래 내 속에 남아 문득 아름다운 것이 그리운 날, 소가 되새김질하듯, 그 풍경을 꺼내본다지요.
메마른 마음에 곰팡먼지가 풀썩이는 날, 그것은 먼지를 가라앉히고 삶에 윤활유를 반짝반짝 쳐주는 그런 역활을 하게 되겠지요. 날씨가 더워 바깥 일은 생각도 못하고 선풍기 바람 앞에서 편지 쓰고 앉았으니 그것도 피서의 한 가지가 됩니다 그려. 건강하시고요.
12005. 7. 18 전상순>
그러고는 색연필로 꽃 그림 하나 그려주면 훨 이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