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납작납작

황금횃대 2005. 8. 17. 20:17

납작납작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김혜순

 

 

 

드문 드문 세상을 끊어내어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본다.
흰 하늘과 쭈그린 아낙네 둘이
벽 위에 납작하게 뻗어 있다.
가끔 심심하면
여편네와 아이들도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붙여 놓고
하나님 보시기 어떻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발바닥도 없이 서성서성.
입술도 없이 슬그머니.
표정도 없이 슬그머니.
그렇게 웃고 나서
피도 눈물도 없이 바짝 마르기.
그리곤 드디어 납작해진
천지 만물을 한 줄에 꿰어놓고
가이없이 한없이 펄렁 펄렁.
하나님, 보시기 마땅합니까?

 

 

 

 

<또 다른 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1>

 

 

 

 

96년 문지사 판 김혜순 시집을 세 권 한꺼번에 사왔을 때

첫해 포도농사 지어 품삯으로 십만원 받아 사온 백석의 시집 멧새소리

서울출장소 소장에게 부탁해서 선물받은 정현종의 시집.

이렇게 꼬깃꼬깃 주머니에서 접혀진 만원짜리를 펴서 시집을 살 때는 참

행/복/했/다.

 

이즈음 시집을 들여다보는 일이 소원하다.

그래서, 나는 저쪽모서리 하늘 끝에서 구르며 달려오는 천둥소리만큼 불안하다

나는 어쩌다...시를 놓치고

이렇게

스/방/ 시/집/을/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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