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에 사시는 오씨아자씨 작품입니다. 마당에 감을 찍으셨데요>
1.
정신없는 잠 속에서 꿈을 꾸었지요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꿈을 깡그리 잊어먹습니다
아침밥을 준비하는데 아들놈이 깨서 나오며 이야기 해요
"엄마, 오늘 내 꿈 사세요 복권을 살 수 있는 꿈이에요"
꿈?
'아! 그렇지 나도 꿈을 꾸었지'
상처를 입히고 떠나간 사람도 꿈에 나타나면 심장 한 쪽이 아릿하지
한 밤중에 꿈에서 깨든, 아침 새 소리에 잠이 깨든
하물며 그것이 그리운 사람임에랴.
2.
"바쁘지? 저 가을을 채우려면 얼마나 수고를 해야 할까"
마흔의 삶이 어떠냐고 묻던 먼데 사람이 뜬금없이 <가을을 채우느라 바쁘지> 하면서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또 지난 여름 포도 작업할 때, 늦은 밤에 "미안해"하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주위에 이렇게 뜬금없이 한 마디씩 하는 사람이 있어 단순한 나는 갑자기 복잡해지기도 한답니다.
무엇이 내게 미안한걸까
내 승질이 궁금한 건 못참고 반다시 밝히는 그런 성격이었다면 전화통 붙잡고 늘어질건데 천상 그렇지 않아서 혼자 생각으로 무엇이 미안할꼬...하고 맙니다.
내가 모르는데도 세상은 미안했다 고마왔다 그러는 모양입니다
3.
고스방이 얼결에 수봉재 너머 어떤 집에 감나무 두 그루를 샀답니다
십만원의 돈을 지불하고 두 그루의 감나무에 감을 딸 수 있게 된거지요
올해는 땡감값이 솔찮히 좋은 모양이예요
감의 크기는 어떻게 재는지 아시나요?
왼손으로 감의 젤 굵은 부분을 둥그렇게 감아쥐고 손가락이 만나지 못하는 빈 곳에 오른손 손가락을 모아 펴서는 그 빈 공간에 넣어 보는 겁니다. 그럼 손가락이 두개 들어 갈 공간이 생기는 감이 있다 세 개, 네 개 들어가는 공간이 생기는 감이 있어요
삼지, 사지...이러는데 좀 굵다 싶으면 사지까지 들어가고, 아주 굵은 감은 오지까지 들어가지요
집에 감은 옛날 소주에 삭혀 먹는 삼천리품종이라 곶감을 깎을 수는 없어요
고서방 짠돌이가 십만원 주고 그 감나무를 샀을 때는 그의 머리 속에 감 좋아하는 식구들 얼굴이
굴비, 두릅 엮듯이 주르룩 엮이어 지나갔겠지요
아부지도 감홍시 잘 드시고, 장모님도 감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맞은 편에서 감을 사게 된 변명을 하는 그의 얼굴을 빙그시 웃으며 쳐다봅니다. 누가 뭐래나 ㅎㅎㅎ
감을 따서 처마 밑 볕 드는 곳에 감타래를 만들어 걸어 놓고, 꾸덕꾸덕 말라가며 속은 홍시가 되어 갈 때 오매가매 하나씩 따서 먹으며 참 맛있지요
도란 도란 둘러 앉아 눈 내리는 소릴 들으며 곶감 이야기 하는 맛은 또 어떻구요
옛날 옛날에 사람들이 살았는데요, 하루는 긴긴 밤에 사랑방에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고 곶감 이야기가 나왔세요. 누가 곶감 한 접을 한참에 다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이야기했는데 고만 그게 내기로 까지 번져서 내일 밤 이 사랑방에서 곶감 한 접 먹기 내기를 하자고 했재요. 돌쇠가 거기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진짜 곶감 한 접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어 그 밤에 자기집걸 먹어 봤데요. 촐촐하던 차에 곶감 한 접 먹기 일도 아니라. 그 담날 밤에 사랑방에 가서 또 가뿐하게 한 접을 먹어치웠습니다. 근데 이게 왠일입니까 졸창지간 곶감 두 접을 먹은 돌쇠의 똥꼬는 기가막혀 돌쇠는 똥꼬가 막혀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니 맛있다고 먹기 내기 하고 그러지 마십시요^^
오늘....푸른 포대기를 두르고 있는 감을 눈이 짓무르도록 보고 올테야요
풀색 누비포대기
1.새벽
半도 더
찌그러진 달빛이 지난 밤에는 청상의 몸으로 와서
밤새도록 뽀얀 한숨만 토해놓았나 지아비 보고픈 설움을
양철지붕 위에 쏟았나
푸른새벽에 뚝,뚝,맑아서 아린 이슬이
낙숫물같이 떨어진다
2.오후
팔라당,
굴러 다니는
감잎사구 숫자가 많아질수록 숨어 익던
감들이 빨갛게 얼굴을 드러내고, 감들이 업고 나오는 배경은
하나같이 푸른 포대기 아! 저
푸른 포대기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사남매를 업어키운 풀색 누비포대기
이년,삼년, 삼년의 터울들을 무심히
이겨내며
종내엔 끈 떨어진 네모로 누비솜이 삐져나오는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애면글면 장롱속을 떠돌던..
어머니는 이제 잊었을까
사남매의 궁뎅이를 보드랍게 휘어감아
당신의 아랫배에 든든히 잡아매던
어딜가든
내새끼 떨어져 나가지 않을거라
믿음으로 받쳐주던 풀색 포대기
3.저녁
마당 패인 자욱마다
곱기
지랄인 별빛이 찰랑찰랑 고이고
팔라당 구르던
감잎사구는 장난인듯 슬쩍
고인 별빛 건드려보는데
저 새침때기는 눈길이나
줄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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