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일상

황금횃대 2005. 11. 7. 09:59

 

 

찜질방 데려가지 않는다고 그렇게 서운한 걸 보면 늙는거 맞는갑다

연 이틀째 새벽 일찍 눈이 떠진다. 아침을 빨리 맞이 하는것도 늙는거 맞는거다.

어제는 두시 조금 넘어 일어났고, 오늘은 세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다. 어제는 비라도 내렸지만

오늘은 그도저도 아니다. 설마 달빛이 나를 깨웠을라고..하며 들여다 본 달력은 초닷새를 겨우 넘어갈 뿐이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밤에 새벽은 이미 아침을 향해 길을 떠났을까

옛날 김현승의 시를 생각해낸다.

 

새까만 하늘을 암만 쳐다보아야 어딘지 모르게 푸르렇더니

그러면 그렇지요, 그 우렁차고 광명한 아침의 선구자인 어린새벽이

벌써 희미한 초롱불을 들고 사방을 밝혀가면서

거친 산과 낮은 들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려!

아마 동리에 수탉이 밤의 적막을 가늘게 찢을 때

잠자던 어느 골짜기를 떠나 분주히 나섰겠죠.

 

여보세요. 당신은 쓸쓸한 저녁이 올 때 얼마나 슬퍼하였읍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해가 거친 산정에서 붉은 피를 쏟고

감상시인 까마귀가 황혼의 비가를 구슬피 불러

답답한 어두움이 방방곡곡에 숨어들 때

당신은 끊어져가는 날의 숨소리를 들으며 영원한 밤을 슬퍼하지 않았읍니까?

그러기에 당신은 또한 절망을 사랑하기에 경솔하고,

감정을 달래기에 퍽도 이지가 둔하였다는 말이지요.

지구의 구석까지 들어찰 광명을 거느리고, 용감스러운 해는

어둡고 험준한 비탈과 절벽을 또다시 기어오르고 있다는걸요.

이제  그 빛난 얼굴을 동방산 마루에 눈이 부시도록 내어놓으면

모든 만물은 환호를 부르짖고

새로운 경륜을 이루어 나간다 합니다

힘있고 새로운 역사가 광명한 그 아침에 쓰여진다 합니다!

저것 보아요. 어두운 밤을 지키고 있던 파수병정인 별들은 이제 쓸데 없고요.

그리고 당신이 작은 낙천가라고 부르는 고 얄미운 참새들이

어느새 해를 환영하겠다면서 어린 이슬들이 밤새도록 닦아놓은

빨래줄 위에 아주 저렇게 줄지어 않았겠죠.

평생 지껄여야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도 많은지.

 

그러면 글쎄, 참새들은 지금

이른 아침 새벽 정찰나온 구름의 이야기를 하고 있읍니다 그려!

저걸 좀 보아요. 우렁차고 늘름한 기상을 가진 흰 구름들이 동방에서 일어나

오늘은 벌써 서부원정의 새벽 정찰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나간 여름에 저구름들이 황하연안을 공격하였을 때

너무도 지나친 승리를 하였다고 합니다그려.

그러니 어찌, 감상시인인 까마귀들만이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요.

아마 황혼에 읊을 시재를 얻기 위하여 직금 저렇게 산을 넘어 거칠고 쓸쓸한 광야로 나가는가봐요.

동편에선 언제나 가장 높은 체하는 험상궂은 산봉우리가

아직도 해를 가리우며 내어놓지를 아니하는데

그 얌전성 없는 참새들은 못 기다리겠다고 반뜻한 줄을 흐트리고 그만 다들 날아가 버리겠지요.

그러나 그 차고 넘치는 햇발들이 사방으로 빠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어젯밤 당신을 보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밤을 뚫고 수천 수백 리를 걸어 나가면 광명한 아침의 선구자인 어린 새벽이

희미한 등불을 들고 또한 우리를 맞으러 온다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시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  전문.

 

 

스무살 나이에 이런시는 괜히 주먹을 불끈지게 했다. 그 때보다 나는 곱절의 나이를 더 먹었다. 타이핑을 하면서 시를 다시 읽어보니 그저 그렇다. 새벽이 아무렇지도 않는 나이가 되다니.

 

 

 

한 때는 새벽에 일어나 정현종의 시를 즐겨 읽었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살자고 윗몸 일으키기도 부지런히 했지?(튀는 공과 윗몸 일으키기가 뭔 상관이 있다고)  통통 튀고 싶은 욕구를 누르는 생활은,마음만 볶이는 콩처럼 튀게 할 뿐 아무 것도 벗어 날 수 없음을 알았가.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나는 고만 바람빠진 공이 되고 말았다.

오늘 새벽, 보라색 해국을 몇 송이 그리다 정현종의 시가 생각나다

 

 

 

모든 순간이 꽃봉우리인 것을
 
 
- 정현종 -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우리인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우리인것을!
 
 
대충 그려놓은 해국 꽃잎에 보라색을 더 진하게 칠한다. 그 새벽에 참말로 손끝에 온 정성을 다해서 조그만 꽃잎을 완성해 나간다. 숙제도 아닌데..
 

 

가끔은 나도 꽃봉우리로 피고 싶지만..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0) 2005.11.09
버리면 얻는다  (0) 2005.11.08
꽃이 차가와  (0) 2005.11.06
서운을 넘어 분노로  (0) 2005.11.06
방을 닦다가..  (0) 200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