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여자를 위하여

황금횃대 2005. 11. 17. 08:26

여자를 위하여


                            
 
                                        
   박명희 
 


너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가르친 사람
네가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어머니라고 불렀던 사람이 여자다

 

네 청년이 되어 처음으로 술 취해 쓰러지며
기차를 타고 밤 속을 달려
전화 걸 사람도 여자다

 

그러나 인생에도 황혼은 있어
네 걸어온 발자욱 헤며
윤기 잃은 네 가슴에 더운 손 얹어줄 사람도
여자다

 

너의 마지막 숨소리 듣고
깨끗한 베옷을 준비할 사람
그 겸허하고 숭고한 이름인 여자

 

여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아침에 설거지하고 컴 앞에 앉았으니 조카딸이 문자가 왔다

대구 큰집의 조카딸이다.

그럴 수 없이 깔끔하고 알뜰하고 악착같이 돈을벌라고 몸을 사리지 않는 아이다

올해 스물다섯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눈이 작다.

제 에비가 문제다. 제 에비란 바로 나한테 아즈버님이다

"폰번호가 바뀌었어요. 집으로 전화 한 통 해주세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또 무슨 일이 있나싶어서

얼른 전화를 돌렸더니 형님이 받으시는데 목소리가 영 아니올시다다.

무슨 일 있어요 형님. 제가 그동안 전화가 좀 뜸했지요

목소리 톤을 한 음 높인다

그래도 형님의 목소리는 깨어나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아무일 아니다 하는데 목소리가 잠겨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

"에이 목소리가 영 안 좋은데요 무슨 일이래요?"

다그처 물었더니 고만 울먹울먹인다

"숙이가, 숙이가 있잖아 지들 아빠한테 맞아서 얼굴이 벌겋게 부어서 회사에 갔다"

"왜요?"

"어요 내말좀 들어 봐라..상민아. 이 일이 애 때릴 일인가..."

 

그렇게 말의 실마리를 찾은 형님은 울음반 목메임 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속으로 부아가 끌어 오른다. 욕하는 종내기가 따로 있나. 낼이면 오십살이나 처먹은 인간이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제 식구에게 그렇게 폭력적인지 알 수가 없다. 나도 욕하는 종자가 되어서 입에 거품을 문다.

 

일의 전말은 이러저러하지만 다 쓸 수는 없고, 도둑놈이 제발 저린다고 전화 이야기만 하면 자기가 먼저 부글부글 원더풀하이타이를 풀어먹여 더 화를 내고 앞서서 성질을 낸다. 요컨데 전화에 대한 어떤 의심나는 일도 말하지 말라고 일종의 쐐기를 박는 폭력이다.

씨발년은 보통이고 형님한테 씹팔아 먹으러 나갔냐는 둥. 얼마를 받고 팔았냐는 둥. 그게 어른이 할 말인가 더군다나 제 마누라한테. 그걸 큰 딸이 옆에서 듣자니 열불이 터져서 엄마에게 전화기에다 대고 그렇게 욕하는게 듣기 싫어서 엄마가 들으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어서 지에비에게서 전화기를 뺏다가 화가난 에비에게 귀퉁백이를 한 대 얻어 맞은 것이다. 얼마나 그 속이 상할까.

 

둘째딸은 옆에서 제에비가 그러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지레 숨이 막혀서(심장병이 있다)애가 새파랗게 질려서 넘어가는데 에비란 놈은 방을 나가 티비를 크게 틀어 놓고 보더라나.

참으로 인간 말종이다. 아무리 부부간에 싸움을 하다가도 자식이 꼬꾸라지면 그것이 먼저이지 않는가

자식이 나자빠지는데도 제놈은 방에 가서 티비를 보다니. 이런 에비같잖은 에비가 있는가

 

하루종일 그 일로 심사가 뒤틀려 속이 상해 죽겠다. 자연 말수도 줄어들고.

밥 한 그릇 떠 놓고 꾸역꾸역 밀어 넣는데 숙이에게 미안해 죽겠다.

어른이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내가 그 아이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하고. 어떻게 해결 방법을 모색하지도 못하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뱃때지가 불러서 별 희안한 짓거리를 다 하고 돌아댕기는구만. 제 형인데도 씨파조팔 쌍욕이 막 나온다. 바로 형수에게 전화해서는 자초지종을 알아보고는 집구석 화악 디비뿌러 간다는것을 간신히 말려놓다.

 

나중에 형님 나한테 문자와서는 숙이아빠한테 이 말 안 들어가도록 제발 삼촌(고스방) 가만히 있으라고 해라고 간곡히 말을 한다. 얼마나 공포에 떨었겠는가. 시동생이 올라와 한 마디라도 하면 물불 안가리는 그 잉간이 집구석에 불을 싸질를터이니...

 

내가 그러고마 하고는 고스방한테 전화해서 아즈버님한테 전화하지 말라구 신신당부를 하다

다음에 조용히 이야기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버님하고 어머니, 시동생 내외 우리 식구 다 대구로 내려가서 아주 담판을 지었으면 좋겠다.

어머님은 그래도 뒷끝에 여자가 참아야 한다고 더럽고 치사하지만 여자가 참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게 어디 참아서 될 일인가. 나이 오십인 사람한테 맨날 듣기 좋은 말만하고 비위를 맞추려고 눈치를 보고..온 식구가 삼십여년을 그렇게 살았으면 많이 참은 세월아닌가.

 

조카딸이 지 에비한테 물었단다

 

"아빠, 그럼 엄마하고 이혼할기가? 아니잖아?"

간곡히 말하는 딸에게 에비란 놈이 하는 말뽄새 좀 봐라

"이혼 못할게 뭐있어. 당장이라도 할거야"

 

나오느니 한숨이요 막히느니 숨통이다.

 

도대체 어른이 누구며 아이가 누군지 모르겠다.

 

결혼생활 내내 뻑하며 여편네 때리고, 하도 때려서 심장병에 두통에 온 삭신이 아프지 않는 곳이 없는데 말로 하자는 형님한테 다리부터 올라가더라나. 두 딸이 몸으로 막으며 이날 평생 때렸으면 됐지 얼마나 더 때릴려고 그러느냐고 지 에비한테 물었다는데..그 얘기를 듣는데 피가 꺼꿀로 솟으며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쩔끄나...숙아..

 

백지장처럼 쓰러진 딸을 사혈침으로 따면서 딸과 엄마는 온 밤을 뒤척이며 울었다는데. 인간의 비극이 따로없다.

 

숙아...미안하다.  내라도 내려가서 느그 아부지하고 한판 맞장을 떠야하는데.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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