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히뿌연히 밝아 여린 안개 자욱하다
며칠을 뒤안이며 차고며 마당이며 낙엽을 쓸어내고
시발택시부속부터 시작하여 최근
프린스부품까지 차고 옆에
쓰러지고 세워진 부속들을 박스에 옮겨 담았다
하늘수박이 몇해전 것인지도 모르게 거꾸로 매달려
속은
벌레한테 헌납한지 오래인듯 낡고 바래고 구멍뚫린 모습으로
늘어져 있다, 그것도 치워 버린다
차고 안은 보물창고같다. 온갖 것들이 다
있다
빽밀러 떼어 놓은 것도 여러개며, 볼트며 너트 그리고 피스톤같은것도 한자루나 나왔다
이걸 좀 팔아 치우자고 해도, 묻어두면
황모꼬리가 되는지 도무지 치우지 않고 놓아 두더니..
서리맞은 감들이 아직도 한 됫박은 더 되게 감나무에 달렸고, 자잘한
느티나무 잎사구까지 뒤안은 그야말로 낙엽천지다
장독 간 사이사이에 낙엽방석을 만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돌확 속에도,
가죽나무
사이에도 온통 낙엽이 지천이다
봄날 살구나무 꽃필때 부엌 쪽창으로 바라보는 하늘은 영락없는 연분홍빛
이여서 살구꽃 필
때는 하늘이 온통 연분홍빛인줄 알았는데,
저리 노랗게 물들어 잎마저 다 떨군 살구나무를 보니 내년에 또 다시
새 잎을 물어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시고모님 태어났을 때 시할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인데,그 고모님이제
팔순을 훌쩍 넘기시고, 저리 시적부적 꽃피고 열매맺고
하여도
시고모님보다 저 나무가 장수하리라
뽀얀꽃을 구름뭉치처럼 매달던 불두화며, 잘라내도 잘라내도 덤불을
뻗어
내던 으름덩굴이며, 창 가에 붉은 열매로 도배를 해대던 앵도나무며
모두 잎들을 다 떨구고 가지만 바람에 마른 몸을 흔들고
있다
새벽, 일찌감치 삽작에는 금줄이 걸린다.
사람 사는 동네에 부정한 것이 어디있겠냐마는 그 금줄을 보고 스스로 삼가는 사람들이 선뜻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
아침이 어지간히 훤히 밝으면 아버님은 미리 추려놓은 짚으로 터줏대감
옷을 만든다
손이 말라서 짚이 제대로
꼬여지지 않는구나
아버님께서는 대접에 물 한 그릇 떠 가지고 가신다
옛날에는 당신 손에 솟는 땀으로도 충분히 짚을 적셔 맘대로
가지런히
꼬앗을 새끼줄이지만, 이제는 그 흔한 땀조차 말라 버렸는가,
속으로 마음이 짠하다
부엌에는 성주동이가 있어 자그마한 항아리에 성주쌀을 담아 놓는다
내 생각에 성주님은 집 안의 일을 관장하는 신인것
같다
성주쌀은 일년동안 부지런히 썩어서 쌀은 전혀 못 먹게 된다
그것을 고이 부어 놓고 새쌀을 넣는다
농사를
지으면 첫 방아를 찧으러 가서 젤 먼저 나오는 쌀을 받아서
표시를 해 놓는다
처음것을 조상님께 돌리려는 마음인것 같다
그 표시해
놓은 첫쌀을 성주동이에 담고, 밖에 있는 터줏대감 항아리에도 담는다
터줏대감은 옷을 새로 갈아 입고 쌀도 새로 넣어 주면 아침 행사는
끝이다
그것이 우리의 추수감사 젤 첫번째 일인 것이다
<햇 짚으로 새옷을 해 입은 터주가리>
아침 물린 설거지 대충 끝나면 몇가지 부침개를
굽는다
무우를 길이로 얄팍하게 썰어 소금넣고 당원을 조금 넣어 폭 삶는다
그거 건져 놓고, 배추 두껍지 않은 걸로 반포기 준비하고
두부에 골파,
고구마를 큰걸로 두개 깎아서 썰어 담궈 놓는다
댓가지 부침개를 구워 놓고, 삼색 나물을 준비한다
콩나물,
도래나물(도라지), 고사리,무우나물을 짜작하니 볶아 놓는다
젤 중요한건 떡을 하는 일이다
전날 담궈 놓은 찹쌀과 멥쌀 섞어 불린 것을 방앗간에 가서 갈아 온다
햇팥을
무르게 삶아 절구에 넣고 대충 쿵쿵 찧는다
찰시루떡을 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고물을 잘게 부수어도 맛이 없다
통팥이 디굴디굴 굴러 다닐
정도로 흑지게 팥을 넣어야 맛있다
시루도 전날 깨끗이 닦아서 방안에 들여다 놓는다
시루가 차가운 날씨에 얼어 있으면 떡이
제대로 쪄지질 않는다
가루 한 치, 고물 한 치, 이런 순서로 한 시루 떡을 앉혀서 앞부분이 어딘가를 하얀가루를 떡 앉힌 위에 살짝 뿌려
표시를 해 놓는다
양은솥단지에 물을 반솥 붓고는 떡 시루를 얹어서 쌀가루를 반죽하여 시루와 솥 사이의 틈을 번을 바른다
떡으로
김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꼼꼼히 막아주는 것이다
물이 끓으면서 떡이 김을 피워 물며 차례차례 켜켜로 익는다
찹쌀시루떡은 생각보다
하기가 힘들어서 이것이 단번에 폭 익어야지 잘 안되는 날은 긴 젓가락으로 수십번 찔러대도 잘 안익는것이다
어머님께서는 떡이 제대로 안되면
몹시 속상해하셨는데 올해는 떡이 잘 되었다
그렇게 음식이 다 장만이 되면 부엌에다 차려놓고 먼저 고사를 지낸다 뒷밭 대나무 숲에 가서 햇대 순도 한가쟁이
꺾어온다
밥을 한 솥을 그대로 똑 떼다가 부뚜막에 차려놓고 식구 수대로 숫가락을 꽂는다
<옛날 불때는 부엌이었을 때 부뚜막의 위치가 여기였다>
그 다음에는 절을 하고 소지종이를
올린다
이 소지는 다른 소지가 아니올소다 성주님의 소지올소다. 조씨부인 오늘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소지 올리니 소지 한 장을 잘
받아주소서
차례차례로 식구들 이름과 나이가 호명되고 소지 종이가 올라간다
소지 종이는 그 몸짓도 가볍게 하늘로 올라가고 소원성축을
기원한다
부엌의 순서가 끝나면 방, 삼신할미, 마루...며 집안을 돌아가면서 하고 마지막에는 우물가에 가서 조앙신에게도 간단하게 소지를
올린다
나는 그것을 벌써 열두해째 보고 있으나 내가 직접 하지 않으니 해마다 그 돌아가는 순서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대문 앞에 가서 차려온 음식을 모두 바가지에 부어 밖으로 화악 던져 버림으로서 고사는 끝이나고 대문 앞에서 작년의 터줏대감
옷을 불살라 버린다
그렇게 한해 농사지은 감사의 뜻을 조상에게 돌리는 행사가 끝이난다 늦은 저녁을 탕국과 갖은 나물과 같이 먹으면 참
맛난다
이런 일들이 이젠 서서히 사라져 나라도 어머님 돌아가시면 당장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어머님께서도 하던 것이라 안 할 수도 없고
나 죽고 나거든 다 때려 엎어버려라...하시면서 평생 이 집안으로 시집와서 해마다 하던 일이 얼마나 힘이들고 마음 쓰이는 일이란걸 간접
고백하셨으니..
어머님이 올려주신 소지로 인해 우린 또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까지 무사와 평안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조상님의 은덕으로...
<찰시루떡에 통팥이 드글드글하게 얹어서>
<홍시를 트개서 찰떡을 찍어 먹는 맛이라니...>
일일이 집집마다 떡접시 못 돌리드래도 눈으로나마 많이 드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