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이 맛, 저 맛.

황금횃대 2005. 12. 22. 21:12

큰시누형님댁이 집을 새로 개축했다

오늘 동지라 영천사에 불공을 디리고 절에 팥죽이 많이 남았다고 퍼가라해서

두 봉지 야물게 퍼서 하나는 친정 엄니를 디린다고 우리집에 왔다.

마악 팥죽 한 솥 끓여 그릇그릇 퍼 놓고, 솥 씻은 물일랑 바가지에 퍼담아 삽작걸에 가서

문밖으로 홰액 바가지를 힘차게 돌리며 붉은 팥물을 끼얹었다

속이 안 좋으니 팥음식은 질쌕이라. 한 숟가락 떠 보지도 못했다

무르팍 가까이 다가 앉는 딸에게 엄니께서

"날도 그렇고 팥도 뭐 그렇고 해서 안 낋일라는데 느그 아부지가 팥죽 안 낋이느고 묻잖아, 귀찮지만 팥죽이 또 생각이 있나 싶어서 든누웠다가 제우 일나서 팥 삶고 찹쌀 한데지비 담과서 이제 마악 끓있네"

결국은 아버님 디릴라고 끓이셨구나 속짐작을 하고 있는데 형님이

"요번 동지는 오후 세시가 먹는 시時래요"

"시 맞춰 먹으면 열두달 굿하는 것보다 낫다는데 바깥에 일 나간 사람들이 안 들어오네"

"세 시 다 됐는데 어머님 먼저 드세요"

"여자들이야 뭐 남자들이 맞춰서 먹어야지 좋지"

잘 나가다 어머님 저렇게 말씀하시면 속에서 욱하고 올라온다

 

초파일 등을 켜도 등에 여자이름은 하나도 안 올린다

콩알 만하게 생겼어도 사내라면 등에다 이름을 올려주고.

여자들은 왜 안 올려요  이름 석자 더 쓴다고 등이 무거워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하는 생각이 저절로 치밀어 올라온다

십 수년을 거기에 대해 더러 반감을 드러내도 어머님은 절대 포기하시지 않고  나는 나대로 그런 차별적 시선에 익숙해지면 될텐데 그게 또 안 된다. 안 되는건 서로가 영 안된다.

 

고스방이 들어와 팥죽을 먹고 형님을 집까지 태워 준다며 집구경도 할 겸 나도 같이 가잖다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같이 가고 싶어하는가 싶어 선 걸음에 따라나선다

 

형님 집에 들렀다가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고스방이 나를 본다

 

"봐봐야 맹 이뿌기만 허지?"

"이뿌긴 여편네야 나는 너 파마하고는 하나도 안 이뻐 꼭 딴 여편네하고 사는 것 같단 말야"

"어이고 잘 됐네 하나로 이 맛 저 맛 다 보고 사니"

말해놓고 보니...좀 그렇다 푸히히히 웃으니 고스방 허참..한다.

 

"내가 이 맛은 알지만 저 맛은 영 모르는데 저 맛이 어떤지는 어떻게 알아보나...응?"

응근히 눈알을 살살 굴리며 나를 시험하는데.

 

"누가 그 맛 말해욧. 머리 모양 말이재..."

남자들이란 말여 똑 한 가지 맛 밖에 생각을 못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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