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이노의 정모는 따로 정모의 주제를 정하지 않아도 늘 정해져 있다
내가 아무리 하하호호 입술을 가로세로 찢어서 호탕하게 웃어도 말미엔
늘 비가를 부를 수 밖에 없다 그래, 또 이야기를 풀어 놓아야지 옛날 옛적
호랭이가 뽕이파리에 담배말아 먹던 컨셉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야기..
떠나는 날 아침.
설레임이 길었던 밤을 보내면 아침은 늘 코앞에 엎어져 사람을 바쁘게 한다.
첫새벽에 깨었으나 다시 잠들어 깜짝 놀라 깨었더니, 아침은 충분히 먹으리라 생각
했던 밥솥이 턱없이 부족한 용량으로 솥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급히 학교가는
아이들의 아침부터 해결하고 가스렌지에 수동으로, 전기밥솥에 자동으로 밥은
두솥이나 앉힌다. 조금 늦게 해결된 아침밥을 서둘러 해결하고 청소에 설거지에
눈썹이 휘날리도록 해치우고 청주병에 따뤄놓은 포도주 두 병을 챙겨서 황간역으로
가다. 8시 30분 대전으로 가는 열차에 간발의 차이로 올라타고 난 뒤에야 나는
깊은 한숨을 쉬게 되었다.
그 뒤로는 순서가 너무나 평안하게 진행이 되다. 여린 아침 봄볕이 차창에 사뿐사뿐
걸어온다. 봄볕의 뒤에는 부산히 움직이는 아침이 기지개도 켜지않고 뒤따르고
플랫포옴에는 가방을 든 사람들이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고 있다
제천행 열차에 올라 탄다. 내 뒷자석에 앉은 부부는 아들놈의 장래성없슴을 한탄하며
그동안 아들의 행위에 대해 분노의 말들을 쏟아 놓기 시작한다. 기차는 출발하고
기찻길 너머 산수유가 피어나는 풍경이 지나갔냐하면, 지난 폭설로 무너진 하우스가
손대기 난감한 모양으로 내려앉은 풍경이 지나간다. 부지런한 농군이 지난해 심어 놓아 푸릇푸릇 새싹이 올라온 보리밭을 지나는가 하면 몇모금 되지 않는 수량을 흘리며
시남시남 흘러가는 실개천을 만나기도 한다.
제천역에 닿았을 때는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전화가 왔다 친구놈이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점심도 먹지 않고 역으로 나왔다
녀석을 본지도 이년이 넘었다 한 때는 출장길에 부지런히 들러 만나기도 했지만 서로 사는 것이 바쁘니 그것도 뜸하다. 그러기나 말기나 이렇게 정선행을 부탁했을때 흔쾌히 나와 줄수 있는 것 만으로도 고맙지.
영월을 지나 42번국도를 탄다. 사위는 조용하고 봄날의 밝음은 길위에 널부러졌다
정선에 닿아 고기도 사고 점심도 먹을겸 시내에 주차시키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다.
시장통까지 걸어서 고기와 채소며 국거리를 사고 다시 출발 몇번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선 아우라지를 찾아간다. 경부선 옆자리에 터전을 깔고 사는 사람들은 그 반경을 한시간 이상 벗어나면 오지로 간주하는 오류가 있는데 나 역시도 정선이란 땅은
행님의 애옥살이 세간을 보거나 풍경으로 보거나 그냥 첩첩산중의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인식을 하고 있는데 국도를 따라 오는 길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않게 한다.
산위로 밀고 올라가는 경사진 밭을 보면서 아..저것이 산골의 살림이구나. 길이야 도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널찍하게 닦아 놓았지만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저 비탈의 밭뙈기를 쪼그리고 갈아 먹어야하는 고단함이 층층으로 매달렸구나. 평지의 농사도 한나절 푸닥거리다보면 바튼(밭은?) 호흡이 내쉬지는데 저런 다랑지 논에서 옥수수를 심는 고단함은 또 어떤 농도일까. 아우라지에 닿도록 차 안에서 혼자 생각이 많아진다.
그닥 어렵지 않게 아우라지에 닿았다. 동네 들어가는 초입의 민박 간판을 보며, 혹시 이 집이 아닐까 하며 지나쳤는데 형님집이 핸드폰이 되지 않는 곳이라 하여 안쪽으로 계속 길을 따라 들어간다. 그러다 혹시 싶어 전화를 하니 너무 들어갔다고 해서 다시 되돌려 나오니 역시나 내가 처음 짚은 그집이 우리가 하룻밤을 지낼 민박집이였다. 차를 주차시키고 집에 들어가니 삐그덕거리는 낡은 평상에 썰렁한 술상이 차려졌다. 노란 오가피 술이 이미 한병은 바닥이 보이고 한병은 반쯤이 남았다.
마당에는 장작이 뽀갠지 얼마되지 않는 흰속살이 햇빛을 반사해내고 있다. 옆에는 형님이 찬 개울물에 시린 손으로 씻었다는 철망이 두 장 포개져 있고 모래질이 많은 마당은 바람이 불자 금방 魂이 들어간 망자의 육신처럼 부스스 일어날 채비를 한다.
민박집 할머니와 먼저 도착한 137, 게바라, 바람-曉霧, 정선행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내 친구는 원래 숫기가 없는데다 이런 모임에 적응을 잘 못해서 놀고 가라는 말에 몹시 난감해하며 서성거리다 전화 핑게를 대고 되돌아갔다.
내일 데리러 올래? 하고 농담삼아 물었더니 예식장 운운...한다.
"후후...농담이여 이렇게 데려다 준것만 해도 너무 고맙구만" (말을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이자슥 애정이 식었구만 하다" ㅋㅋㅋ)
친구가 가고 가져 온 하룻밤지낼 도구들을 풀어 놓는다. 다들 모이는 일도 큰 일이지만 두어끼 해먹는 일도 펼쳐놓은 도구들과 재료들로 인해 장난이 아님을 깨닫다.
인생이 뭡니까 하고 물으면 <먹고 사는 일>이라고 간단히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숟가락 몽뎅이에 발가락에 걸치는 고무신 한 켤레까지 세세히 그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먹고 사는 일의 철학적 의미는 간단은 몇마디의 단어로 규정되어 지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부엌에다 인생의 소품들을 들여놓고 정리를 한다.
고기를 구울 수 있는 간단한 아궁이 시설을 마당에 설치하다. 길과 집 주변의 돌멩이를 주워다 철망을 걸칠 수 있는 아궁이를 만들고 땅을 파서 번개탄을 넣을 곳을 마련해주다. 沙質의 마당이 몇번의 삽질에 번개탄을 품을 작은 자궁을 만들어 낸다.
오늘밤 저기 작은 아궁이 자궁에서 번개탄불을 품으면 피어무는 연기와 불길로 인해 우린 많은 생각들을 사르고 구워내서 단단한 생의 한 페이지를 만들지 않을까 자못 기대가 큰 것이다.
바람이 불어 우선 하우스 속에 들어가 포도주 한병을 끌렀다. 지난 가을 농사지어 담근 포도주는 달착지근한 맛고 향을 내 놓으며 퐁퐁퐁 컵 속으로 부어진다.
137과 행님, 게바라와 바람-曉霧님이 차례로 잔을 돌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제 맘속의 아픔이나 괴로움 근심 걱정은 어디에 짱박아 놓았는지 모르지만, 겉으로 배출하는 표정은 즐겁다. 우린 게바라만 냅두고 모두 아무 아픔이 없는 사람으로 짝지워져 한 패가 되고 홀로 남은 게바라는 어이없이 웃는다. 얘 게바라, 사는데 뭔 아픔이 있노 우린 그런거 없어야.
두루두루만남
토루군과 회갈색쥐님이 오셨다. 일찍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으니 도무지 민박집에 나타나지 않는 회갈색쥐를 게바라는 몹시도 걱정하였다. 그러나 나타난 그의 건장한 체구를 보고는 우린 주객이 전도됨을 대번에 알수 있었다. 차라리 회갈색쥐님이 게바라를 걱정해야 할 형편임을...ㅎㅎㅎㅎ
토루는 도회지총각답게 귀에는 반짝거리는 귀걸이를 하였고 얼굴에 햇빛의 흔적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을 만큼 그을음이 없었다 하얀피부에 작은 눈. 눈의 크기에 딱 맞춘 작은 사각 안경이 그를 더욱더 토루군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합일을 본 이야기지만, 다들 토루라는 닉네임에서 그가 동글동글한 인상을 가졌을 거라는 유추를 했다나. 그래서 내가 그건 토루라고 발음을 하며 혀가 동그랗게 안으로 말리기 때문일거라고 텍도 아닌 이유를 말했더니 모두 술김에 동의를 하다.
그렇게 참석인원의 과반수가 넘어서고 있었다. 드디어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낮에는 심술을 부리던 바람이 내가 떠드는 기세에 눌렸던지 어쨌던지 수구리하고 잠잠해졌다. 민박집 할머니도 너무나 신기하게 바람이 잔다고 말씀을 하신다.(혹여 게바라는 제 카리쑤마에 바람이 눌려서 그렇다는 생각을 할 지 모르지만 그게 아님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모닥불을 피우고 평상을 옮기고 둘이 맞대어 놓았을 때는 잠잠하던 들마루 평상이 마주 보게 떼어 놓으니 삐그덕삐그덕 몸체를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왜 아니그러겠는가. 잠잠하니 둘이서 아픈 관절을 기대며 햇살에 늙어 갔을 터인데 졸창지간 힘에 의해 분리가 되어 따로 놓여졌으니 그것이 설령 말못하는 사물일지언저 아프다 소릴 내지 않겠는가. 이참에 모닥불은 타악,탁 소릴 내며 타오른다. 불꽃이 공중으로 일어나고 잘 마른 나무가 내는 연기는 지극히 작다. 처음의 시행착오를
제외하고는 고기는 철망위에서 잘 구워졌다. 역시 이 맛이야! 석쇠에서 구워진 삼겹살은 기름기를 불 아래 떨어뜨리고 맛있게 구워졌다. 쌈장과 채소를 가져다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웃는다. 시 이야기, 문학이야기 하면 패쥐긴다는 명령은 비교적 잘 지켜진다. 그러다 종교 문제로 빠졌는데 다행이 게바라라 이데아 운운하며 철학적 용어로 마무리 지었다. 이야기를 더 끌고 가자 하였으나 이데아가 나온 판국에 더 나올 이야기가 뭣이 있겠는가 에라이 한 잔 더하자.
그렇게 날은 밤중으로 치닫고, 하늘에는 별 형제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찬기운이 별빛 사다리를 타고 내 어깨 위에도 형님의 어깨에도 바람의 어깨에도 137의 큰 머리에도, 회갈색쥐의 회색 머리에도 내리고 있다. 회갈색쥐님은 몸살기운이 있는지 몹시 힘들어 하길레 따듯한 방으로 들어가라 하다. 그렇게 카푸스님의 차가 오기까지 시간이 찬찬히 아우라지 물과 함께 흘러갔다.
밤과 새벽 사이
추위가 내려오자 머플러를 펼쳐 덮어도 무르팍까지 냉기가 파고 든다
방에 들어가 얇은 요를 가져와 온몸을 끌어덮어도 자꾸 춥다
서울 팀들이 다 와 간다는 기별이 게바라의 전화기로 온다. 그들이 오기 전 잠시 몸을 덮이기 위해 방으로 드니 무인시대를 한다. 바람-曉霧님은 무인시대(무신시댄가?) 왕팬이랜다. 한때 고서방도 사극의 왕팬이였으나 어쩐일로 이 드라마만은 보지 않는다.
간신히 나오는 티비 화면에 눈을 박고 깜박거리는김에 한참 눈꺼풀을 내려 놓았다가 뜨고 하는데 서울 팀들이 도착했다.
왁자한 대문간에는 숲과 그의 자그마한 아들, 청산별곡, 카푸스님이 차에서 내리고 먼저 온 식구들이 그들을 맞으러 간다. 차에서 내린 음식은 이 동네 사람 다 불러서 잔치를 하여도 될만큼 어마어마한 양이 왔다. 하나같이 맛깔스럽게 포장이 되어 국물 한방울 흐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포장을 하였는데, 정말이지 이렇게 해 보낸 카푸스님의 직장 조리반장을 한번 뵙고 싶은 마음 들 정도다.
삼겹살 구워 먹으며 된장 끓여 밥까지 먹었으니 그 음식을 우린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늦게 온 식구들 밥을 차려놓고 먹으며 다시 한잔씩 하면서 화기 애애한 시간을 이어간다.
너무나 호남형이라 입이 딱 벌어지는 카푸스님이 좌중을 주도하면서 말씀을 시작하고, 우린 한사람씩 돌아가며 자기 소개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였다. 보리차에 소주의 적량을 우리에게 각인 시켜줄 회갈색쥐가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아, 우린 공복에 보리차 안주 삼아 세 병의 소주를 가비얍게 마시는 기막힌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모두 기분좋게 주거니 받거니 잔들을 옮겨 갔다. 청산별곡이 가져 온 포도주를 마시고, 맥주와 소주가 짬뽕으로 돌고 돌았다. 이렇게 짬뽕하면 속이 좋지 않아 핑 가는 수가 있는데 공기좋고 사람 좋고 아늑한 들보 아래 마시는 술은 취하지도 않는지...
카푸스님이 하신말씀은 여러가지 있는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파장과 메타포란 두 단어 밖에 없으니..쩝.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사물과 사람 사이, 자연과 사람사이에 끊임없이 흐르는 파장.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파장의 크기와 움직임으로 구별되어진다
그러니 너와 내가 만나 이렇게 인연의 끈을 이어 놓는다는 말은 좋은 파장끼리 서로 연결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초대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고, 게바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글 쓰는 이야기도 하셨고 아..메타포 메타포...이런 단어를 계속해서 말씀하셨는데 난 뭔말인지 당체몰라 졸음이 왔다 히히
너무나 무거운 눈꺼풀을 어쩌지 못해 잠시 누웠다가 회갈색쥐 혼자 카푸스님과 이야기 하길래 다시 일어났다.
도무지 잠을 잘 형편이 아니다. 술이 야악간 취하신 카푸스님의 이야기는 거칠것이 없었으며 회갈색쥐에게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마주앉아 두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내가 할 일은 그것밖에 없는 듯하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인원점검을 하셨는데 다들 내가 오니까 나가버린다며...못내 서운해 하신다
시간은 고만 다섯시를 넘어서고 있다.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면 조금 자 두어야하는데 카푸스님은 여기 이 먼곳에 자러 왔냐고 그러시며 누워서도 이야기 하신다.
나는 예, 예, 대답만 한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게지. 한참 혼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날 보고 그만 자라고 한다.
예...
한 시간 남짓 잠을 잤나? 일어나니 일곱시가 다 되었다. 일곱시가 되자 알람이 여기저기 울린다. 대개 평상의 기상시간이 일곱시임을 이 골짝에서도 알 수가 있다
밥을 앉혀 놓고 울려대는 알람을 끄고는 살며시 나와서 국을 끓인다.
밖에 나오니 할머니는 벌써 일어나셔서 밤새도록 우리가 어질러 놓을 것을 치우신다
먹고 떠들줄만 알았지 치울 줄도 모르는 젊은 것들이 얼마나 미우셨을까. 그렇지만 그런 내색 요만큼도 안 내시고 묵묵히 치우신다.
부엌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에 별곡이 깨서 나오고, 8시에 출발해야 한다는 바람을 깨우고....차례대로 일어난다. 토루도 일어나고 숲도 일어나고 정선행님도 일어나고....숲속의 정령들이 깨어나듯 그들도 그렇게 깨어 난다. 젤 늦게 일어난 사람이 카푸스님이다 허기사 젤 늦게 잠이 들었으니.
내가 카푸스님 옆에 누워서 잤는데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는데도 두어번 깨었다
깨어 희미한 창호지를 투과해 들어온 밝음으로 카푸스님의 얼굴을 본다. 뭐라 말 할 수 없는 묘한 기분. 집에서 혹간 밤중에 잠깨어 고서방의 얼굴을 내려다 볼때의 그 기분... 그 얼굴에 깃든 全生이 골깊은 이마주름과 잔주름 사이에 미세히 수 놓여 있슴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가슴은 인간적 연민으로 억장이 무너진다.
살어내느라 애 쓰셨구만요...마음으로 나즈막히 중얼거려본다.
아침상을 봐 놓고 가마솥에 데운 물로 세수를 하고 들어와 밥을 먹는다. 청산별곡이 밥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한다. 카푸스님은 억지로 일어나 세수도 안하고 아침을 드신다. 안씻으시냐고 물으니 씻을 이유가 어디있는가 하고 반문한다. 할 말이 없다.
먹고 치우고 우린 행님의 집과 문원에 가보기 위해 민박집을 나왔다
공터에서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할머니와 헤어질 때는 얼마나 서운한지...하룻밤에 사람의 정이란건 얼마나 각자의 가슴에 스며들수 있는걸까 속으로 생각하다.
바람-曉霧님은 서울로 바로 올라 가시고, 우린 행님의 집으로 갔다.
한참을 차를 몰안 산말래이로 올라가는데 아..진짜 꼴짜기다.
한 사람 누우면 딱 맞을 크기의 방에 행님의 세간살이라 오목조목 앉아 있고 불 때는 부엌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다. 장작이 나란히나란히 서 있고 몇 십년을 하늘로 올라 천정에 맺힌 그을음이 주렴처럼 늘어졌다. 아....옛날이구나. 쌀뜨물에 설거지를 하고 그 구정물을 뒤돌아 외양간 구시에 부으면서 허리 한번 폈을 옛 이집의 주인아줌마를 생각한다. 그렇게 커가는 소를 보고 시름도 잊고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을 고단한 옛 여편네를 생각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풍경은 너무도 선연하여
다시 입을 다문다. 행님의 집에서 조금 걸어 개울을 건너면 문원이 있다
햇볕이 젤 먼저 도착할 거 같은 방향이다.
벗은 나무의 앞서거니 뒷서거니 도란도락 곁가지를 내밀고 있는 간격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김새나 도배지 밑으로 밋밋하지 않는 흙벽의 질감이 흐르는 풍경이나, 작은 문으로 소통이 되는 두 칸 방의 알맞은 크기나..모두 모두 마음에 든다
모두 들어가 벽에다가 자신을 써 놓는다
<2004. 3. 20 전상순 왔다가다>
가장 촌스런 문구가 가장 오래간다는 전설을 믿는지라 나는 저렇게 볼펜으로 내 이름을 새겨놓는다. 볼펜을 떼니 벽지 밑의 흙이 주루루 흘러내린다.
방 문앞에서 사진을 찍고 들락거린 이 몇 되지 않는데 문틀 밑으로 흙벽이 뚝 떨어져 내렸다. 으익구..얼마나 날림보수공사를 해 놓았지...끌끌.
그래도 우린 아름답고 소박한 그 방에 감탄의 부호를 떨어 뜨려놓고, 제 집이 한채 생긴양 즐거워하였다.
행님의 그 작은 눈에 어떻게 이 기막힌 골짜기가 눈에 띄였을까.
정암사가 가깝다하기에 서둘러 길을 떠났다. 아무리 달려가도 절은 나오지 않고 우리집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빨리오라는 아들놈의 목소리다. 아빠가 화 내실지 몰라 아침에 일찍 온다고 했잖아. 아들놈은 걱정이 늘어졌다
그 때 행님이 차를 돌렸고 길을 잘못 찾겠다고 그런다. 할 수없이 시간이 촉박하여 나와 숲은 게바라의 차를 타고 제천으로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암사로 갔다
언제 다시 또 만나 이런 시간을 가질까 각자의 마음에는 한가지 소망의 씨앗이 심어졌다.
피곤한 게바라는 열심히 운전을 하여주었고 우린 시간에 맞춰 기차와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숲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배웅을 하면서 문득 게바라를 보니 눈물이 났다
애쓰는 시간의 흔적이 그의 얼굴에 오롯이 묻어나서 속이 상하고 숲을 보내야 함이 애틋하고, 열에 들뜬 네살박이 그의 아들이 애처로와 눈물이 나왔다.
터미널 높은 천정을 바라보며 눈알을 빙글빙글 돌려 눈물을 감춘다.
다시 제천역.
어제 올 때는 팔팔한 모습으로 왔는데 24시간 뒤에 나는 완전히 지쳐있다
한 없이 무거운 눈꺼풀이 그러하고, 아픈 허리가 그러하고, 저리는 다리가 그러하고
속상한 가심한켠이 그러하고....그러하고...
기차에 올라서자 서둘러 눈을 감는다.
제천.
이다음, 또 한번 제천 땅을 밟을 수가 있을까.
집에 들어서니 저녁 일곱시다.
저녁은 그럭저럭 넘어 갔는데 허리가 아파 누웠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이불도 안 깔아놓고 이 여편네가!!"
고함소리에 벌떡 깨어나니 고서방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한다.
놀래서 일어나 요를 깔고 이부자리를 정리하니 고서방이 들어와 한 소리 한다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빌어도 입으로만 잘못했다하지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나?
하루만에 올 줄 알았는데 자고 왔다고 그러는 모양이다. 내가 분명히 하루만에 못 온다고 말을 했는데. 근데 그 뒤에 말이 우낀다
"그건 그렇다치고 말이지, 어제 혼자 자는데 가위 눌려 헛소리 하다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이들 방에 가서 잤는데 말이지, 여편네가 하룻밤을 자고 왔으면 이불이라도 제대로 깔아놔야지 뭐하는거야 도무지 제대로 하는게 없어...'
아이고 딱걸렸구만. 내가 왜 이부자리를 깔아놓지 않았을까 속으로 내머리를 쥐어박았지만 할 수 없는일..고서방의 앙칼진 투정은 계속된다...어흑..
이 사태를 마무리 하기위해선 우는 수 밖에 없다...잉잉.
울다보니 갑자기 낮부터 참아온 설움이 복받친다. 그래도 큰 소리로 울지는 못하고
돌아 누워 소리 죽여 운다. 꺼이꺼이...아이고오오오오...참으면서도 설움의 크기는 최대한 표현하여야하기에...그제서야 고스방 아무말 않고 자는척한다.
모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悲歌를 한밤중에 혼자서 꺽꺽 부르고 있다
전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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