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대의 전화기에서 퍼뜩 일라라고 각기 고유한 음색으로 아침을 깨운다
우리집 마당에는 저런 기계음 말고도 달구새끼들이 저마다 갈고 닦은 음색으로 새벽을 깨우는 기맥힌 장치가 있건만, 자연음이란게 어디 오래가냔말이지. 달구새끼 니야 울어라 우린 잘란다 하는데 이력이 났다
2
포도 따느라고 식구 아홉이 밥을 먹으니 매끼니마다 밥을 해야한다
여지없이 오늘 아침에도 밥 재고가 없다.
서둘러 보리쌀 한줌에 쌀 한 됫박, 그리고 현미 한오큼 섞어서 밥을 앉힌다.
제몸 싸악 다듬으면 바로 밥상 차려 놓아야하는 고스방의 승질을 아는터라 끓이던 된장이야 넘치든말던 밥부터 한 그릇 퍼서 갖다 안긴다.
요즘 같으면 이 밥 먹고 돈 많이 벌어 오세요 이런 기원도 없다.
그져 때 되니 먹고,일 마쳤으니 들어와 잔다 이런 명제 밖에 없는 듯 하다.
반찬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든다. 허기사 맨날 퍼묵기만 하고 새로 만들지 않으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반찬 할 여가가 없다. 그냥 김치나 꺼내 대가리 뭉텅 무지르고, 열무나 한 사발 퍼담고, 뒤안 장꽝에서 고추장이나 한 종지 퍼오고, 푸르륵 끓어 넘쳐 투가리 주위가 온통 된장국물로 도배된 뚝배기나 옮겨놓고.
그렇게 달그락달그락 밥 숟가락이 움직이는 횟수만큼 아침이 가고 있다.
3.
차고에는 어젯밤 늦게까지 작업하다 남겨둔 포도들이 하얀 봉지 속에서 얌전히 놓여있다.
겉으로 봐서 얌전히 운운..이지 제 속은 터지고 터진 곳에서 흘러 나온 물을 뒤집어 쓰며 또 포도알이 갈라지고 ..아주 아수라장이다.
거기다 초파리는 신맛을 귀신같이 알고는 잔치집에 거지새끼같이 몰려와 왕왕 날개짓이다.
초파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눈이고 날개고 몸통이고 온통 빨갛다
할일 없는 과학자들이 초파리와 사람의 유전자 검색을 해보니 염기서열이 인간과 딱 일곱쌍 틀리다는걸 알아냈다나 어쨌다나 믿거나 말거나.
차고 바닥에 들놀이용 돋자리 하나 깔면 하루종일 엉덩이 비비덕 거릴 내 일터가 만들어진다.
포도박스며 가위며 흩어진 포도알이며 구르는 봉지며 질질 흐르는 포도물이며 이 모든 조건들이 구색이 맞아 서로가 서로의 이빨을 맞물고 돌아가고 있다.
눙깔이 빠지도록 포도알을 파내고, 거기다가 따내서 뻐꿈한 자리에 이쁘고 잘 익은 놈을 잘라다 메꿔넣는다
혹자는 여기다 눈가림 할라고 포도알을 박아놓냐며 힐난을 할지 모르지만, 포도 송이를 가먄히 들여다 보면 포도알이 서로서로 어깨로 겯고 달려 있기 때문에 터진거 두어알 빼내고 나면 고만 나머지기는 지절로 목이 델룽거리며 곧장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공정 더 보탠다
다른 포도알을 잘라서 거기에 박아 넣는 것이다
이것은 포도작업의 천기 누설인데, 우리집 포도를 사먹는 분들이 많아서 할 수 없이 공개를 한다.
4
오후 두시.
어젯밤 부터 작업한 포도 박스를 차에 싣는다
일군이 없으니 기껏해야 몇박스 작업을 못한다
고서방은 고서방대로 풀방구리 쥐드나들듯 마음을 놓지 못해 들락이며 포도 정리를 해주고 어머님도 무겁고 아픈 몸으로 종일 작업을 하신다
포도가 터져서 손질을 하다하다 고만 느슨해진 포도 송이를 즙짜는 곳으로 넣는데, 참 허탈하다.
아무리 농부는 굶어죽어도 베개 속에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지독한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 멀쩡하니 일해서 익어주기만 하면 그야말로 저 좋고 나좋고 지나가던 형부도 좋을 일이지만, 지럴맞은 날씨가 올해는 영 인상을 구기고 사흘들어 비를 뿌려대니, 어느 곡식이며 열매가 남아나겠는가
기실 포도농사 지어 떼돈 벌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논에 벼농사 짓는 거 보다 훨 일손이 많이 가니, 그 일손 들인 만큼 벌면 아무 욕심이 없는 것, 그런데도 그게 맘대로 안되니.
옛말 그른거 하나도 없네, 자식하고 농사만큼은 내맘대로 안된다고.
둘다 삼신할미가 돌보고 하늘이 돌봐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속터져가며 입으로는 씨부랄 욕까지 가끔 뱉어가며 작업한 것을 서울 농협으로 실려보낸다.
그러고는 급하게 점심 한 숟갈 뱃속에 공양한다.
5.
오후 세시
콘티박스 스물두엇 싣고 다시 포도밭으로 간다
포도넝쿨도 찬바람 이니 비실비실 말라간다
태풍 <매미>군이 얼마나 지랄을 떨어놨는지 비가림 시설한 비닐이 홀딱 벗겨저 옆으로 빗물을 가득담고 늘어져 있다
군데군데 수소폭탁처럼 물을 담고 늘어져 있는데, 그걸 두두리면 북소리가 난다.
어제는 그 물 속에 물방개 한마리가 들어앉아 유유자적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비닐 벗겨져 속 아픈건 인간들의 몫이지. 아무렴 나는 거기서 헤엄을 치니 좀 좋아 풍뎅이가 나를 보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믿거나말거나.
포도봉지를 일일이 뜯어보고 익은 놈은 가위로 잘라내고 안 익은 것은 다시 만두꼭지처럼 호믈트리 놓는다.
다른 벌레나 벌들이 못들어가게 해 놓는 방비책이다.
그러나 들어갈 놈들은 다 들어가고 나올 놈은 다 나온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6.
저녁 일곱시
따 놓은 포도를 콘티박스에 담에 차에 싣고 온다.
태식이 아저씨네 논은 해마다 나락이 이맘때쯤이면 절시를 하여 보기좋은 노란 기미를 띄였는데, 올해는 흑명나방의 피해로 인해 벼잎사귀가 하얗게 변했다. 거기다가 군데군데 벼가 쓰러져 폭탄맞은 것 같다
저거 일으켜 세워 묶어야 하는데, 그 아저씨도 다른 바쁜일이 있는가 논둑배미에는 얼씬도 않는다.
저녁 어스름이 잠시 제 외투를 펼치면 고만 어둠이 냉큼 내려와 터들퍽 누워버린다.
산은 산대로 깜깜하고 하늘은 하늘대로 깜깜하고 희뿌연 반달이 내리는 안개 속에 뿌옇다
차고 안에 포도를 다 내려놓고,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하면서 저녁 한 술 뜬다.
숟가락이 자꾸 무겁다.
7
끄트머리
집과 동네는 완전히 안개에 휩싸였다
안개 때문인지 일찍 잠깬 달구새끼들도 도무지 초성을 내 놓지 않고 잠잠하다.
가까이 고속도로로 안개를 밀치며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듣기고 그 동안의 안부를 전하는 내 손가락만 살아 있는 운동을 하며 열심히 자판을 두둘긴다.
이제 자야지.
오줌 누고 털 여가도 없다는 말과, 부랄에 요령소리 난다는 말 내가 남자 였다면 지금 딱 적용하기 알맞은 말이다.
님들...행복하시죠? ㅎㅎㅎ
하이고 바뻐라
후다닥))))))))))))))))))))))
상순
두 대의 전화기에서 퍼뜩 일라라고 각기 고유한 음색으로 아침을 깨운다
우리집 마당에는 저런 기계음 말고도 달구새끼들이 저마다 갈고 닦은 음색으로 새벽을 깨우는 기맥힌 장치가 있건만, 자연음이란게 어디 오래가냔말이지. 달구새끼 니야 울어라 우린 잘란다 하는데 이력이 났다
2
포도 따느라고 식구 아홉이 밥을 먹으니 매끼니마다 밥을 해야한다
여지없이 오늘 아침에도 밥 재고가 없다.
서둘러 보리쌀 한줌에 쌀 한 됫박, 그리고 현미 한오큼 섞어서 밥을 앉힌다.
제몸 싸악 다듬으면 바로 밥상 차려 놓아야하는 고스방의 승질을 아는터라 끓이던 된장이야 넘치든말던 밥부터 한 그릇 퍼서 갖다 안긴다.
요즘 같으면 이 밥 먹고 돈 많이 벌어 오세요 이런 기원도 없다.
그져 때 되니 먹고,일 마쳤으니 들어와 잔다 이런 명제 밖에 없는 듯 하다.
반찬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든다. 허기사 맨날 퍼묵기만 하고 새로 만들지 않으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반찬 할 여가가 없다. 그냥 김치나 꺼내 대가리 뭉텅 무지르고, 열무나 한 사발 퍼담고, 뒤안 장꽝에서 고추장이나 한 종지 퍼오고, 푸르륵 끓어 넘쳐 투가리 주위가 온통 된장국물로 도배된 뚝배기나 옮겨놓고.
그렇게 달그락달그락 밥 숟가락이 움직이는 횟수만큼 아침이 가고 있다.
3.
차고에는 어젯밤 늦게까지 작업하다 남겨둔 포도들이 하얀 봉지 속에서 얌전히 놓여있다.
겉으로 봐서 얌전히 운운..이지 제 속은 터지고 터진 곳에서 흘러 나온 물을 뒤집어 쓰며 또 포도알이 갈라지고 ..아주 아수라장이다.
거기다 초파리는 신맛을 귀신같이 알고는 잔치집에 거지새끼같이 몰려와 왕왕 날개짓이다.
초파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눈이고 날개고 몸통이고 온통 빨갛다
할일 없는 과학자들이 초파리와 사람의 유전자 검색을 해보니 염기서열이 인간과 딱 일곱쌍 틀리다는걸 알아냈다나 어쨌다나 믿거나 말거나.
차고 바닥에 들놀이용 돋자리 하나 깔면 하루종일 엉덩이 비비덕 거릴 내 일터가 만들어진다.
포도박스며 가위며 흩어진 포도알이며 구르는 봉지며 질질 흐르는 포도물이며 이 모든 조건들이 구색이 맞아 서로가 서로의 이빨을 맞물고 돌아가고 있다.
눙깔이 빠지도록 포도알을 파내고, 거기다가 따내서 뻐꿈한 자리에 이쁘고 잘 익은 놈을 잘라다 메꿔넣는다
혹자는 여기다 눈가림 할라고 포도알을 박아놓냐며 힐난을 할지 모르지만, 포도 송이를 가먄히 들여다 보면 포도알이 서로서로 어깨로 겯고 달려 있기 때문에 터진거 두어알 빼내고 나면 고만 나머지기는 지절로 목이 델룽거리며 곧장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공정 더 보탠다
다른 포도알을 잘라서 거기에 박아 넣는 것이다
이것은 포도작업의 천기 누설인데, 우리집 포도를 사먹는 분들이 많아서 할 수 없이 공개를 한다.
4
오후 두시.
어젯밤 부터 작업한 포도 박스를 차에 싣는다
일군이 없으니 기껏해야 몇박스 작업을 못한다
고서방은 고서방대로 풀방구리 쥐드나들듯 마음을 놓지 못해 들락이며 포도 정리를 해주고 어머님도 무겁고 아픈 몸으로 종일 작업을 하신다
포도가 터져서 손질을 하다하다 고만 느슨해진 포도 송이를 즙짜는 곳으로 넣는데, 참 허탈하다.
아무리 농부는 굶어죽어도 베개 속에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지독한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 멀쩡하니 일해서 익어주기만 하면 그야말로 저 좋고 나좋고 지나가던 형부도 좋을 일이지만, 지럴맞은 날씨가 올해는 영 인상을 구기고 사흘들어 비를 뿌려대니, 어느 곡식이며 열매가 남아나겠는가
기실 포도농사 지어 떼돈 벌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논에 벼농사 짓는 거 보다 훨 일손이 많이 가니, 그 일손 들인 만큼 벌면 아무 욕심이 없는 것, 그런데도 그게 맘대로 안되니.
옛말 그른거 하나도 없네, 자식하고 농사만큼은 내맘대로 안된다고.
둘다 삼신할미가 돌보고 하늘이 돌봐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속터져가며 입으로는 씨부랄 욕까지 가끔 뱉어가며 작업한 것을 서울 농협으로 실려보낸다.
그러고는 급하게 점심 한 숟갈 뱃속에 공양한다.
5.
오후 세시
콘티박스 스물두엇 싣고 다시 포도밭으로 간다
포도넝쿨도 찬바람 이니 비실비실 말라간다
태풍 <매미>군이 얼마나 지랄을 떨어놨는지 비가림 시설한 비닐이 홀딱 벗겨저 옆으로 빗물을 가득담고 늘어져 있다
군데군데 수소폭탁처럼 물을 담고 늘어져 있는데, 그걸 두두리면 북소리가 난다.
어제는 그 물 속에 물방개 한마리가 들어앉아 유유자적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비닐 벗겨져 속 아픈건 인간들의 몫이지. 아무렴 나는 거기서 헤엄을 치니 좀 좋아 풍뎅이가 나를 보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믿거나말거나.
포도봉지를 일일이 뜯어보고 익은 놈은 가위로 잘라내고 안 익은 것은 다시 만두꼭지처럼 호믈트리 놓는다.
다른 벌레나 벌들이 못들어가게 해 놓는 방비책이다.
그러나 들어갈 놈들은 다 들어가고 나올 놈은 다 나온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6.
저녁 일곱시
따 놓은 포도를 콘티박스에 담에 차에 싣고 온다.
태식이 아저씨네 논은 해마다 나락이 이맘때쯤이면 절시를 하여 보기좋은 노란 기미를 띄였는데, 올해는 흑명나방의 피해로 인해 벼잎사귀가 하얗게 변했다. 거기다가 군데군데 벼가 쓰러져 폭탄맞은 것 같다
저거 일으켜 세워 묶어야 하는데, 그 아저씨도 다른 바쁜일이 있는가 논둑배미에는 얼씬도 않는다.
저녁 어스름이 잠시 제 외투를 펼치면 고만 어둠이 냉큼 내려와 터들퍽 누워버린다.
산은 산대로 깜깜하고 하늘은 하늘대로 깜깜하고 희뿌연 반달이 내리는 안개 속에 뿌옇다
차고 안에 포도를 다 내려놓고,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하면서 저녁 한 술 뜬다.
숟가락이 자꾸 무겁다.
7
끄트머리
집과 동네는 완전히 안개에 휩싸였다
안개 때문인지 일찍 잠깬 달구새끼들도 도무지 초성을 내 놓지 않고 잠잠하다.
가까이 고속도로로 안개를 밀치며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듣기고 그 동안의 안부를 전하는 내 손가락만 살아 있는 운동을 하며 열심히 자판을 두둘긴다.
이제 자야지.
오줌 누고 털 여가도 없다는 말과, 부랄에 요령소리 난다는 말 내가 남자 였다면 지금 딱 적용하기 알맞은 말이다.
님들...행복하시죠? ㅎㅎㅎ
하이고 바뻐라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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