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도 다 돌아가고,태풍 매미가 엊저녁부터 뿌리던 비가 새벽에서 아침으로 줄기차게 내리더니 점심 먹을 때는 해가 반짝 났다.
바람 불면 들고가기 힘들다며 새벽 댓바람에 일어나 고춧가루 다섯근과 친구가 솎아준 가을배추 한오큼, 그리고 꿀떡 한 사발즈음의 행장을 꾸리며 큰 형님은 바지런하고 야무지게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비닐마개를 친다.
내 아들놈 돌날 남편 장례식을 치른 우리 큰 형님
아즈버님 살아 생전 지지리 시부모님과 불화를 거듭하더니 결국 남편을 잃고서야 그 귀중함을 안다. 이 경우가 아니라도 우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서 소중한 줄 아는가
기껏 십킬로도 아니되는 무게에 헉헉거린다
아즈버님 살아 계실 때는 차에다 땡감이며 고추며 바리바리 차 뒷트렁크에 실어서 가더니만, 이젠 가져가라고 내밀어도 들고 가지 못해 포기할 지경이니, 큰며누리 이쁘게 아니보는 어머님 속이 또 한번 틀어지게 생겼다.
그래도 어머님 차비하라며 적은 돈이니 가져가라고 지전을 쥐어주신다.
생각하믄 불쌍하기도 하고, 내가 저한테 겪은 옛날 고초를 생각하믄 입에 들어가는 것도 되 빼앗고 싶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어머님이시지만, 사람 사는 일이란, 뼛 속에 새긴 분노도 가라 앉혀지고, 얼음짱같이 차가운 마음에도 균열이 생겨, 돌틈 사이에 잡초의 싹이 올라오듯, 안스러운 정이 생기는 것이다.
추석 전날,
제수 음식 장만 다 해놓고 떡을 하러가면,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번에는 일찍 떡을 해다놓고 음식을 장만하려고 일찌감치 불려 놓은 쌀을 가지고 떡방앗간을 향했다
떡 못 먹어 죽은 조상이 아마 있었을게야..하는 궁시렁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너나 없이 몇되의 송편이며 인절미며 갖은 고명의 삐지게찰떡에다 하얀고물 시루떡들을 연신연신 쪄대는데도 어느 구석에서 찾아가는지 떡재고는 금방금방 없어진다.
12시가 다 되어서 겨우 꿀송편 세 되를 해서 오토바이 싣고 집에 오니 아무도 오지를 않았다
어머님이 부침개 재료를 씻어 놓으시고 버섯을 삶으시고 우엉을 긁어 삶으시고...헉헉 거리며 하시고 계신다.
엎어지면 코 닿을데 있는 막내동서는 아직 오지 않았나보다
금방 얼굴색이 달라진다
장 보느라 몇 번의 장걸음을 하고, 돈 들어가는거야 심중에 쌓아놓지 않는다 하나 이런 날 일찍와서 다듬고 웃으며 전 부치고 하면 좀 좋은가
고만 마음에 쌍씸지 두 날이 시퍼렇게 돋는다
당근을 길이로 데쳐놓고는 버섯을 썰다가 칼을 도마위에 집어던지고 전화를 건다.
시동생이 받는다.
동서는 아직 안와요? 어디 갔어요?
곧 갈거예요
그 말이 떨어져도 곧 올거라는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난 뒤에 온다
식용유 세개들이 들어 있는 선물 한 박스를 들고 온다
대구 형님은 아직 출발을 안하셨나?
아침 나절 전화를 받은 어머님이 에둘러 변명을 하신다
고3조카가 오늘도 학교에 가서 그 애 혼자 올 수가 없으니 학교 마치고 오면 같이 온디야
(속으로, 편한 놈은 이래저래 편하고, 죽으라 일만 하는 년은 죽으라 일만 하는구만)
주뎅이가 대번에 튀어나온다
사람 보면 이런 마음이 쑥 사그러지는데, 오기 전까지는 그냥 내 혼자 원더풀하이타이거품인다.
다 해놓고 싸악 씻고 치우고 하니 대구 형님 식구들도 오고, 인천 큰 형님도 오고..뭐 왁짜하게 들이친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스뎅다라이에 밥을 두 솥 비벼 한 그릇씩 갖다 안긴다
맛있게 먹으며 숟가락을 움직이는 식구들을 보며 에공...잊자 한다
기껏해야 하루 먹고 치우는 일인데 두엇 수고해서 이 많은 식구 맛있게 먹어주면 됐지 하고.
차례상을 치우고 봉게봉게 음식을 싸 내면서 다음 명절은 설이라,
그저 한 살 더 먹는 명절이니 부글부글하던 마음도 가라 앉히는 능력이나 주었으면, 그 때도 오늘처럼 살테지만...후
남은 나물로 점심은 거하게 비벼서 부침개전골을 뜨끈뜨끈 퍼먹다.
배가 부르다
그 사이, 잠깐이지만 뿌리던 비가 멈추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제 드디어 폭풍이 내 곁에 다가온 것인가.
전상순
바람 불면 들고가기 힘들다며 새벽 댓바람에 일어나 고춧가루 다섯근과 친구가 솎아준 가을배추 한오큼, 그리고 꿀떡 한 사발즈음의 행장을 꾸리며 큰 형님은 바지런하고 야무지게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비닐마개를 친다.
내 아들놈 돌날 남편 장례식을 치른 우리 큰 형님
아즈버님 살아 생전 지지리 시부모님과 불화를 거듭하더니 결국 남편을 잃고서야 그 귀중함을 안다. 이 경우가 아니라도 우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서 소중한 줄 아는가
기껏 십킬로도 아니되는 무게에 헉헉거린다
아즈버님 살아 계실 때는 차에다 땡감이며 고추며 바리바리 차 뒷트렁크에 실어서 가더니만, 이젠 가져가라고 내밀어도 들고 가지 못해 포기할 지경이니, 큰며누리 이쁘게 아니보는 어머님 속이 또 한번 틀어지게 생겼다.
그래도 어머님 차비하라며 적은 돈이니 가져가라고 지전을 쥐어주신다.
생각하믄 불쌍하기도 하고, 내가 저한테 겪은 옛날 고초를 생각하믄 입에 들어가는 것도 되 빼앗고 싶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어머님이시지만, 사람 사는 일이란, 뼛 속에 새긴 분노도 가라 앉혀지고, 얼음짱같이 차가운 마음에도 균열이 생겨, 돌틈 사이에 잡초의 싹이 올라오듯, 안스러운 정이 생기는 것이다.
추석 전날,
제수 음식 장만 다 해놓고 떡을 하러가면,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번에는 일찍 떡을 해다놓고 음식을 장만하려고 일찌감치 불려 놓은 쌀을 가지고 떡방앗간을 향했다
떡 못 먹어 죽은 조상이 아마 있었을게야..하는 궁시렁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너나 없이 몇되의 송편이며 인절미며 갖은 고명의 삐지게찰떡에다 하얀고물 시루떡들을 연신연신 쪄대는데도 어느 구석에서 찾아가는지 떡재고는 금방금방 없어진다.
12시가 다 되어서 겨우 꿀송편 세 되를 해서 오토바이 싣고 집에 오니 아무도 오지를 않았다
어머님이 부침개 재료를 씻어 놓으시고 버섯을 삶으시고 우엉을 긁어 삶으시고...헉헉 거리며 하시고 계신다.
엎어지면 코 닿을데 있는 막내동서는 아직 오지 않았나보다
금방 얼굴색이 달라진다
장 보느라 몇 번의 장걸음을 하고, 돈 들어가는거야 심중에 쌓아놓지 않는다 하나 이런 날 일찍와서 다듬고 웃으며 전 부치고 하면 좀 좋은가
고만 마음에 쌍씸지 두 날이 시퍼렇게 돋는다
당근을 길이로 데쳐놓고는 버섯을 썰다가 칼을 도마위에 집어던지고 전화를 건다.
시동생이 받는다.
동서는 아직 안와요? 어디 갔어요?
곧 갈거예요
그 말이 떨어져도 곧 올거라는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난 뒤에 온다
식용유 세개들이 들어 있는 선물 한 박스를 들고 온다
대구 형님은 아직 출발을 안하셨나?
아침 나절 전화를 받은 어머님이 에둘러 변명을 하신다
고3조카가 오늘도 학교에 가서 그 애 혼자 올 수가 없으니 학교 마치고 오면 같이 온디야
(속으로, 편한 놈은 이래저래 편하고, 죽으라 일만 하는 년은 죽으라 일만 하는구만)
주뎅이가 대번에 튀어나온다
사람 보면 이런 마음이 쑥 사그러지는데, 오기 전까지는 그냥 내 혼자 원더풀하이타이거품인다.
다 해놓고 싸악 씻고 치우고 하니 대구 형님 식구들도 오고, 인천 큰 형님도 오고..뭐 왁짜하게 들이친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스뎅다라이에 밥을 두 솥 비벼 한 그릇씩 갖다 안긴다
맛있게 먹으며 숟가락을 움직이는 식구들을 보며 에공...잊자 한다
기껏해야 하루 먹고 치우는 일인데 두엇 수고해서 이 많은 식구 맛있게 먹어주면 됐지 하고.
차례상을 치우고 봉게봉게 음식을 싸 내면서 다음 명절은 설이라,
그저 한 살 더 먹는 명절이니 부글부글하던 마음도 가라 앉히는 능력이나 주었으면, 그 때도 오늘처럼 살테지만...후
남은 나물로 점심은 거하게 비벼서 부침개전골을 뜨끈뜨끈 퍼먹다.
배가 부르다
그 사이, 잠깐이지만 뿌리던 비가 멈추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제 드디어 폭풍이 내 곁에 다가온 것인가.
전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