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정월 대보름날 심심한 촌구석에는 반짝 생기가 돌재요
상상 한번 해 보시구랴. 누리띵띵한 촌사람 얼굴에 환한 웃음과 기쁨의 고함소리가 와하하하 장마에 봇물 터지듯 하는 모습을. 죙일 땡땡 굳은 얼굴이지만 상상 만으로 스르륵 얼굴이 변하지를.그렇지요?
아홉시가 조금 덜 되자 띵까띵까 집집마다 달린 동네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옵니다. 언제나 이히, 이히 어깨춤 들썩이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노래를 하는 그 여자의 노래부터 나오네요. 가수가 누구래요? 나도 몰래요 고속도록 가판에서 테이프 산 거래서 가수가 누군지도 몰래요. 노래가 채 한 곡도 끝나기 전에 에,에, 이장님 목소리가 나옵니다.
"동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우리 동네에는 동민 여러분을 모시고 윷놀이를 하고자 하오니, 많이 참석하셔서 점심도 같이 드시고...."
예전에도 말했재요. 우리 동네 이장님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잘 부르신다고. 우리하고는 먼 친척되재요. 문중 행사가 있으면 꼭 나오셔서 열심이십니다.
옛날에 참 잘 나가던 그 시절에 집문서 들고 튀어서 되등안되등 가수등용문에 함 나가보실걸 그랬습니다. 울 아버님처럼 해운데 엘레지 부를 땐 목소리가 얼매나 고운지...아마 고복수씨 버금가지 않을까..ㅎㅎㅎ
방송 끝나기 무섭게 이장 아주마이 회관으로 나오시고, 수미 아줌마도 나오시고..쌍둥이 아짐마까지 오늘은 얼굴에 보얗게 분단장을 하고 나오시네요
내가 농협에 얼라들 급식비 입금 시키고 부리나케 달려오니 이미 가마솥에는 설설 국수 다시물이 끓고 있었시요. 다시마 한 봉다리 통째로 넣고, 머리통 만한 무를 썩,썩, 두번 칼질에 네동강 내어서 텀벙 집어 넣고, 멸치에 고추씨 양파자루에 넣어서 담구고는 설설 끓여요. 지난 초봄에 전지해서 묶어 놓은 자두나뭇단을 아궁이 옆에 부려놓고는 타닥타닥 불을 땝니다.
오늘 점심은 뭐래요?
"국시나 한 그륵씩 먹지 뭐"
"아..국시 끓이시게요. 그럼 반찬은?"
"반찬이 뭐 필요있어 김장 김치 하고 간장 만들어 왔응께 그거만 있으면 되지."
"그려그려.. 근데 이게 아짐마집 김치래요?"
"김치 맛있게 맛 들었어 먹어봐 "
손가락으로 집어 먹고는 손끝을 "쪽"소리 나게 빨아 묵으며
"진짜 사곰사곰하니 희안하게 맛들었네. 아! 저개다가 두부 뜨건 물에 푹 데펴서 쌈 싸 묵으면 뿅가는데.."
"두부를 누가 사나. 됐어 고만 김치하고 먹재"
"그라지 말고 우리 두부 한 판 사묵어요. 간장도 꼭 묵간장 맹이로 지꼬추 다져넣어서 매푸하니 맛있고만. 그렇게 해요 녜?"
"그라면 상민이 엄마가 두부 한 판 사!"
"아이고 그러쥬.."
척,척, 앉아서 전화만 하면 윷놀이 상품에 두 부 한판에 음료수, 소주 대병이 배달되어 오재요.
"상품이 뭐꼬?"
"뭐 보나마나 슈퍼타이 아니면 퐁퐁이겠지"
"그게 최고여. 아무집이라도 그거 안 쓰는 집은 없응께"
"대추나무집 할무이는 화토짱 띠낏는교?"
"어...나 두 장 띠낏어. 상민이엄마꺼랑 내꺼랑"
화투장 띠끼는기 뭐냐하믄, 편가르는 방법이재요
티끝짜리 하고 십끝짜리 하고 섞어서 뒤집어 놓고는 티끝짜리 뒤집는 사람 한 편, 십끝짜리 뒤집는 사람 한 편..이렇게 편을 갈라요
그러고는 하는 말이
"용환네 형님은 어느 핀이여?"
"씹핀인데?"
"뭐라 씹핀?"
"뒤에 아재 계시는디 좀 그렇타. 열핀이라 하소"
"으응? 아하...아하하하 그렇네 듣고 보이 그렇네 나는 아모 생각없이 지낏구만"
입이 걸걸한 민석이 엄마가 또 십끝짜리 이야기를 살살 옆사람하고 하는데 먼데 앉은 내 귀에도 다 들어옵니다. 입만 가리고 할 이야기는 그 억양으로 다 하니...뒤에 있는 군의원이 국수를 먹다가 실쩌기 웃어요. 그러려니 하는 게지요.
점심을 먹고 하자, 아이다 그러면 해 있을 딴아는 다 한다. 지금부터 놀아도 다 놀고 나면 해 넘어간다. 아이다 시간이 뭐 그렇게 마이 걸릴라꼬. 허이고 모르는 소리 마이소 행님은. 둘이 둘이씩 놀면 그거 시간 마이 잡아 묵구만. 그라면 국수 삶는 동안 남자들부텅 놀덩가. 행자네 아부지 어디가셨소 몬져 윷 놀으시죠. 뭐 나부터 놀으라고. 난 쫌있다 놀테야. 고만 남자부터 얼릉 얼릉 놀만 될낀데 와 저래 뻗대시노. 놔둬라 그라믄 젊은 것부터 놀아. 젊은이는 국수 삶아야지 윷부터 놀 정신이 어딧다고. 국수물 끓는다이 상민아~~ 국수 갖고 오니라. 예이~~~~국수 대령이요
(울 아덜 영어 숙제 해야해서 내일 쓰등가..허죠. 아참 신나게 두둘기는데 ...그라고 사진을 찍었는데 메모리 카드를 빼놓고 사진기에 있는 기본 메모리에다 찍었등만 컴으로 옮길 수가 없네요. 사진 몇 장 올리면 이렇게 주뎅이 아푸게 지끼지 않아도 되는디...여튼 나중에 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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