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릇은 크게 욕심이 없는데 유독 부엌칼에는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
낯선 부엌에서 반짝반짝 잘 드는 칼을 들면 저절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
친정 아부지는 칼을 잘 갈아 주셨다
식구가 여섯이나 되니 설이면 말띠기로 떡국을 했다.
밤 늦도록 아버지는 옆에 계시고 엄마는 또옥, 또옥, 잘 드는 칼로 떡을 썰었다.
잠결에 떡이 잘리고 벼른 칼날이 마른 도마를 건드리며 지나가는 소릴 들으면 그게 참
듣기 좋고 아늑했다.
시집 오니까 부엌칼 쓸 일은 매끼마다 생기는데 칼 갈아 주는 사람이 없다.
촌집 살림에 숯돌이 없었으니 얼마나 기맥힌 일인가
아버지의 숯돌은 몸매가 잘 빠진 여인처럼 굴곡이 생겨 아름다왔다.
아버지가 칼날에 고른 힘을 주며 숯돌 위를 왔다 갔다하면서
칼날과 숯돌은 서로의 몸을 양보했다
친정을 가면 가볍고 어느 것 하나 무디지 않고 날이 선 칼을 슬쩍 만져 본다
시집 와서 칼 갈아 주는 사람이 없어 나는 부엌칼을 수건에 둘둘 싸서 친정 갈 때 가져가 갈아와야지..이런 생각도 했었다..
어제 고스방이 점심 먹으러 들어와 티비를 보는데
홈쇼핑에서 독일제 부엌칼 선전을 한다.
나는 고만 감탄사가 저절로 쏟아지며 눈이 티비 화면 속으로 들어간다.
가격이 만만찮다.
입만 벌리고 동경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내게 고스방이 선뜻 주머니를 연다
한 세트 구입해..
십만원을 세어 주길래 어이구야 고물 묻을까바 냉큼 받아놓고,
자동주문 전화에 오천원 할인이라는데 방송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멈칫멈칫한다
금방이라도 전화를 할 것같던 여편네가 자꾸 궁뎅이를 뒤로 물리고 앉으니 고스방이
"전화 안 해?"
"으흐흐흐흐흐흐흐 그게 말이야 돈이 내 손에 들어오니 생각이 달라지네 여보. 어쩌면 좋아"
"안 살려면 돈을 주던지.."
"안 살건 아니지만 자꾸 생각이 뒤로 물러 앉아"
"좀더 생각해보고 잠간만..."
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돈을 감춰놓고 나온다
마침 차를 찾는 전화가 오니 고스방이 나간다. 아이고 돈 굳었다.
오늘, 영동가서 칼갈이 삼천원짜리 하나 사온다
천원짜리 살려다 십만원 받았는데 싶어...큰 맘 먹고 사다
집에 와서 칼자루 다 내놓고 부지런히 칼을 간다.
'내가 뭔 요리를 짜드라 많이 해 묵는다고. 이만해도 얼매든지 묵고 살겠구만.."
여자의 마음이란 참내.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윷말판 서는 사람 절루 좀 비켜 봐 (0) | 2006.02.13 |
---|---|
겨울 볕도 잘 들면 이뿌지 (0) | 2006.02.12 |
관심많은 운자씨 (0) | 2006.02.10 |
일호씨네 비릉빡 (0) | 2006.02.09 |
동네 뒷뜸에서 눈썰매를 타다 (0) | 200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