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봄 오신다 하니.

황금횃대 2006. 3. 5. 17:16

아침먹고 설거지 하는데 동네 스피커에서 노래가 또 나와요

오늘은 뭔 일이 있는가 밥그럭 떨그덕거리다 가마히 손을 놓고 귀를 쫑긋 세우고 가수 노래를 들어요.

"엄마, 왜 스피커에 나오는 노래는 맨날 저런 가락이야?"

요즘 리쌍의 노래에 심취한 아덜놈이 관광버스가락을 이해 못하지요

"저 노래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깨춤 추고 싶지 않니? 그러니까 저 노래가 인기있지"

"하여간 노래도 촌시러워요"

"그럼 이눔아. 촌사람들이 촌시런 노래에 흥이나지 그럼 무슨 노래에 흥이나냐?"

 

동네 이장님 말씀인즉,

 

"에,에, 마산리 동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옵고 새봄을 맞이 하여 동네 회관에 땔감을 마련하는 일을 공동으로 하고자 하오니 청년회원, 부녀회원 여러분은 참석하시여 같이 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겨우 내 회관에서 끓여먹고 삶아먹고 하여서 땔감이 없다네요.

자두나무 전지 해 놓은 것을 여태 때긴 했는데 그것 말고도 조금 장작 비스므리한 것이 있어야 여름에 비가 와도 나무 걱정 하지 않고 동네일을 도모할 수 있다나.

 

설거지 해 놓고 산에 갈 채비를 단단히 차려서 가니까 민정이 아빠, 수미 아부지, 석철씨가 나와서 엉거주츰 서서는 몇 마디씩 말들이 오고갑니다.

 

"아이, 방송을 했스마 시간 되면 나와야지 사람들이 와이래 굼뜨노"

"한 머리는 지금 골안에 가서 나무 묶고 있응께 그렇치"

"벌씨로 한 패는 갔어요?"

"그럼 버얼써 갔지. 우리 쌍둥이도 하나는 어제 우리집 장작을 너무 패서 아가 힘든거 같아 다른 쌍둥이를 보냈네."

 

드럼통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고 커다란 알미늄솥이 올라가고 물이 끓여요.

돼지고기는 두루치기 양념이 되어지고 무꽝에서 댓개 가져 온 무로 생채를 하고 된장을 끓이고 두부가 썰어져 된장 냄비 속으로 풍덩 빠집니다.

 

이장 아지매가 와서 된장 끓이는 간을 보더니 희안하게 맛있다고 해요

"그거 제가 끓인 거예요 헤헤"
"그려. 잘 끓였네 이젠 젊은이가 하는게 맛있네"

새콤달콤하게 석철씨의 아내가 무우 생채를 버무리는 동안 밥솥에 하얀 쌀밥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면서 구수한 냄새를 뿜어냅니다.

집에서 얼마 안 되는 밥을 하다가 회관와서 됫박의 밥을 하면 끓을 때부터 무장무장 구수한 밥냄새가 올라 오는데 무엇이든 많이 하면 맛있다는 원칙이 여기도 적용이 되나봅니다.

 

멀리 성당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파업을 종료한 기차들이 경부선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아지매들이 한 마디씩 해요.

"어? 기차가 이제 다니네"

"파업이랑가 뭐시랑가가 이제 끝났대잖아"

"맞어. 오늘부터 그람 정상적으로 기차가 댕기는 모냥이지"

"아녀. 오늘은 그냥그냥 댕기고 월요일부터 지대로 댕긴다지 아마. 뉴스에서 들은거 같은데.."

 

굴다리를 빠져 나오며 석철씨 따블캡화물차가 쭈욱 올라옵니다.

 

"아이고 나무하고 오는 갑다. 어여 밥 퍼야지

"장정들이 열 댓 가서 전기톱으로 깡총하게 잘라온 나무는 가지고 놀고 싶도록 이뻐요.

나무들을 정리하고 쌓을 동안  방 안에는 상이 놓여지고 광경이 아저씨 아지매가 행주를 가지고 상을 쓱,쓱 닦습니다.

 

하얀 쌀밥이 참 잘 되었습니다.

포슬포슬 밥알이 낱낱이 도는게 포옥 퍼져서 밥 잘 됐다는 찬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된장이 군데군데 놓여지고,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볶아져 놓이고, 다들 앉아서  숟가락 움직이는 소리가 부산하네요.

 

촐촐하던 차에 나도 생채와 된장 넣고 비벼서 한 그릇 먹고는 또 밥솥 뚜껑을 열어요 왜?

한 주걱 더 먹을라고. ㅡ.ㅡ;;

 

 

 

 

밥을 다 먹고 여자들이 치우는 동안 남자들은 나무를 통풍이 잘 되게 동게동게 재어놓았습니다.

저게 그냥 재면 되는가 싶어도 분도큰아부지가 진두지휘를 했기 때문에 저렇게 이뿐 모양이 나왔세요.

동네 사람들이 왁자지껄 동원 된 땔감 장만하기

이렇게 하면 일 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아도 할머니 할아버지 다 와서 드시니 동네 잔치가 따로 없습니다. 많은 돈 들여 먹는다구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닌가 봅니다.

다 같이 동네 사람들이 한 식구같이 모여서 웃으며 밥을 먹을 때, 어떤 진귀한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건강에는 더 좋겠지요.

 

 

담벼락 썩은 낙엽을 헤치고 장구채풀도 저렇게 파랗게 목을 빼고,

 

 

냉이도 파랗게 올라옵니다. 나물캐는 아가씨 꽃바구니 옆에 끼고 곧 등장하겠지요?

 

 

덤불콩 심으면 덤불 올라갈 대나무지주도 봄이 오니 저희들끼리 바쁩니다

뿌리 없는 나무에서도 싹을 돋게 하는 힘

봄의 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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