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언제였던가 자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동대구역에서 범어로타리까지 양편 70미터 도로가 이미 완성 된 후였다.
엠비시 방송국 앞 사거리를 중심으로 지금 삼성생명 건물이 있던 자리는 그야말로
한 덩이리 커다란 논이였다.
그 황금의 사거리 모퉁이를 돌며 사방으로 건물이 들어서도 그 곳은 꽤 오랫동안
논으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저 논은 돈덩어리임을 속으로 가늠했는데 그 논 이야기 하자는게 아니구.
내가 어제 핸드폰 고리 만든다고 온박음질을 촘촘히 하는데 뜬금없이 울엄마가 생각났다.
70년도에는 지금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생필품같은 것들을 우리가 부업으로
만들었다. 보리짚을 박아서 만든 끈으로 부엉이 모양의 냄비 받침대를 만들고, 나무젓가락넣는 포장지를 푸른색 물감이 섞인 풀을 나무 틀에다 척 발라서 종이에 찍어놓고 반대편 종이를 붙이면 나무 젓가락 열개씩 들어가게 풀이 붙여진 종이가 완성되었다
물감을 섞어 그 일을 하면 풀들이 튀어서 온 방바닥에 삔질삔질 풀들이 묻었고 손에도 온통 시퍼런 풀들이 떡때기가 되었다.
그러다 엄마가 어느 날인가 바느질거리를 가지고 오셨다. 검은 천에 질긴 무명실로 줄이 그어진 옷감에다 촘촘히 박음질을 하는 일거리였다. 그게 무엇인가 했더니 검도복을 누비는 일이였다.
검도복은 몇 가지 이름을 달리하는 부품처럼 마름질이 되어 왔는데 그걸 한 벌 누비면 돈이 얼마라는 계산이 되었다. 중국집 외상장부같은 손바닥만한 거래장에 엄마가 졸린 눈을 부비며 누빈 검도복 숫자가 채워졌다. 30촉 백열등 밑에서 엄마의 살점을 파고 들었을 그 바늘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소름끼치고 무서웠지. 그래도 그건 단가가 높은 부업이였다.
일일이 손박음질 한 검도복이 어떻게 완성이 되는가는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바쁜 엄마의 심부름으로 박음질을 끝마친 검도복을 보자기에 싸들고 저어기 삼성생명이 들어 서기전 논둑길을 건너 가서 길 건너 맞은편 폭꺼진 집 주인 아줌마에게 검사를 받고, 또 새로운 일거리를 보자기에 싸 가지고 집으로 왔다. 지금도 대구가서 엠비시 방송국 앞을 지나가면 그 때 그 풍경이 떠 오른다마는.
놀면서 재미로 하는거라 잠 안 자고 저걸 붙잡고 코를 박고 있었겠지만, 지금 그 때의 엄마처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슥놈 먹여살리야지..하는 심정으로 박음질을 하고 있다면, 어젯밤 고요히 깜박이는 별빛을 내다보며 눈물 한 방울 쥐어짰으리라.
뜬금없이
엄마가 검도복 누비던 시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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