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에 설거지도 대충 끝내고 어머님이랑 목욕을 갔죠
날이 흐려서 아침인데도 화창한 맛이 없었세요
아버님 나가시기에 어머님 먼저 목욕탕 가시라 하고 나는 뒷설거지 해놓고 갔쥬
때를 불리고 어머님 등을 밀어 드리고
앞쪽을 닦아드릴래니 엄니께서 놔둬라 내가 할께 하시네요
근데 영 닦으시는게 힘이 없으세요
나중에 머리 감고 내 등을 밀어주시는데 예전만 못하신게라. 아주 영 못하신게라 나는 속으로 뜨끔했죠
어제 뒷고샅에 성철씨 어무이가 시골 딸네 집으로 오셨세요. 그간 대구 둘째아들네에서 집안 살림을 다 하고 살았는데 제대로 드시지도 못해서 피골이 상접하시다네요
묵 한 그릇 따끈하게 말아서 엄니하고 들다보러 갔는데 깜짝 놀랬세요
살이 쏘옥 다 빠지고 배는 등에 붙었어요
둘째 아들네 두 내외가 모두 실직을 해서 살림 살기가 영 어렵다고 하더니
다리에 살도 하나도 없어 뼈만 있는게 예전 그 할무이가 맞나 몇 번이고 쳐다봤세요
손을 잡고 "아이구 상민네엄마 머할라고 왔어"하시는데 말씀도 게우하십니다.
온갖 생각이 머리 속에 다 굴러다니지요
그 할무이는 어머님보다 한 살 더 많으신데 울 시엄니께서 늘 형님형님하면서 친하게 지내셨세요
사람 사는 거 참 허무하고 그래요
한푼이라도 더 욹궈내서 내 주머니 처 넣고 싶은 욕심이 다 무엇인가 싶었세요
오늘 목욕탕에도 가보니 맹 할무이들 밖에 없어요
겨우 살살 당신의 몸을 때타월로 밀고 계시등만요
그러면서도 오랜만에 만났다고 집안 이야기를 풀어 놓으시고 인생이야기를 합디다.
"이제 그냥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재. 잠결에 고이 가면 얼마나 좋을꼬. 서로 고상 않하고.."
"맞어,맞어. 가마이 티비나 보고 넘의 말 귀에 담을 거 없이 내 마음만 고스라히 지키다가 죽지뭐"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바가지로 물 퍼붓는 소리와 함께 끝이 없고
매시랍던 엄니의 손끝도 이젠 힘이 없고
사는게 그렇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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