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한 달을 조바심치며 살았으니 내가 사월 보름 여행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목이 길게 빼물리도록 기다렸노라.
말이 총각결혼식 간다는 얘기지 기실 그 총각보다 내가 벗어남에 더 갈급했다.
열한시,
포항에서 출발하여 나를 픽업해 가기로 한 사람의 차는 황간나들목에서 기다린다는 전갈이 왔는데 나는 어머님이 맥없이 앉아 계시는걸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기운없어 하시긴 했지만 식사도 그런대로 하시고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아침을 드시자 병원에 가보신다며 아버님 차를 타고 가셔서 곧바로 약을 지어서 오셨다.
병원 약을 드시고 앉았는데도 영 개운찮아서 다시 집에 있는 감기약을 드셨다며 약기운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그렇게 넋을 놓고 앉아 계신다
옷을 갈아입고 떠날 준비를 하고는 어머님께 좀 어떠시냐고 여쭤보니, 뭐라 말 할 수 없이 기운이 빠지고 뒷골이 흐리멍텅한게 정신이 혼미하시단다. 어이구 이일을 어쩔끄나.
가도 못하고 주저 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니 어머님이 가 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실쩌기 꿈이야기를 하시는데.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하도 꿈이 이상해서..이틀 전 꿈에 누가 나를 보고 <나무귀신이 들었어>하더란 말이지."
"꿈에 누가요?"
"누군지는 모르고 하여간 그런 말을 하는데 그게 이상시리 잊혀지지도 않고 그랴"
"그럼 제가 고모님한테 연락해서 영동사시는 처사(머리벗겨진 점쟁이아저씨)님한테 함 물어보라 할게요"
그제서야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이 조금 맑아진다
산사람 섬기는것도 모질라 이렇게 꿈결에 슬쩍 지나간 나무귀신까지 섬겨야하니.
고모님께 전화를 하니 당체 받들 않아서 다시 동서에게 전화해 학교 급식 일 마치고 시간 나는대로 어머님께 들러 보라고 하다. 내가 꼭 가봐야 할데가 있어 그런다고 하니, 동서도 어딜간다고 한다. 순간 욱하고 화가 치밀었다. 어머님 편찮으시고는 삐쭉 한 번 들여다보고는 다시 오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한 번 부탁을 하면 한번도 그냥 들어 준 적이 없다. 꼭 볼일이 있다고 하고 날 보고는 안 가면 안되냐고 되묻는다. 마음을 고쳐잡아 사람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런 반응을 보면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것이다.
늦어도 괜찮으니 잠깐 들여다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니 그러노라한다.
뒷골이 땡기고 마음이 가라앉아도 나는 가방을 들고 나섰다.
대전에서 같이 갈 언니 한 사람을 만나 셋이서 고속도로를 달려서 전주에 도착하여 다시 거기서 회원 한 사람과 합류하여 점심을 먹고는 무려 여섯시간쯤 걸려서 격포 숙소에 도착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 곳은 하얀 건물이 두 동 마주보고 서 있는 이쁜 건물이였다.
뒷마당의 주차시설도 넓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먼저 와 있는 주례선생님(맹 회원이다. 시인이시고 여자분이시다)과 신랑 신부를 만난다.
신랑 될 사람이 얼마나 모임에 준비를 많이 했는지 신랑집, 신부집 이바지 음식을 다 가지고 왔다.
불편이 없도록 껌까지 준비한 신랑의 세심함에 혀를 내둘렀다.
만나면 언제나 정신없이 반가운 사람들.
친척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람들.
고스방은 이런 만남에 대해 전혀 이해가 않된다고 하지만,나는 그 사람들을 만나 깜박 자물신다.
술잔이 돌고 그 동안의 살았던 이야기와 결핍의 세월, 애정과 애증의 재료들이 씨줄날줄이 되어 늦도록 밤의 배틀을 돌리고 있다.
어찌 이리도 좋을까
격포동동주에 먼저 취한 아가씨가 한 필의 베를 완성했다.
우리는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보살핀다
그러나 밤새 초토화된 그녀의 위장은 오롯 그녀의 아픔이다.
결국 구원은 각개전투가 아니던가.
기타반주에 맞춰 신랑,각시에게 들려줄 축가를 연습하고, 축시를 낭송한다.
낭랑한 목소리로 시가 하나의 무늬를 만들고, 이런저런 축가레퍼토리가 윤기로 자리잡는다
사십오도로 슬슬 기울어지는 몸들이 얼기설기 백팔십도로 펴지면서 다들 눈은 감았지만 귀는 열린 세계로 들어간다
밤새 *적벽강의 바람 혓바닥은 어찌그리도 크게 입맛을 다시는지.
바람 소리에 귀를 열어 둔 채로 꼴딱 새벽이 온다
.
아침 바다는 저렇게 멀찌기 내다앉았다.
파도가 쓸려 올때보다 밀려날 때 파도는 더 많은 걸음을 뒤쪽으로 내딛였다
계단에 누가 장난삼아 매직으로 <횃대>라고 쓰고 지나갔는데, 뒤에 온 사람이 그걸 모르고는
"어머머! 횃대가 유명하긴 유명한가봐 여기 계단에도 횃대라고 쓰여있네"
우리 모두는 뒤집어졌다. 저 순진한 로즈공주님을 어떡한디야?
우리의 츠자 총각은 저렇게 떨리는 시간을 지나 이제 어른이 되었을거다
나이야 어찌됐던 둘은 한 날, 한 시에 어른이 된거다.
우리 모두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길 빌고 또 빌었지.
나 시집갈 때는 저런 황금마차가 없었당께
그래서 신랑신부 타고 와서 주례새임 앞으로 가서 열심히 주례사 듣는 사이 내가 들어가서
사진 한 판 박았재
신랑각시보다 더 행복한 얼굴이여.
점심만 후딱 먹고 시간을 다투어 황간으로 돌아오니 5시가 다됐다.
집에 들어오니 고스방이 앉아있다
중학교 총동문회를 갔다왔는데 어째 인상이 안 좋다
내가 갔다왔세요. 하고 이야기해도 쳐다보도 않한다. 뭔가 삐딱선을 타고 있는게다
그 날 밤....
어이고...한 바탕했지를.
그 이야기는 뭐 내 혼자만 알고 있구.
*표 :저 표현은 주례새임이 말씀하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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