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안경

황금횃대 2006. 6. 4. 23:18

시력도 가난의 산물이다.

내 시력이 이렇게 나빠진 탓을 굳이 하자면 그 빌어먹을 가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눈이 좋았다.  시력 검사를 하면 슬쩍 넘의 하는 말까지 기억해 두었다가

자랑스럽게 2.0이라는 결과도 받아내곤 했으니.

 

눈이 나빠진건 중학교 때였다.

텔레비전이 집에 없어서 주인집 티비를 가끔 보았는데 수신상태가 매우 나빠서 티비가 지지직거리며 잘 나오지 않는 것을 눈을 찡그리고 봤었네. 그러면서 눈이 조금씩 나빠졌다.

수업할 때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엄마에게 눈이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하니, 젊은애가

눈 나빠질 일이 머가 있노 하면서 믿들 않았다. 그러다 필기는 해야겠고 글자는 안 보이고 해서

옆에 아이 안경을 빌려서 끼고 칠판의 글씨를 보았다. 그 아이의 안경은 도수가 너무 높아서 내 눈에 맞지 않았는데 그래도 어쪄, 필기는 해야지. 그러니 미간을 찡그리고 촛점을 맞추느라 애지간히 애를 쓰는 바람에 오후가 되면 머리가 아팠다. 그러다가 그 아이 안경이 내게 어느정도 맞을 정도로 눈이 나빠졌다. 그렇게 세상이 흐릿하게 보여도 안경 해 달라는 소리를 못했다. 말 해도 씨알도 안 먹히니.

 

고등학교 가서도 마찬가지.

상업학교 다니면서도 삼년 내도록 주산 자격증을 따야하는데, 한강 이남에서 젤 좋다는 제일여상을 입학했어도 주산을 변변한걸 못 가졌다. 그 당시<운주주판>이라는 메이커가 주산으로는 젤 좋았다. 오른쪽 끝에서 왼쪽으로 주산알을 떨어 나갈 때 그 알이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 위

제 자리를 잡아가는 소리는 귀에도 듣기 즐거웠다. 마치 차돌맹이 공기알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그 촉감과 손끝에서 느껴지는 알의 무게감이 환상적이였다. 그런데 삼 년 내도록 나는 그 주산을 가지지 못했다. 주산 알이 가벼운 것은 손끝이 약간만 닿아도 흔들리기 때문에 내 상업계산과목의 성적은 좋지못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주산 급수는 주산이 어느정도 좌우를 한다. 시험 칠 때마다 그 아쉬운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결국 삼년 동안 애면글면 하였어도 주산 일급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 그러니 안경 해 달라는 소리는 더 못할 밖에.

참말로 딸 하나 아들 서이 공부시키느라 울 부모님 뻣골이 뻐근하셨을 때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주물공장에 다니면서도 월급받아 왜 안경 맞출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게 앉아서 경리를 보다가 간혹 라디오를 아침시간에 틀면 CBS에서 아침 음악 방송을 하는데 거기에 엽서를 보내고 음악을 신청했더니 안경 맞출 수 있는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내 엽서 쓰기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주물 공장은 흙으로 목형을 묻어서 주물을 부을 틀을 만드는데 그 배합흙으로 고운 해사(海沙)를 섞어 쓰는데  엽서에 풀을 묻여서 해사를 뿌려주면 추상적인 모래그림이 나왔다. 그런 것도 보내고 했으니..안경 상품 탈라꼬..ㅎㅎ

 

그렇게 안경을 공짜로 맞추어 쓰고부터 나의 안경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런 저런 안경을 다 써 보았네. 잠자리 안경이 유행할 때는 저어기 장만옥 여사처럼 그런 안경도 써보고, 뿔테, 철테, 니켈도금에 별 모양을 다 써봤지만 역시나 나는 안경이 잘 안 어울린다는 느낌만 맨날 받았다.

 

그런데 고스방하고 선 볼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뭔 부끄러운 심사였는지 선 볼 때는 안경을 안 쓰고 가는거래서 렌즈를 하고 나갔는데 고스방은 내가 안경 쓴 모습을 한 번도 보들 못하고 장가를 갔다. 그러다 어느날 내가 촌구석 흙부엌 바닥에 렌즈를 잃어버리고는 저녁에 책을 보는데 잘 안 보여 안경을 썼더니 그 날 고스방 뒤집어졌다

 

압축렌즈가 아니여서 렌즈 두께가 장난이 아니였는데 그걸 보고는 고스방이 입을 따악 벌리고 놀랜것이다. 이틀 뒤에 나를 영동에 델꼬 가더니 손수 모양을 골라 압축렌즈를 넣은 안경을 맞춰주었다. 그러고는 안경을 함부로 놓아두는 나에게 숱하 잔소리를 퍼부었다.

스방이 처음으로 해 준 안경이라고 그 안경을 참 오래썼다. 무식하게 오래썼다.

 

인터넷이 1999년에 우리집에 들어왔는데 그 때 제천사는 동갑의 남자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땐 뭐 채팅이런거 하면 대단한 불륜이나 되는것처럼 세상이 시끄럽던때라 참말로 새가슴 콩닥이며 대화를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였는데, 한 번은 구미 출장 왔다가 올라가면서 내가 사는 동네에 왔는데 밥 한끼 먹는다는게 넘의 눈이 무서워 상촌까지 차를 타고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밥 나오길 기다리는동안 그가 내 안경을 보면서 무수 잔금으로 긁힌 안경알을 보며 눈물을 삼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냥 목이 메인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다음에 만났을 때 안경을 새로 해 주겠다고 안경집으로 델꼬같다.

남자친구가 선물해 준 안경이라 그 안경도 참 오래썼다. 징하게 오래썼다. 세월 앞에 이기는 안경알 없다고 그것도 잔금이 많이 가고 눈은 더욱 나빠져 또 새로 안경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내가 맞추었다. 테가 없는 것으로 딱 내 맘에 드는 안경이였다. 근데 그 안경은 나랑 인연이 없었는가 아버님 입원하셨을 때 병원 세면장에 벗어 놓고 잠깐 뒤에 찾으러 가니 누가 가져가고 없다. 도수 안경이라 쓰면 눈알이 핑핑 돌건데 그걸 누가 집어가고 없다.

 

그 날, 서울에서 내가 병원에 있다니 날 보러 오신 분이 안경 잃어 먹었다고 무심히 한 얘기에 당장 가서 안경을 맞춰 준다. 아직도 나는 그 안경을 쓰고 있다.

사람은 띨띨해도 친구들이 좋아서 나는 환한 세상을 살고 있다.

 

가끔 책이나 들은 얘기로 부모님의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물건 중에 아버지의 안경과 안경집이 의외로 많았다. 눈만 뜨면 더듬더듬 찾아서 눈 앞에 걸쳐놓아야 비로서 환해지는 세상.

안경이 없었다면 얼마나 답답한 세상을 살아야 할까.

 

얼마 전, 고스방이 계모임 친구 전화번호를 수첩에 넣어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달라해서 아주 작은 글씨로 만들어 주었더니 글씨가 너무 작아서 볼 수가 없다며 내 눈이 왜 이렇게 됐을까..한다.

한 마디로 눈이 이제 노안이 되었으니 좋은 시절은 다 살았다는 푸념이다. 이젠 고스방도 돋보기를 쓰고 글자를 읽거나 숫자를 보겠지. 늘 자기는 시력이 너무 좋아 탈이라며, 상순이가 밭에서 아무도 없다고 뚤레둘레 살피고는 바지춤 내려 오줌 누는거 주차장 차 안에 앉았어도 다 보인다고 자신하더니, 이젠 꼴란 전화번호도 글자가 작아 안 보인다고 자꾸 멀리 밀어낸다.

 

그러게 세월 이기는 장사 있답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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