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열대야를 건너가는 중

황금횃대 2006. 8. 10. 02:04

며칠 전 논에 물대라고 고스방이 일 나갔다가 전화를 했다

논에 나갔더니 맑고 깨끗한 물이 수로를 통해 펑펑 흐른다

세상에 보기 좋은 풍경 둘 중 그 하나가 무엇이냐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풍경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가 자슥놈 입에 맛난 것 들어가는 모습이랬다.

 

봄날 제비둥우리에 제비새끼들 입을 딱,딱 벌리며 에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받아먹는 것도

쳐다보면 쳐다볼 수록 이쁘고 신기한데, 열달 배 아퍼 쏟아 논 자슥 입에 맛난 것 들어가서

오물오물 씹는 거 보면 어찌 아니 이쁘고 신기할소냐

 

그렇게 물꼬를 화악 타 놓으라 그래서 수멍아구지 막아놓은 비니루를 인정사정 볼 것없이 빼재껴

논에 물을 대었다. 대개 수리조합 물뽐뿌가 오후에는 스위치를 꺼놓기 때문에 아침 나절 물 넣으면

논에는 알맞게 논물이 들어찼는데 그 날은 무슨 심사인지 하루 왼죙일 물을 펐겠다.

 

나는 의례 그러려니 하고 물꼬 막으러 새삼 가지도 않고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날이 밝아

고스방 씻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논에 갔다오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난리도 아니다

 

"논에 물 대라 했으면 나중에 물이 어데만큼 들어갔는데 가봐야할 것 아냐. 이 시건머리 없는 여편네야. 종일 물을 대서 논둑이 무너졌잖아."

 

'그녀르꺼 논둑은 없는 집 제사돌아오드키 물만 좀 들어갔다면 무너진다냐 쓰벌'

속으로 이렇게 궁시렁 거리는데 고스방은 이 땡볕 날씨에 논둑 고칠 일이 억장이 무너지는가 날 보고는 신경질을 있는대로 내 쌌는다. 어이구....

 

"아이, 논에 물꼬 있는대로 다 타놓으라고 내게 이야기 한 사람이 누군데 지금와서는 물꼬 다 열어놨다고 난리요"

"뭐?"

짜증이 더럭더럭 묻어나는 판국에 여편네가 수그리 해도 미워죽겠는 판국인데 곧 죽어도 저 잘못은 없다고 대가릴 쳐들고 바락바락 말 대꾸를 한다. 그러자 대번에 그누무 눙깔을 희번득 굴리며 큰소리를 낼라고 입을 벌리다가 아버님 어머님 식탁에 앉아 식사하시는걸 보더니 실그머니 접는다.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아침 댓바람에 한 소리 들은게 억울하고 분해서 쇼파에 앉아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얼굴을 새파랗게 변색시켜 화를 참는다. 밥 다 먹고 나올 동안 그 얼굴상판을 펴지 않고 나름대로 얼음땡`을 하고 있으니 옆에 앉아 양말을 신으면서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논둑 나가면 그거 고칠라면 에지간히 힘들어야재...."한다

카기나 말기나 나는 시퍼렇게 독 오른 얼굴을 하고 쳐다도 안 본다.

현관문을 나가면서 한층 더 꺾인 목소리로

"운백이한테 말뚝이나 좀 만들어서 논둑 옆에 갖다 놓으라고 전화 해봐"

"알았시요"

 

날이 더우니 아무라도 말이 이쁘고 둥글게 나오지 않는다. 잔뜩 짜증이 베여 그 짜증을 톡, 톡 쏘느라 넘의 기분을 배려할 여가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내공 육십단 아닌가. 그러려니 한다.

그게 사흘 전 일이다.

 

복날이라고 낮에 아버님께서 애들 약삥아리라도 삶아주지 하시며 돈을 이만원 주신다

저녁 내도록 닭에 인삼과 밤, 대추, 마늘을 넣어서 삶고 저녁으로 몇 사람만 작은 뚝배기에 한 그릇씩하고는 쉴까뽜 새로 끓여 놓는다는것이, 책 들고 누웠다가 금새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고 한 숨자고 나니 부엌에는 그야말로 불 나기 일보직전이다.

육수 쫄아든 것은 말 할것도 없고 닭도 다 탔다. 그 연기를 어쩔끄나

 

밤에 고스방하고 아들놈하고 둘이 논둑 고친다고 나갔기에 망정이지..그들이 돌아 오기 전까지 환풍기를 돌리네 선풍기를 돌리네 혼자서 미친년처럼 부엌에서 후다닥거린다.

그러다 선잠  깨어 날이 새도록 잠을 못자고 이러구 있네

밖에서 새벽닭 우는 소리 듣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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